주간동아 520

2006.01.24

凍土에 영그는 ‘韓商의 꿈’

친절한 ‘카레이스키 가게’ 고객 사로잡아 … 언어 장벽·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극복

  •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6-01-18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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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凍土에 영그는 ‘韓商의 꿈’

    모스크바 한상 강은표 씨(왼쪽)가 운영하는 점포는 ‘친절한 카레이스키(한국인) 가게’로 유명하다.

    모스크바 북동부에 있는 러시아 최대의 도매시장인 체르키조프스키 시장. 컨테이너 모양으로 된 점포만 3만 개에 이르는 이 시장은 러시아 전역으로 의류와 생필품 등 각종 상품을 공급하는 물류 중심지다. 매일 새벽 상인들과 화물을 싣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만 2000여 대. 멀리는 사나흘씩 걸리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올라온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시장은 비(非)러시아계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특징. 옛 소련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이나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출신을 비롯해 유대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 뒤섞여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1998년 모라토리엄 때 상당수 떠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화물과 사람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한 시장 한구석에서 거친 시장판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초로의 신사가 눈에 띄었다. 신사는 거래상들과 흥정을 하며 점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1999년부터 이곳에서 3개의 의류 점포를 운영해온 강은표(58) 씨. 그는 영하 20℃를 넘나드는 혹한에도 새벽 5시면 시장에 나와 점포 문을 연다.

    이 시장에는 한국인 가게가 두세 곳 더 있다. 5~6년 전만 해도 한국인 전용 상가까지 있어 한때는 한국인 가게가 20여 곳이 넘었으나 98년 러시아에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사태가 터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나 둘 떠났다.



    강 씨는 “요즘 젊은 한국 사람 중에 이 먼 나라에까지 와서 힘들게 도매시장에서 장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얼마 안 남은 한국인들도 떠나가면 내가 모스크바 도매시장의 마지막 한국 상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모스크바까지 오게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한국외대 불어교육과 출신으로 외국계 항공사에서 일하다 무역업에 손을 댄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에 의류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개방 후 러시아 시장이 커지면서 순조롭게 보였던 사업은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신용을 믿고 물건을 대줬던 현지 거래선들이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강 씨는 이들을 찾아 밀린 대금을 받기 위해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다. 가까스로 거래상들을 찾아냈지만 갑자기 찾아온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변제 능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실의에 빠졌던 강 씨는 자신이 직접 러시아 도매시장에 들어가 물건을 팔기로 결심했다.

    러시아어도 모르는 중년의 동양인이 험한 도매시장에 뛰어들어 가게를 내자 이웃 가게 상인들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맥도 없는 낯선 한국인에게 선뜻 거래를 트자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강 씨는 다른 점포와의 차별화 전략을 모색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 시장은 ‘고객이 아니라 상점 주인이 왕’인 상황이었다. 늘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우위에 있었던 사회주의 시절의 관행이 남아 있었던 것.

    凍土에 영그는 ‘韓商의 꿈’

    러시아 최대의 도매시장인 체르키조프스키 시장 전경. 최근 모스크바 전역에서 한상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강 씨는 점원들을 불러놓고 친절 교육부터 했다. 서툰 러시아어로 “손님은 왕이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물건 하나를 보기 위해 오는 손님에게도 최선을 다해 대하도록 가르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절한 카레이스키(한국인) 가게’는 유명해졌다. 소문을 듣고 지방 상인들까지 몰려왔다.

    강 씨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에 매달리면서 틈틈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원래 외국어 배우는 데 취미와 소질이 있기도 했지만 말을 못하고서는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른 한국 상인들처럼 고려인 통역을 두었지만, 거래상들과 깊은 얘기를 하기 어려웠다. 통역을 내보내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동토의 러시아 땅에 정착해 살려는 한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현재 모스크바 거주 교민은 3500여명. 미국이나 유럽의 한인 사회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올해로 겨우 16년째. 2000여명 선에 머물던 교민 수가 최근 2, 3년 사이 급증했다. 인천공항과 모스크바 셰르메티에보 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은 주 6회로 거의 매일 비행기가 뜬다. 하지만 비성수기인 1월에도 좌석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모스크바 중심가에 롯데플라자 개점 예정

    凍土에 영그는 ‘韓商의 꿈’

    모스크바 롯데플라자 건설 현장

    러시아를 찾는 한국인이 늘어난 까닭은 최근 러시아 경제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2위의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몇 년째 계속되는 고유가 덕분에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 머니’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에 러시아 시장은 황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러시아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개인도 늘어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넘쳐나는 자영업자들로 경쟁이 치열한 한국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이다.

    단기 방문자와 장기 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한식당과 한국인 전용 호텔, 상점, 민박집이 대거 생겨났다. 특히 한국인들이 주로 사는 모스크바강 남쪽의 남서구에 있는 아를료녹(새끼 독수리) 호텔 일대는 한인 타운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한식당만 10여 곳에 이른다.

    1993년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대형 한식당인 볼고그라드 거리의 한국관(Korean house)은 현지인은 물론 일본인 중국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카레이스키 레스토랑’의 대명사. 한국 음식에 익숙해진 현지인들의 파티를 위한 대형 연회장과 가라오케 2층에는 실내골프연습장까지 있다.

    교민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드라마와 뉴스 등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 대여점과 미용실, 사무실과 주택 임대를 알선하는 부동산중개소, 교민신문 등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업소까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모스크바 한인사회가 가장 기대를 거는 것은 올해 모스크바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에 문을 열 롯데플라자. 백화점과 특급호텔, 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설 롯데플라자에는 상당수 한국 업체들이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모스크바 한가운데에 한국센터가 들어선다는 상징성도 크지만, 이를 계기로 교민사회 규모가 급팽창할 전망이다.

    러시아에서 장기 거주하려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식적으로 영주권 부여 같은 이민제도가 없어 해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불편함부터 모스크바의 살인적인 물가도 부담이다. 특히 모스크바의 주택임대료 등 부동산 가격은 서울 강남 수준.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모스크바에서 기반을 잡아가는 교민의 수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봉제나 인쇄 등 소규모 공장을 세워 러시아에 진출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러시아는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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