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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5000원권 위조? “그까이 꺼 뭐”

위폐 막는 데 실패한 유로화 벤치마킹 … “국제적 조직·북한 실력이면 얼마든 가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새 5000원권 위조? “그까이 꺼 뭐”

새 5000원권 위조? “그까이 꺼 뭐”
우수연(32·서울 노원구 중계동) 씨는 1월 초 싱가포르에 다녀오면서 남편 선물로 고급 지갑을 사왔다. 그런데 남편이 새 지갑에 돈을 넣으려니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는 외국에서 지갑을 구입한 사람들이 이따금 겪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한국은행권이 다른 나라 지폐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행권은 재질과 세련미가 뒤떨어진다는 평도 듣는다.

1월2일 선보인 새 5000원권은 그러나 디자인에서만큼은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을 듯하다. 가로, 세로를 각각 14mm, 8mm 줄이고 황갈색에서 적황색으로 바꾸었는데, 옛 5000원권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됐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

한국은행이 22년 묵은 5000원권 지폐 도안을 바꾼 까닭은 디자인을 일신하고, 위조지폐(이하 위폐) 제조를 막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 목적 중 디자인 개선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조 방지 기능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는 “아니올시다”다. 마음만 먹으면 국제적 위폐 조직이나 북한이 어렵지 않게 위조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은행이 오래된 기술을 들여온 데다, 위폐를 막는 데 실패한 유로화를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다.

새 5000원권에 적용된 위조 방지 기능은 20가지 남짓. 한국은행은 특히 홀로그램, 색변환 잉크, 요판잠상의 위폐 방지 효과를 강조한다. 새 1만원권과 1000원권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발행될 예정인데, 새 5000원권에 적용된 위폐 방지 기술이 그대로 사용된다.



홀로그램·색변환 잉크·요판잠상 도입

홀로그램은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지도, 태극과 액면 숫자(5000), 4괘의 세 가지 무늬가 나타나는 특수 필름. 색변환 잉크는 액면 숫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황금색에서 녹색으로 보이게 만든다. 요판잠상은 기울여서 보면 ‘WON’이라는 숨은 문자가 나타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기술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한 위폐 전문가는 “새 지폐는 유럽에서 실패한 기술을 들여와 만든 것이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한국은행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쉬쉬하고 있을 뿐, 지폐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새 지폐도 글렀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변환 잉크는 첨단 위폐 방지 기술과 복합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화장품이나 자동차에 쓰이는 광가변 잉크나 염색제를 이용해 새 5000원권에 사용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통되는 지폐를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위폐 식별 효과가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영국의 보안 문서 제작사인 ‘헤리슨 앤드 선스’에서 지폐 디자인 이사로 일했고, 현재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에 지폐 위·변조와 관련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지폐 디자인 전문가 존 워커 씨는 ‘주간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새 5000원권 위조? “그까이 꺼 뭐”
“색변환 잉크는 위폐를 만드는 국가나 조직이 쉽게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잉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차원 높은 위·변조 방지 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색변환 잉크로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요판잠상은 새로울 게 별로 없는 기술이다. 현재 유통되는 한국은행권에도 채택돼 있다. 워커 씨는 요판잠상에 대해 “개발된 지 30년 넘는 구식(old-fashioned) 기술”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요판잠상의 보안성은 신뢰를 크게 잃었다. 저가의 인쇄기로도 모방이 가능하다. 건식 잉크를 쓰는 일부 복사기에서도 복제가 된다. 첨단기술을 가진 위폐 조직들은 더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다.”

홀로그램은 한국 지폐에 처음으로 도입된 기술이다. 1988년 호주가 세계 최초로 지폐에 홀로그램을 넣었다. 그러나 홀로그램이 완벽한 위폐 방지 수단은 아니다. 상품권 등에도 사용되는 홀로그램은 시장에서도 판매가 이뤄져 위폐범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다, 진짜 홀로그램과 위조된 홀로그램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호주의 지폐 보안 권위자인 B. A. 하드윅 씨는 “호주는 낙후된 홀로그램 기술을 버리고 첨단기술을 적용했다”면서 “(한국이 벤치마킹한) 유로화도 새 지폐에선 홀로그램을 쓰지 않을 계획이다. 홀로그램을 사용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위폐 방지 효과가 낮아 시장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홀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내구성이 약해 쉽게 마모되는 데다, 닳은 홀로그램은 위·변조 지폐의 홀로그램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 홀로그램을 은박으로 조악하게 위조하더라도 비전문가가 위폐 여부를 식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영국 중앙은행은 일반인들이 지폐의 진위를 식별하는 도구로서 홀로그램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 “6~7년 정도 끄떡없어”

하드윅 씨는 “한국이 도입한 세 가지 위폐 방지 장치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오래된 기술”이라며 “이들 기술이 개발됐을 때는 현재 위폐 조직이 보유한 복제 기술과 컴퓨터 기술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도 “홀로그램 등의 위·변조 방지 효과는 미미해졌다”면서 “위폐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돈이 다소 들더라도 폴리머 소재를 선택하는 등 뼈대 자체를 바꾸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 지폐는 아직까지 세계적 위폐 조직의 공격 대상이 아니다. 국내에서 발견된 가짜 한국은행권은 대부분 조악하게 위조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고액권(10만원권) 도입을 적극 검토해왔다. 10만원권이 도입되면 위조 유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폐가 대대적으로 유통되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새 화폐에 도입될 위폐 방지 기능이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새 5000원권 위조? “그까이 꺼 뭐”

국내 한 위조지폐 감식 전문가가 100달러짜리 지폐를 들여다보고 있다.

위폐 제조국으로 의심받는 북한이 한국 지폐를 위조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아직까지 북한이 위조 달러를 만들었다는 확증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의 위폐 전문가들은 ‘정황 증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위조 달러의 ‘USA-100’이라는 요판잠상은 위폐 감별기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다.

마이클 그린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 보좌관은 “북한이 국제시장에서 미국 달러화뿐 아니라 엔화와 중국 위안화, 유로화 등에 사용되는 스위스산 색변환 잉크도 구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은 최근 초정밀 화폐 인쇄기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북한은 최신 장비를 이용해 요판잠상뿐 아니라 색변환 잉크 효과도 구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위폐 전문가는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북한이 색변환 잉크, 요판잠상 등을 이용해 위폐를 만들어온 게 사실이라면 북한은 새 한국은행권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새 5000원권의 위폐 방지 기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국은행 측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은행 관계자는 “새 5000원권의 본보기가 된 유로화가 위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새 5000원권은 유로화와 달리 요판인쇄를 통해 세 가지 무늬가 번갈아 나타나는 홀로그램을 적용했다. 따라서 향후 6~7년 정도는 위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06.01.24 520호 (p30~3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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