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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항생제=‘공공의 적’?

강해진 항생제, 더 강해진 세균

신약 안 통하는 세균 끊임없이 출현 … 항생제 오·남용 줄여 내성 줄이는 것이 급선무

  • 이상오/ 경희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강해진 항생제, 더 강해진 세균

강해진 항생제, 더 강해진 세균
우리 신체에 감염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등 다양하다. 이들에 대해 의사들은 항생제(창)와 예방접종(방패)으로 맞서왔다. 이 두 가지 무기는 인류 역사상 보건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에 해당한다. 세균이 일으키는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항생제의 선택과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28년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실험을 하다 포도상구균을 키운 배양 접시가 푸른곰팡이에 오염되면서 그 주위에 세균이 죽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플레밍은 이 곰팡이에서 항생물질을 추출해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41년, 옥스퍼드대학의 병리학자 플로리와 생화학자 체인이 순수한 페니실린을 추출해 인류 최초의 항생제를 탄생시켰다. 페니실린은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포도상구균, 폐렴구균 등 세균에 감염된 수많은 부상자의 생명을 구하고,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처칠의 폐렴을 치유한 일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적의 약’으로 각광받았다. 이후 많은 항생제가 페니실린의 뒤를 이어 개발되면서 인류는 지긋지긋한 세균 감염으로부터 벗어나는 듯했다.

“암이나 에이즈보다 폐렴·임질 일으키는 세균이 더 위협적”

그러나 페니실린이 개발된 수년 뒤 페니실린으로 치료되지 않는 세균 감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하고자 페니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을 죽일 수 있는 새로운 페니실린을 개발했으나 이마저도 듣지 않는 내성 세균(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 일명 MRSA)이 등장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MRSA에 의한 감염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면 곧 이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나타나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의학계는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세균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최근엔 MRSA에 대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마저 무력화하는 내성 포도상구균, 일명 ‘슈퍼 박테리아’까지 등장했다. 인간과 미생물의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마디로 항생제라는 창의 날이 무뎌가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항생제의 치료 원리는 페니실린이 개발된 과정에서 볼 수 있듯, 미생물 안에 존재하는 항생물질로 다른 미생물을 죽이는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인류가 감염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미생물 내에 존재하는 항생물질을 찾아내 항생제로 개발하면서 창의 날을 날카롭게 해왔다면, 세균들은 새로운 항생물질과 싸워오는 과정에서 항생제에 대항하는 자생력을 키워왔다. 이른바 ‘항생물질에 죽지 않고 버티는 내성’을 얻게 된 것이다. 내성은 세균이 항생제에 노출되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세포벽을 두텁게 만들어서 체내로 들어오는 항생제의 투과량을 감소시키거나, 체내로 들어온 항생물질을 무력화하는 효소를 만들어내고, 체내로 들어온 항생물질을 체외로 다시 내보내는 펌프작용 등을 통해 얻어진다.

“21세기 인류의 최대 위협은 암이나 에이즈가 아니라 폐렴이나 임질 등을 일으키는 흔한 세균들이다. 이제 세균들의 총공세가 시작됐고, 인류는 이에 대항할 실탄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물학자 스튜어트 레비의 경고를 감안하면 전세는 이미 인류에게 불리한지도 모른다. 과연 이대로 인류는 세균과의 전쟁에서 지고 말 것인가?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새롭고 강력한 항생물질을 찾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항생제라는 창의 날을 날카롭게 벼리는 것 역시 좋은 대처다. 창의 날을 날카롭게 벼리는 방법이 바로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항생제 내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성균이 생길까 염려되어 패혈증과 같은 치명적인 감염 질환마저 항생제로 치료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항생제 과다처방 병원의 명단 발표와 관련하여 항생제 과다처방 여부가 “항생제 과다처방 병원=나쁜 병원,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병원=좋은 병원”이란 이분법으로 오인돼서는 곤란하다. 실제 위중한 환자가 많이 몰리는 대형 병원일수록 항생제 처방이 필요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항생제를 처방했는지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처방했는지 여부다.

세균에 의한 감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선택할 때 일반적인 원칙은 의심되는 원인 세균을 목표로 가장 효과적인 한 가지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환자 상태가 위중하다면 원인이 된 세균을 알아내는 세균배양검사와 어떤 항생제에 듣는지를 알아내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의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강력한 항생제를 한 가지 이상 선택해 치료에 들어갈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균배양검사와 항생제 감수성 검사 결과가 나오면 더욱 항균 범위가 좁고 효과적인 한 가지 항생제로 교체하고 적절한 기간 동안 사용하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적절한 과정을 거쳐 항생제 치료를 하더라도 내성균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항생제 내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항생제 치료를 통해 세균 감염으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이득을 감안한다면 항생제 내성이란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손실인 것이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 치료 시나 단순히 병이 생길까 염려되어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 등은 항생제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내성균 발현의 위험이라는 손실이 더 클 것이다.

항생제 오·남용,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해야

항생제 오·남용과 항생제 내성을 줄이는 일은 개인이나 병원, 단체 또는 국가기관에서 개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매우 어려운 과제다. 우선 가장 일선에 있는 의사들은 질환별로 적절한 항생제를 선택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만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폐렴이나 중이염 등 감기 이후에 이차적인 세균 감염이 우려되어 불가피하게 항생제 처방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단순 감기 치료 단계에서 바이러스 감기인지 세균성 감기인지가 불명확하다고 해서 예방적 차원으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따위는 피해야 한다. 환자도 항생제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의사에게 감기를 빨리 낫게 하기 위해 항생제 주사를 처방해줄 것을 요구해선 안 되고 처방에 따라 정확히 복용해야 한다.

항생제 내성이 큰 문제로 대두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의약분업을 계기로 이제는 적어도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고는 항생제 처방이 쉽지 않게 됐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항생제 사용이 한 환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성균의 출현과 전파를 통해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이를 막기 위한 자정의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의사들이 자유롭게 처방하던 항생제를 점차 감염학을 전공하는 전문의의 승인이 있어야만 처방이 가능하도록 자체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의 도입이 이미 대학병원과 규모가 큰 종합병원들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 또한 많은 병원에서 내성균의 출현과 확산을 막기 위한 감염관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법적으로도 일정 규모 이상 병원에서는 반드시 감염대책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보건당국에서 적절한 항생제 사용을 유도하고 항생제 내성균의 전파를 막기 위한 국가적 체계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항생제는 우리 건강을 세균으로부터 지켜주는 능력 있는 친구다. 이 벗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면 나의 약점을 알고 공격하는 적으로 돌변하게 만드느냐 하는 열쇠는 바로 우리들이 쥐고 있다.



주간동아 2006.01.24 520호 (p24~25)

이상오/ 경희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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