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0

2006.01.24

우리당도 민주당 전철 밟기?

일부 의원들, 정권 창출 후 껍데기만 남기고 탈당했던 일 상기 … 노 대통령 탈당론에 ‘촉각’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6-01-18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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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당도 민주당 전철 밟기?

    1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 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만찬장으로 가고 있다.

    “고부(姑婦)간 갈등을 치료하는 방법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야 상처를 덜 준다.”

    “나이로 보면 정동영 전 장관은 나와 6년 차이가 나지만 중진이 돼 있다. 정 전 장관과 유시민 의원의 나이가 6년 차가 나는데,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지 않느냐.”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던진 두 가지 화두로 여권이 들끓고 있다. 1월11일 유재건 신임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만찬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나온 ‘탈당론’과 ‘차세대 리더 육성론’이 빌미가 됐다. 어찌 보면 대통령의 탈당과 차세대 육성은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갖고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다음 세대 리더를 키우는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여당 긴장하자 청와대 측 긴급 진화



    차세대 리더 육성론은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윤태영 대통령 연설기획비서관이 총대를 메고 공론화에 나섰다. 그는 1월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국정일기’를 통해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유 의원 입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7월 정동영·김근태 장관을 입각시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의 재목으로 정세균·천정배·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 경험을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윤 비서관은 “‘준비하는 대통령’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니 소모적인 정치논쟁은 거둬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윤 비서관의 바람과는 반대로 차세대 리더 육성론은 여권 내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만찬 석상에서 ‘다음 세대 준비’를 이야기했다.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가 청와대 내부에서 일종의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면서 탈당을 거론한 것은 언뜻 이율배반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의 탈당론에 대해 여당이 긴장하자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시제론’으로 해명에 나섰다. ‘지난해 대연정 제안 당시 탈당을 고려했었다’는 과거완료형이지 현재형이나 미래형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만찬 석상에서 노 대통령은 유재건 의장과 임채정 전 의장 등이 당과 청와대는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자 “당·청이 꼭 공동운명체는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당도 민주당 전철 밟기?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복지부 장관 내정자인 유시민 의원이 지난해 여름 대연정 논란이 한창일 때 기자들과 만나서 한 말이다. 당시 유 의원은 “서로 맞지 않는 부부가 한 집에 살 때는 으르렁거리지만 이혼하고 남이 되면 크게 화낼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당 후 정계개편 시나리오 현실화 가능성 커

    노 대통령은 청와대와 여당을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 유 의원은 부부 관계에 비유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똑같다. 한 식구라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아예 헤어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즉 대연정과 같은 미래지향적 정국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하는 등 당과 청와대가 갈라 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키우는’ 유시민 장관 내정자의 생각이 같은 셈이다. 당에서 대통령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져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마당에 서로 부담을 안고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부쩍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대통령이 당대에 완수할 수 있는 과제는 별로 없고, 2, 3대를 거쳐야 되는 것들이 많더라”고 토로하고 있다. 자신이 벌여놓은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탈당 후 정계개편’ 인식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나 가까운 미래형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노 대통령의 탈당 관련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그려지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특히 연초 개각 파동을 거치면서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그룹이 확연히 갈라진 상황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면 노 대통령의 탈당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과거완료형’ 주장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는 빠르면 당내 여러 세력들이 충돌하는 2·18 전당대회를 전후해서나 5·31 지방선거 전후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이다.

    이 경우 정계개편의 핵은 노 대통령과 이번 개각을 주도한 이해찬 국무총리, 이 총리의 보좌관 출신인 유시민 의원이 될 게 분명하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에도 노 대통령의 탈당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자신들이 정권 창출 후 껍데기만 남기고 민주당을 빠져나왔던 것과 유사한 일이 조만간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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