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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베이징 경협 창구 다시 열었수다”

북한 9개월 만에 민경협 사무소 재가동 …대남경협 조직 리모델링 사업 유치 가속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베이징 경협 창구 다시 열었수다”

“베이징 경협 창구 다시 열었수다”

2005년 10월 개소한 개성공단 내의 경제협력협의사무소.

‘수신: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 발신: 삼천리 총회사, 건명: 사업추진관련 건’.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북한 평양의 삼천리 총회사가 1월6일 중국 베이징의 민경협 사무소에 보낸 팩스 문건의 일부다. 이 문건은 다시 남한의 한 회사로 전달됐다. 삼천리 총회사는 북한의 대남 경제협력사업 중 전자와 중공업, 화학 분야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민족경제협력위원회(이하 민경협) 산하에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문서가 ‘베이징 사무소’를 경유했다는 것. 이는 북한의 베이징 사무소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대남 경협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지난해 3월 말 중국 내 대남 민간경제협력 창구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베이징 대표부와 단둥 대표부 가운데 베이징 대표부를 철수시켰다. 북한은 뒤이어 민경련을 내각 산하로 이관하고, 6월 민경협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공식 발족시킨 데 이어 남한과 협의를 거쳐 10월28일 개성공단 내에 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를 열었다.

연말 연초 국내 기업과 접촉 시작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남북경협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국내 민간기업이 중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 땅인 개성에서 언제든지 북한 기업과 직접 사업협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남북경협의 획기적인 발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동시에 북한이 중국에 남아 있는 대남 경협 창구인 단둥 대표부를 조만간 철수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민간기업이 북한과 접촉하기 위해 굳이 중국까지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 남북 기업이 경협사무소에서 사업협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삼천리 총회사도 개성의 경협사무소에서 남한의 대기업들을 만나 굵직굵직한 사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했다. 지난해 11월30일에는 김경헌 삼성전자 상무와 임병태 태평양물산 사장 등이 김춘근 민경련 부회장과 윤원철 삼천리 총회사 총사장 등을 만나 그동안 중국 단둥에서 논의해오던 계약 갱신과 사업계획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베이징에 대남 경협을 위한 연락사무소를 열고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한 것은 의외다.

대북 경협사업에 관련된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 재가동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기미를 보이다가 12월 말 비로소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소 소장으로는 민경련 베이징 대표부를 총괄했던 허수림 대표가 복귀했다.

한 대북 경협사업자는 “베이징 사무소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사이에 국내 일부 기업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을 시작하면서 그 실체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베이징 경협 창구 다시 열었수다”

재가동된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 소장을 맡은 허수림 대표.

이 사업자는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가 앞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남한 기업과 개성에서 해도 충분한 사업내용을 협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개성 경협사무소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배경과 원인을 철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공교롭게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가 공식 활동을 재개한 시기에 남북한 기업이 개성 경협사무소를 이용한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경협사무소 관계자는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하루에 한두 기업씩 꾸준히 경협사무소를 이용하다가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 2주간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연말연시라는 특수성 때문에 줄어든 것일 뿐 베이징 사무소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이 아직 경협사무소의 이용방법과 절차를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조만간 사무소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10개월도 안 돼 민경협 베이징 사무소를 재가동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한 북한 전문가는 민경련 베이징 대표부 철수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동안 북한 내부에서는 대남 경협사업 주도권을 놓고 당 조직과 내각 간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각인 민경련과 당 조직이면서 민경련을 사실상 관리해왔던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 간의 갈등이다. 민경련은 대남 민간경제사업 규모 확대와 함께 이를 관리할 조직도 확대되면서 독점적 지위를 주장한 반면, 아태는 자신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경련의 이런 움직임이 반가울 리 없는 것.

그런 와중에 지난해 3월경 민경련 베이징 대표부 허수림 대표가 베이징공항에서 신고액수보다 많은 달러를 숨긴 채 북한으로 들어가려다 중국 공안당국에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베이징 대표부 사무실도 공안당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아태로서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IT 전담기구 위한 장소 분석도

그렇지 않아도 베이징 대표부는 경협 실적이 매우 부진한 데다 허 대표를 비롯한 상당수 직원들이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던 터였다. 여기에 남북 간 개성공단 내 경협사무소 설치의 필요성이 논의되던 중이라는 시점도 작용했다. 결국 이런 배경과 아태의 문제 제기로 3월 말 베이징 대표부 철수가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경련은 그러나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후반부터 시작된 북한 내부의 대대적인 대남 경협조직 재정비 과정에서 그동안 맡아왔던 민간 위주의 경협을 그대로 담당하게 됐기 때문.

한 대북 경협사업자는 “민경련은 내각 무역성 산하에서 빠져나와 지난해 6월 새롭게 출범한 민경협 산하로 이동하고 업무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업자는 “개성공단과 철도사업 등 남북 정부 차원의 협력사업이 시작되면서 민경련 조직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장관급으로 격상시켜 만든 것이 민경협”이라며 “철도사업을 관장할 광복총회사와 서기실에서 이름을 바꾼 정책실을 비롯, 금강산관광특국, 개성공업경영특국 등도 민경협 산하기구로 정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대남 경협 조직이 민경련에서 민경협으로 확대되면서 관리자급 인원만 100명에서 200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업자는 이어 북한이 다시 베이징 사무소를 연 배경에 대해 “개성 경협사무소를 2~3개월 운영해본 결과 당초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자 중국과의 사업까지 고려해 사업협의 장소를 이동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동시에 북한이 내부 경협조직 정비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베이징 사무소는 북한이 정보기술(IT) 분야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마련한 정보통신사업 전담기구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IT 인력을 교육해 중국 IT 기업에 취업시키기 위한 기구라는 것. 하지만 이는 베이징 사무소가 남한의 정보통신 사업체가 아닌 일반 제조업체에도 사업협의를 위해 연락을 취한 점을 감안하면 신뢰성이 다소 떨어진다.

엇갈리는 분석과 다양한 전망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이 대남 경협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조직 개편을 마무리 짓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근 중국 방문 목적이 ‘정치’가 아닌 ‘경제’ 쪽에 있다는 분석이 점차 힘을 얻어가는 마당에, ‘조직 리모델링’을 마친 북한의 경협기구가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낼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동아 520호 (p14~1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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