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꽃처녀 ‘배시시’ 수줍은 눈인사

  • 최미선 여행 플래너 / 신석교 프리랜서 여행 사진작가

    입력2005-09-02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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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처녀 ‘배시시’ 수줍은 눈인사

    곰배령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수천 평에 달하는 초원에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들꽃이 빼곡하다.

    곰배령 트레킹을 하려면 적어도 1박2일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트레킹을 마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평까지 들렀다 오면 금상첨화.

    곰배령 트레킹

    들꽃과 풀이 주인인 야생화의 천국 곰배령(1164m)은 강원 인제군 귀둔리 곰배골마을에서 진동리 설피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수천 평에 달하는 초원에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들꽃이 빼곡하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곰배령은 산이 깊은 탓에 꽃 피는 시기가 평지보다 다소 늦은 편. 늦바람이 무섭다고 해야 할까? 4월 복수초를 시작으로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매발톱, 은방울꽃 등 수많은 들꽃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하나 둘 피었다 지면서 끊임없이 들판을 장식한다. 곰배령 산마루가 들꽃으로 완전히 뒤덮이는 때는 8월 말부터 9월까지. 이즈음 분홍빛의 둥근이질풀과 동자꽃, 노란 미역취, 진보랏빛 돌쩌귀 등이 주를 이룬다. 큰 무리를 지어 사방에 조막만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둥근이질풀과 달리, 큼지막한 얼굴의 동자꽃은 누가 볼 새라 풀잎 사이에 살포시 숨어 있다. 수줍음이 많은 꽃일까? 꽃잎 색깔도 발그스름한 주홍빛이다.

    곰배령은 자연보호와 산불 예방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입산을 통제하므로 2~3일 전에 인제국유림관리소(문의 033-463-8166)에 전화를 걸어 허가를 받아야 오를 수 있다. 진동리 강선골에서 오르는 곰배령 길의 첫 관문은 설피마을. 우리나라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소문난 마을이다. 설피마을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 좀더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오는데,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안쪽으로 들어서면 곰배령으로 향하는 강선계곡이 나온다. 이곳에서 곰배령까지는 약 4km. 쉬엄쉬엄 걸어 2시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은 초입부터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대낮에도 어두운 편이다. 그러나 곰배령 정상 부근만 약간 가파를 뿐 아이들도 쉽게 오를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등산이라기보다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라고 해야 할까?

    평탄한 길 끝자락, 산골 찻집이 있는 마지막 인가를 지나 계곡을 건너면서부터는 딱 한 사람 걷기에 좋을 정도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마치 원시 밀림을 보는 듯 울창한 숲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계곡 또한 깊어져 간다.

    좁은 숲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를 1시간여. 깊었던 계곡도, 빼곡하게 하늘을 가렸던 나무도 하나 둘 사라지고 어느새 확 트인 하늘과 함께 곰배령 특유의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천 평 구릉지에 갖가지 색깔의 야생화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먼 곳에서 찾아와 힘겹게 산을 오른 이방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것일까? 분홍, 주황, 노랑, 보라 등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흔들어댄다. 넓은 품을 벌리고 배시시 웃는 들꽃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부는 이즈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듯, 가을 들꽃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

    ☞ 곰배령 가는 길

    곰배령은 대중교통 수단이 원활하지 못하므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서울→양평→홍천→철정삼거리(검문소)에서 451번 지방도로로 우회전→상남→미산리→현리에서 우회전→방태산 휴양림→진동1교→진동2교→설피마을→양양 양수발전소→설피산장→곰배령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봉평

    꽃처녀 ‘배시시’ 수줍은 눈인사

    봉평 메밀꽃. 봉평 효석문화마을. 곰배령 계곡(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들꽃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1930년대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가산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매년 9월이면 수만 평에 이르는 들판에 어김없이 하얀 메밀꽃이 피어나는 가운데 자연과 문학을 접목한 효석문화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올해 축제 일정은 9월 2일부터 11일까지.

    축제가 아니더라도 아름답게 펼쳐진 메밀꽃밭을 누비며 그 옛날 소설 속 주인공들이 걸었던 그때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봉평장터를 벗어나 이효석 생가 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흥정천이 흐르는데, 소설 속에서 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개울이다. 개울 건너편에는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도 있다. 물레방앗간 옆에는 나귀도 있어 달빛 고운 보름달이 뜨면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허생원의 나귀가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울리며 나타날 것만 같다.

    또한 동이와 허생원이 다투던 충주집, 허생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넘던 노루목 고개도 옛 정취를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물레방앗간 위로는 이효석문학관이 있고, 그곳에서 15분쯤 걸어가면 이효석 생가가 나온다.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 주변은 모두 메밀밭으로 소설의 무대였음을 실감 나게 해 가산 문학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 곰배령에서 봉평 가는 길

    진동계곡에서 현리 방면으로 돌아나와 31번 국도를 탄다. 율전을 거쳐 운두령을 넘어 영동고속도로 속사 IC를 앞두고 6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한다. 장평 IC 인근에서 봉평면 방향으로 다시 우회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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