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못 말리는 골프 父情 ‘깡’수연을 만들다

아버지 강봉수 씨, 12세 때부터 이색 방법으로 훈련 혼자 귀가 시켜 담력 쌓고 내기 골프로 승부욕(?) 키워

  • 이종현/ 골프칼럼니스트

    입력2005-09-02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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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연(29)의 미국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 세이프웨이클래식 우승은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의 우승은 예고돼 있었고 단지 샴페인을 언제 터뜨리느냐는 시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국내 프로무대 데뷔와 동시에 2년 연속 상금왕에 오른 검증된 스타였다. 또 줄리 잉스터,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여한 국내 대회에서 이들과 맞붙어 우승한 경험도 있었다.

    12세 때 아버지 강봉수 씨의 손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한 강수연은 중학교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에 선발돼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해 세계선수권 등 아마추어 무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2000년부터 2년 연속 상금왕, 3년 연속 시즌 평균타수 1위(1999∼2002년)를 차지하며 국내 무대를 사실상 평정했다. 그리고 2001년 미국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LPGA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오늘의 강수연 뒤엔 아버지 강 씨가 있다. 열두 살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이끌고 연습장에 데려가 클럽을 쥐게 했다. 골프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 했던 강수연은 서서히 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골드CC 연습생으로 매일 반포와 기흥을 오가며 피나는 훈련을 했다. 강 씨는 딸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가끔 골드CC에서 혼자 귀가하게 했다. 성격 좋고 붙임성 있는 강수연은 혼자서 골프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강 씨의 훈련 방법은 독특했다. 동생 강진구와 함께 플레이를 시켜 저녁내기를 하거나 골프 가방 들어주기 등의 ‘조건 라운드’를 시켰다. 경기를 할 때마다 강 씨는 심판을 보며 늘 진구의 편을 들어줬고, 수연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곤 했다. 강 씨는 이렇게 강수연의 오기와 끈기, 그리고 필드에서 강하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 역시 70대 초반의 싱글급 실력자로 수연의 레슨비나 용돈 등을 줄 때는 필드에서 내기 골프를 쳐 실력껏(?) 따 가도록 했다.

    뛰어난 패션 감각 중학 시절부터 두각



    미국 진출을 위해 동생 진구와 함께 강수연을 플로리다에서 골프 유학을 시켰으며 미국 그린에 적응시키기 위해 방학 때마다 강 씨는 동행했다. 이후 강수연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강 씨는 앞에 나서지 않고 고목처럼 편안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일에 만족했다. 강수연의 대회가 있는 날이면 그의 손발이 돼서 전국을 누볐고, 이것은 미국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수연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기 위해 강 씨는 불미스런 일도 몇 번 겪어야 했지만 딸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오늘의 강수연은 바로 아버지 강 씨의 열정과 독특한 훈련법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수연은 174cm의 늘씬한 몸매로 일찌감치 ‘필드의 모델’로 평가받아왔다. 그의 패션 감각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발휘됐다. 중학교 3학년 때 머리카락에 브라운 브리지를 과감하게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이야 별난 일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학생 신분에 어긋난다’와 ‘자신감의 표현이다’는 부류로 나뉘어 강수연의 패션을 두고 얘기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가 첫 우승을 한 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화려하게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패션 감각이다. AP, AFP, 로이터 등 유수의 통신사들은 자신감 넘치는 옷매무새만큼이나 경기력도 화려했다고 보도했다.

    첫 승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강수연은 한번 시동이 걸리면 멈출 줄 모르는 몰아치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LPGA 톱클래스 선수들에게 앞으로 강수연은 주요 경계 대상이 될 것이다. 강수연은 8월22일(한국시간) 첫 우승의 감격을 안겨준 세이프웨이클래식에서도 3라운드 합계 15언더파 201타로 장정을 4타 차이로 따돌리면서 특유의 몰아치기식 샷을 선보였다.

    강수연의 특징은 이렇듯 한번 탄력을 받으면 폭주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스코어를 낸다는 점이다. 아마추어 시절인 1996년에도 로즈 여자오픈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폭주 기관차를 연상케 하는 플레이를 펼쳐 ‘깡수연’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해 강수연은 세계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개인전 우승까지 일궈내 아마추어 세계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으며 절정기를 맞은 바 있다.

    2001년 상금 3776달러 ‘쓴 경험’

    강수연의 이번 우승엔 한국 선수들이 1위부터 5위까지 차지해 우승 감격이 더했다. 장정(2위), 박희정(3위), 김주미(4위), 임성아(5위)가 나란히 리드보드에 이름을 올리며 미국 속의 코리안 투어를 연상시켰다. 특히 이번 대회가 3라운드로 펼쳐져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했고, 대회가 열린 에지워터골프장은 한국 선수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코스가 짜여져 한국 잔치를 만들기에 더없이 좋았다.

    강수연은 첫날 블루, 이튿날 옐로우, 마지막 날 화이트&블랙 컬러로 필드 패션을 한껏 뽐냈다. ‘15번째 클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골프 웨어는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멘탈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타이거 우즈가 대회 마지막 날 붉은색의 옷을 입는 것이 성적을 올리기 위한 ‘멘탈 전략’인 것처럼 자신감 넘치고 화려한 강수연의 패션은 호쾌한 플레이의 원동력이다.

    한때 강수연은 퀄리파잉스쿨(Q스쿨)에서 공동 49위로 조건부 출전권을 획득해 2001년 3개 대회에서 3776달러(상금순위 186위)를 버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며 국내로 복귀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초라한 귀향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냥 한국서 ‘뱀머리’가 되라고 권유하는 지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강수연은 2002년 Q스쿨 재수 끝에 전 경기 출전권을 따내면서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실력대로라면 우승은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2003년 LPGA 투어에서 우승컵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끝내 무관의 아픔을 맛보고야 말았다. 2004년 역시 상금랭킹 45위가 말해주듯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국내 팬들에게 강수연의 존재가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투어에서 3위, 8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시켰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몰아치기 샷으로 5년간 무관의 설움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챔피언 퍼팅을 마친 그는 주먹을 쥐어 흔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강수연의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240야드로 평범하다. 그러나 아이언샷이 매우 뛰어나며 숏게임이 강해 기술 골프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골프는 일반 스포츠와 달라서 여자의 경우 전성기가 보통 20대 후반서 30대 초반이며, 남자의 경우 30대 초반서 30대 중반이다. 29세 강수연의 부활에 LPGA 톱클래스 선수들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에서도 ‘강수연’이 아닌 ‘깡수연’으로 불릴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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