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파리의 가을 뜨거운 두 남자

드 빌팽 총리-사르코지 내무장관 ‘차기’ 경쟁 … 여름휴가도 반납 입지 다지기

  • 파리=홍용진 통신원 hadrianus@hanmail.net

    입력2005-08-31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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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가을 뜨거운 두 남자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정적, 니콜라 사르코지(왼쪽) 내무부 장관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이젠 어느 정도 서늘해진 프랑스 파리. 하지만 정계에는 파리의 가을을 뜨겁게 달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총리인 도미니크 드 빌팽과 내무부 장관이자 집권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당수 니콜라 사르코지다. 두 정치가는 5월29일 유럽연합 헌법 비준안 부결로 라파랭 총리가 사임한 이후 정권의 핵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휴가도 마다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정당 소속의 이 두 사람이 다른 정당 정치가들보다도 서로를 가장 유력한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이들의 경쟁은 같은 당 안에서 시라크파와 반(反)시라크파 간의 경쟁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지도를 획득하고자 한다.

    서로 유력한 경쟁 상대로 생각

    먼저 드 빌팽 총리는 여름 내내 자신의 집무실에 상근하고 있다. 그는 모든 상황에 대해 정기적인 보고를 받고 유사시 관련 부서와 연락을 취하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르코지 장관 또한 남부 지방의 가뭄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산불 진화 과정에서 동료를 잃고 힘들어하는 소방관들을 격려하는 등 전국을 뛰어다니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8월9일 같은 시각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기자회견을 마련해 서로가 경쟁 관계임을 확실히 드러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름휴가도 마다한 드 빌팽과 사르코지, 이들의 너무도 성실한 활동이 사실 지지도 경쟁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2003년 여름 프랑스에 40℃의 무더위가 덮쳐 상당히 많은 노인들이 사망했는데, 당시 정부는 여름휴가 중이라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라파랭 내각은 자신들의 휴가에만 급급해 국민의 생명을 돌보지 않았다는 불신감을 심어줬다. 이후 여름휴가 기간에도 정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신뢰 회복의 중요한 관건이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드 빌팽 총리와 사르코지 장관은 휴가를 반납해가며 지지도 상승을 꾀하고 있다 하겠다.



    사실 시라크의 오른팔인 드 빌팽이 라파랭의 뒤를 이어 총리로 임용됐을 때 여론은 그의 기용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그 다음 서열인 내무부 장관으로 다시 돌아온 사르코지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적절했다.

    하지만 시라크로서는 계파의 정적인 사르코지를 정부의 일인자로 임명할 수는 없는 일. 그 결과 시라크의 최측근이자 유엔에서의 반전 연설로 유명해진 드 빌팽이 총리로 임명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드 빌팽과 사르코지 두 정적의 관계는 정부 내 위계를 떠나 대등한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존 정치세력을 등에 업은 드 빌팽과 대중의 인기로 올라선 사르코지. 이들은 2007년 차기 대권후보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보수적 정책들을 제안하고 시행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행보는 제1야당인 사회당(PS)과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이와 같은 반발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프랑스 내에서의 정책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좌파와 우파 간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인 보수 정책을 세워서 성공을 거두느냐’ 하는 우파 내부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드 빌팽이 드골주의 노선을 따르는 프랑스 정통 우파에 속해 있다면, 사르코지는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따르는 새로운 우파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파리의 가을 뜨거운 두 남자

    고용 문제 담당 국가기관 인 ‘ANPE’를 방문한 드 빌팽 총리(위)와 소방관들을 방문해 격려하고 있는 사르코지 장관.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국민들에게 점수를 따려는 분야는 프랑스의 고질병인 실업과 불법이민, 그리고 최근 영국 테러 이후 더욱 민감해진 테러 예방 문제다. 더구나 이 세 가지 사안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정책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파 정책 상호보안과 상승작용

    먼저 8월 초 드 빌팽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실업률을 감소하려는 방편으로 경영자가 고용자를 좀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신고용 계약’을 도입했다. 메데프(MEDEF) 등의 경영인연합회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사회당과 노동계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은 ‘더 큰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한편 사르코지는 이민 제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준비해가고 있다. 이민관리위원회를 창설하고, 프랑스에 필요한 외국인에 대해서만 이민을 허가하며, 입국 시 생체인식 시스템을 거치도록 하는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도입하려 한다. 또 적발된 불법 이민자는 강제 출국시킬 예정이다. 이런 정책을 세우는 첫 번째 목적은 외국인들의 불법 노동을 막고 자국민들의 노동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다.

    두 번째는 프랑스 내에서의 테러 발생 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목적이다. 실제로 8월 말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자 10명이 강제 추방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8월11일에는 경찰에 불법 이민자들을 수색하는 특별전담반을 편성하는 등 이민 통제 정책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참전을 거부한 프랑스가 과연 다른 참전국들을 제치고 테러의 표적이 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제 사회에 대한 위험성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드 빌팽과 사르코지, 두 우파 정치인의 경쟁적인 보수화 정책들은 큰 걸림돌 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드 빌팽의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사르코지 지지자 모임 역시 바닷가 휴양지에서도 정책을 선전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비록 같은 당 소속 정치인들의 경쟁이지만, 이것이 우파 정책의 상호보안과 상승작용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책 수립과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두 사람의 경주는 성실하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점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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