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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무슨 성스러운 진리를 구하랴

무슨 성스러운 진리를 구하랴

“무엇이 으뜸가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을 때, 달마스님이 한 ‘확연무성(廓然無聖)’이란 대답은 그동안 여러 뜻으로 해석돼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성스러운 진리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로 해석한 현응스님(현 해인사 주지)의 해석을 따른다. 현응스님은 10여년 전 발간한 그의 불교 에세이 ‘깨달음과 산책’(해인사출판부)에서 이 ‘확연무성’을 화두로 선불교의 정수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달마스님의 말이 ‘성스러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은 당혹스럽다. 진리가 없다면, 성스러운 그 무엇이 없다면 수행을 할 필요가 어디 있으며, 왜 스님들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출가까지 한단 말인가? 달마스님의 말은 충격적인 각성을 주기 위한 반어적인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가르침의 위대함은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현응스님은 달마스님의 가르침을 ‘안경’에 빗대어 설명한다. ‘세상엔 많은 사상과 종교가 있어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마련해주고 있다. 어떤 가르침은 이 세상을 붉은 안경을 쓰고 보도록 하고 또 어떤 가르침은 푸른 안경을 쓰고 보도록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붉은(또는 푸른) 안경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뜻이며, 동시에 사물은 그러한 안경(사상체계)을 거쳐 우리의 의식 속에 정리된다고 하는 뜻이다. 또 어떤 가르침은 이 세상의 실상은 무색투명한 안경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단계를 법(진리)에 집착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세상을 일사분란하게 설명하고 이루어나가는 ‘그 어떤 진리’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통념이다. 심지어 수행자들도 이런 생각에 곧잘 빠진다. 불교야말로 다른 사상에서 볼 수 없는, 이 세상을 가장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떤 ‘법’이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마스님은 바로 이 점을 통박하고 있다. 그러한 법은 없으며, 그러한 가치체계로서의 진리도 없다고 말이다. 곧 무색투명한 안경이라 해도 그건 백해무익한 것이니, 안경 틀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세상 대다수 사상체계나 종교, 이념 등은 우리의 오랜 ‘절대불변의 진리’나 ‘법’을 추구하는 미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불교관의 핵심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가치체계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 시작은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끝은 그 추구했던 마음까지 버리는 것이 바로 선불교의 핵심이다.



현응스님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인용한 옛 선사의 시는 불교란 무엇인가의 정수를 담은 것이다.

‘존재의 속성을 알아 생활하고/ 세상의 관계를 살펴 실천하라/ 다만 잘못된 생각만 거두면 될 것을/ 무슨 성스러운 진리(법)를 따로 구하랴.’



주간동아 2005.09.06 501호 (p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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