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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이대로 독일 갈래?

본프레레는 왜 동네북 되었나

축구로 증명하려 했던 무뚝뚝한 감독 … 자신의 일 몰두 ‘방망이 깎던 노인’ 결국 바보

  • 정재윤/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프레레는 왜 동네북 되었나

결국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사퇴했다. 그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프레레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누리꾼(네티즌)들 사이에서 ‘본프레레는 희생양’이라는 동정론이 일기 시작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기자는 6월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본프레레 감독과 ‘단둘이’ 4시간 반 이상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프랑크푸르트 발트스타디움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이 열렸다. 그가 결승전에 올 것이라는 얘기는 들었으나 사전에 연락이 닿지는 않았다. 막연히 ‘경기장에서 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경기장으로 향했는데 다행히도 셔틀버스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우리 나이로 예순 … 축구 열정은 20대 열혈청년

본프레레 감독은 1946년생, 우리 나이로 예순이지만 축구에 대해서만은 무척 열정적이었다. 경기장이 가까워오자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발트스타디움에 가봤느냐”고 묻더니 “최근 리모델링했는데, 스크린을 공중에 4방향으로 설치한 훌륭한 경기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대화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한국팀의 약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모든 팀은 약점과 강점이 있다”고 답하고, “앞으로 대표팀을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라고 돌려 물으면 “약점을 보강하고 강점을 강화하겠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때문에 그의 본심을 들으려면 여러 번 묻든지, 아니면 돌려 물어서 은근슬쩍 대답을 끌어내야 했다.



그는 “한국 언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무척 민감하고 불편해했다. 자신의 리더십을 못 믿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많은 듯, 현재 자신의 상황과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얘기를 풀어냈다. 그는 특히 2002 월드컵 때와 비교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2002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과 1년 반 동안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훈련했다. K리그 구단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나는 대표팀 A매치가 있으면 겨우 3일 같이 훈련을 할 수 있다. 선수들 파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여건에서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결국 한국 축구의 약점에 관한 얘기도 나왔다. 히딩크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는 체력을 관건으로 꼽았다

“유럽 빅리그 선수들은 경기가 없는 날에도 거의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씩 훈련을 한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그렇게 하면 쉽게 지치고 피곤해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하늘은 저녁 무렵 결승전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조직력이 튼튼한 아르헨티나가 이길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브라질의 4대 1 대승. 그는 “브라질의 개인기가 이렇게 훌륭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개인기가 너무 화려한 데다 비까지 많이 와 아르헨티나의 조직력이 당해낼 수 없었다는 것.

처음엔 한국에서 온 기자를 경계하던 본프레레 감독도 여러 시간 함께 있다 보니 태도가 상당히 부드럽게 바뀌었다. 경기가 끝난 뒤엔 기자에게 먼저 한잔 하자고 청해 바에 가기도 했다.

그는 무척 외로워 보였다. 혼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고, 그 뒤에도 여러 번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힘들어하는 듯했다. 매번 “시간이 부족했다” “우리 팀은 나아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호소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높아져만 갔다.

8월7일 대구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마지막 경기. 일본에 0대 1로 졌지만 감독은 애써 “경기 내용은 좋았다. 선수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good’이란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으로 경질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이 나왔다. 한 기자가 “경기 결과는 결과다. 팬들이나 누리꾼들의 80~90%가 당신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번 대회는 국내파들을 검증하는 무대였다”고 답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시키고도 ‘烹’

이어 8월14일 본프레레 감독은 남북통일축구에서 3대 0으로 이기고는 한숨 돌리는 듯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만족스런 표정으로 “특별한 날이라 양복을 입었는데 오늘 결과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입어야 할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그리고 운명의 8월17일 사우디전. 이날 월드컵경기장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무더위 속이었다. 그러나 팬들은 냉담했다. 경기 전 감독 소개 시간에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칠 때도 붉은 악마를 비롯한 팬들은 그에게 ‘우’ 하고 노골적인 야유를 퍼부어댔다. 결국 그날 경기는 본프레레 감독이 양복을 입었음에도 0대 1로 또 졌다.

기자회견장은 거의 청문회 수준으로 바뀌었다. 한 기자가 “팬들의 야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통역 박일기 씨가 한참을 망설인 뒤에야 그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그는 “팬들이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걸 사실은 잠시 잊은 듯하다”고 대답했다.

역시나 매끄럽지 못했다. 한 번만이라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앞으로 잘하겠다”라고 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이러한 본프레레의 솔직한 항변은 팬들의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언제나 스스로 ‘매를 버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많은 언론들은 ‘본프레레 경질’을 앞다퉈 요구했다. 몇몇 신문은 마치 ‘사운을 걸고’ 본프레레를 자르겠다는 듯 덤벼들었다.

그리고 21일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K리그 올스타전에 통역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것. 아무도 그가 이런 상황에서 경기장에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감독의 거취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본프레레는 예의 “시간이 부족했다. 앞으로 대표팀을 잘 이끌어나가겠다”며 방어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썰물처럼 기자들이 빠져나간 뒤 따로 인사를 하자 본프레레 감독은 “프랑크푸르트 때가 생각난다”며 웃었다. 웃는 모습이 왜 그렇게 안쓰러워 보였을까.

이날까지 ‘사퇴 의사가 없다’던 그는 다음 날 저녁 대한축구협회 가삼현 대외협력국장을 만나 사퇴 의사를 전했다. 이제 그는 홀가분하다. 그는 사퇴 결정이 발표되던 날 밤 ‘춤을 추러 가고 싶다’고 했다.

대표팀에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원재 미디어 담당관은 “본프레레 감독은 속마음은 따뜻하고 정도 많은데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평했다. 한번은 본프레레 감독이 자신의 손자들도 자기를 무서워한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본프레레 감독은 화려한 언술이나 외모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축구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그는 한국을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고도 ‘실패한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한국을 떠나게 됐다. 그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한 지원이 없고, 언론의 비난으로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어 결국 사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성남 일화 김학범 감독은 “월드컵 4강은 하나의 신기루”라며 “누가 감독을 하더라도 신기루는 깨져야 하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9.06 501호 (p32~33)

정재윤/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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