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七毒 퇴장 시켜야 한국 축구가 산다

‘월드컵 4강’ 환상 현실은 뻥 축구 후진 문화 … 독일 월드컵 통해 새 희망 발견 ‘발등의 불’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oynews24.com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8-31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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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七毒 퇴장 시켜야 한국 축구가 산다
    박지성은 공을 차지게 찬다. 깜찍하고 알뜰하며 빈틈이 없다.

    그를 거친 공은 ‘죽어 나가지’ 않는다. 거스 히딩크는 “빠르크(박)의 실력은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공을 살려 보내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알렉스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끈끈함과 집요함을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집요한 질주와 위협적인 침투가 대단하다고 했다. 쫀득쫀득한 박지성의 질주와 침투는 한국 축구의 희망이다.

    박주영은 공을 둥글게 찬다. 콧노래를 부르듯, 툭툭.

    그는 ‘미완의 대기’에서 어느덧 대표팀의 에이스가 됐다. 혹자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축복’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박지성만큼이나 그의 발을 스친 공은 ‘생물’처럼 살아난다. 대굴대굴 구르는 ‘땅볼’과 하늘로 솟구치는 ‘똥볼’은 보기 힘들다. 짧은 보폭으로, 힘을 빼고 정확하게 발목의 ‘스위트 스폿’에 공을 맞추는 까닭이다.

    “박지성, 박주영만 빼고 다 바꿔라.”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축구팬의 성토다. 그러나 축구 전문가들은 “2006년 팀에 들어갈 선수들이 2002년 팀 선수들과 비교해 개인적인 역량에선 크게 모자랄 게 없다”고 평한다. 10여명의 ‘스타’가 주전 공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또 박지성·박주영 같은 걸출한 선수를 보유한 한국 축구,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본프레레는 ‘여론에 밀려’ 결국 옷을 벗었다(8월23일). 그는 무엇보다도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소홀했다. 감독과 선수가 ‘따로국밥’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선수 탓’을 자주 한 것도 우군의 수를 줄게 했다. 그렇다고 물러난 감독만을 탓할 수 있으랴.

    “감독이 두 번째 경질됐다. 이번 사태는 감독만 탓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선수들도 그만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황선홍 전남 드래곤즈 코치)

    유럽 명장들조차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던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이 이제는 ‘독(毒)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로 추락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해 코엘류와 8월 본프레레의 사퇴 소식을 전하며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으로 한국의 후진적인 축구 문화를 질타했다.

    세계 축구계가 한국 축구에 스며든 ‘독(毒)’의 본질을 간파한 모양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해왔고, 월드컵 4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 그 속에는 과연 어떤 독이 숨어 있기에 ‘희생양’이 연거푸 만들어지는 걸까. ‘한국 축구의 위기를 부르는 7가지의 독(毒)’의 실체를 꼼꼼히 따져보자. 위기는 기회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세계 축구의 ‘변방’이던 한국 축구의 저력을 ‘만방’에 떨쳤고, 우리의 눈높이는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오히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은 우리에게 독이 되고 있다.

    아시아 축구의 상향 평준화로 한국을 비롯한 일본, 이란 등 ‘전통 강호’들도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 힘겨운 승부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월드컵 4강까지 간 나라가 아시아에서 허덕이느냐”고 질타하고 있다.

    또 본프레레 감독이 부임하자 ‘삼류 감독’으로 낙인찍고는 좀처럼 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고, 매번 히딩크와 비교하며 장기적인 팀 만들기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기대 수준만 4강일 뿐 한국 축구는 2002월드컵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마치 히딩크가 아직도 한국 대표팀 감독인 듯 착각하고 매번 그때 당시의 성과만을 잣대로 들이댄다면 한국 축구의 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3무(無)의 대한축구협회

    한국 축구가 매번 위기에 빠지는 데는 협회의 무정책, 무소신, 무비전 등 3무(無)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협회의 독단적인 운영과 단기적인 처방은 수십 년째 반복되는 한국 축구 위기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논의가 차단돼 있는 협회의 의사결정 구조로는 임시방편 마련은 모르겠으나 장기적인 위기탈출 방안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길다.” 정몽준 회장이 1인 ‘독재체제’로 이끌어온 12년간의 축구협회의 우울한 풍경이다. 2002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한국의 4강 위업으로 치부가 가려진 한국 축구의 이면에는 ‘3무’의 병폐로 곪아가는 축구협회가 있다.

    정 회장 재임 기간 동안 한국 축구가 외형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3무 병폐의 중심에도 협회를 사유화하며 독단적으로 운영해온 정 회장이 있다. 시스템보다는 ‘회장의 뜻’에 따라 좌고우면하다 보니 애당초 연속성 있는 축구 행정과 꾸준한 대표팀 관리는 기대할 수 없었다. ‘지속적인 발전’을 막는 무능한 인적 구성과 시스템의 파행도 독선적인 협회 운영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축구계여! 공부 좀 하자

    축구계엔 전문가 집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코엘류 경질 후 기술국을 신설했다. 이 기구를 통해 각급 대표팀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인원이 부족한 데다 전문성도 회의적이다.

    현재 대표팀을 지원하는 기술위원의 구성도 전문가 집단이라기보다는 ‘축구인들의 모임’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본프레레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술위원회가 국제국이 넘겨주는 후보 목록을 발표하는 ‘마이크’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축구인들 스스로 세계 축구의 흐름과 축구 산업에 대한 이해를 늘리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또 경영 마인드를 지닌 경제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축구의 산업화를 위해 축구계로 유입돼야 한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축구협회는 2000년 1월 광고회사 경영자 출신인 애덤 크로저가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거듭난 바 있다. 그는 91명이나 되던 이사회를 12명으로 줄이고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축구협회 직원의 평균 연령을 55세에서 32세로 낮췄다. 또 인력개발국을 설치한 뒤 70%가 넘는 직원을 경영 능력을 갖춘 이들로 채우기도 했다.

    ‘태극마크’에 자긍심을 가져라

    코엘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사유 중 하나는 ‘선수 탓’ 때문이었다. 유럽에서는 감독들이 선수들을 질타하는 인터뷰가 비일비재하지만 한국 문화에서 장수가 병졸을 탓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하지만 두 감독이 선수들의 자세를 탓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이전 한국 축구 특유의 투지와 근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세대교체의 격변기를 겪었다. 황선홍, 홍명보, 김태영 등이 은퇴하며 ‘신세대’들이 팀의 주축을 이룬 것이다. 확실한 위계질서, 엄한 선배들 밑에서 생활한 이전 세대들에 비해 자율을 얻은 젊은 선수들은 그 자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2002월드컵에서 달콤한 과실을 따먹은 이후 더는 예전처럼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고 나태해진 선수에게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강인한 투지와 근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선수들의 눈빛과 플레이에는 예전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또 “대표 선수로서 최고의 경기를 보이기 위해 자기 스스로 단련해야 한다”는 ‘대선배’ 황선홍, 홍명보의 질타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뚝배기 여론’이 필요하거늘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어느 샌가 식어버리는 게 우리네 여론이다. 80%가 넘는 누리꾼(네티즌)들이 감독의 경질을 주장했다가도 막상 경질되고 나니 동정론이 확산되면서 책임을 기술위원회에 전가하려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특히 감정 그대로 널뛰는 여론을 여과 없이 보도해대는 언론들도 큰 문제다. 건설적인 비판보다는 끊임없이 ‘감독 흔들기’에만 열을 올린다. 특히 막강해진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여과되지 않은 ‘축구해설 9단’들의 댓글은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축구는 강한 상대에게 이길 수도 있지만 약체에게 패할 수도 있는 운동 경기다. 하지만 우리는 한 경기 결과에만 너무 급급한 나머지 과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급함을 드러냈다.

    그 조급증의 희생양은 코엘류와 본프레레뿐 아니라 한국 축구 자체라는 점에서 이제는 ‘진지하고 냉철’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지켜봐 줄 수 있는 ‘뚝배기 여론’이 절실하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를 통해 인내심을 배웠고, 코엘류와 본프레레를 거치며 인내심을 다시 망각했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 영입이라는 ‘버블 아웃’으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이후 줄곧 이 방식을 채택해왔다. 하지만 코엘류에 이어 본프레레까지 실패하자, 일부에서 ‘이제는 국내 지도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토종이냐 수입이냐’를 묻는 논란이 오랜만에 벌어진 가운데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외국인 감독 재선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 지도자 중에 세계 축구 흐름을 꿰뚫는 지도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수는 훌륭한 감독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도자들은 구태의연한 방식에만 의존하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감독은 ‘축구 기술자’를 떠나 관리자이면서 경영자여야 한다. 유능한 지도자들이 K리그는 물론이고, 초·중·고교까지 널리 퍼졌을 때 한국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강호의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축구협회는 유능한 한국인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도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축구인들이여, 대화합하라

    “정몽준 회장 퇴진운동은 언젠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

    2002년 정 회장 퇴진을 요구하며 축구협회 정풍운동에 서명했던 한 인사는 “축구인들의 불만이 한계에 이르러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간동아’에 이렇게 말했다. 정 회장 퇴진 운동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축구계의 뇌관이다.

    그러나 축구계 ‘골수 야당’인 이들을 바라보는 축구계 인사-축구협회에 비판적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반(反)정몽준’ 세력이 93년 정 회장 취임과 함께 축구협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주축으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위기 국면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라는 전쟁을 앞두고 전투에서 장수를 매번 갈아치우면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제는 축구인들끼리의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하나로 뭉칠 때다.

    축구협회와 반축구협회로 나뉘어 소모적인 논쟁을 일삼지 말고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한국 축구의 저력을 되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선수 차출 문제로 매번 분란의 대상이 돼왔던 축구협회와 프로구단들의 갈등도 이제는 ‘전시체제’라는 위기감 속에서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2002년 6월. 모두 다 아다시피 ‘우리는 미쳤다’. 한반도는 붉은색의 거대한 용광로였다. 우리는 선수들과 함께 뛰고 넘어지며, 천둥 같은 응원으로 승리를 염원했다. 작은 축구공은 온 나라를 해방구로, 잔치마당으로 만들었다. 외신은 변방의 ‘광란’에 당혹하면서도 그 순수함을 만방에 알렸다.

    “월드컵은 내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추억할 수는 없다. 나를 열광시켰던 건 그네들의 순수한 표정이었다. 그처럼 욕심 없고 깨끗한 얼굴과 살아 움직이는 몸짓에 나는 굶주려 있었다. 김남일이 이 땅 뭇 여성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건 그동안 조선의 남자들이 조선의 여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시인 최영미)

    그러나 꿈★은 추억으로 사그라지는가. 앞으로 9개월. 한국 축구는 콧노래를 부르며 또 햅쌀밥처럼-‘둥글고, 차지게’-다시 뛰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다시 축구의 ‘ㅊ’자만 나와도 얼굴을 찡그리게 된 뭇 여성들을 또 한번 설레게 만들어야 한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 위기를 초래했던 7독’을 제거하자. AGAIN 2002,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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