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1

2005.09.06

마약과의 전쟁 벌이는 ‘비사 그루파’

대도시 부유층 중심으로 중독자 확산 … 평양에만 1만명 이상 추정

  • 곽대중/ 데일리NK 기자 big@dailynk.com

    입력2005-08-31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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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과의 전쟁 벌이는 ‘비사 그루파’

    4월 북한에서 유통되는 ‘아이스’ 필로폰을 중국으로 밀반출해서 찍은 것이다.

    북한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8월 초 내각 지시로 ‘마약 소탕 그루파’가 조직되어 평양, 함흥, 신의주 3개 도시에서 마약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루파는 ‘그룹’을 뜻하는 러시아어로 일종의 태스크포스팀을 가리킨다. 북한에서는 긴급을 요하거나 부서 간 협조가 필요한 중대 사안이 있을 때 그루파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한다. 남한의 역대 정권에서 만들어졌던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대표적인 그루파가 비(非)사회주의 그루파. 북한 주민들은 ‘비사’라고 약칭한다. 어느 지역에 “비사가 떴다”고 하면 고위 간부에서부터 일반 주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 한다.

    돈 많은데 별다른 유흥시설 없다 보니…

    ‘비사’는 사회주의적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단속하는 조직이다. 김정일이 지시를 내린 날짜를 따서 6·24 그루파, 9·27 그루파로 불리는데 한시적인 임무를 띠고 운영된다.



    각 그루파에는 그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해결과제가 주어진다. 상(商)행위를 한 사람이나 무직자, 성매매자, 유랑 걸식하는 사람을 집중 단속하거나 주민들의 이색적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단속하는 그루파도 있다. 이번에 조직된 ‘마약 소탕 그루파’ 역시 이러한 비사 그루파의 일종이니, 역으로 북한 내 마약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평양 등 3개 도시에는 50여명의 ‘마약 소탕 그루파’가 파견되었다. 구성원들은 한국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의 감찰과 직원과 검찰소(검찰청) 검사, 그리고 협조자로 변신한 마약 전과자들이다.

    북한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대부분 필로폰계열. 하얀 알갱이 모양이어서 주민들은 ‘얼음’이라는 은어로 부른다. 얼음은 다시 ‘총탄’과 ‘아이스’로 나뉘는데, 총탄은 정제 되지 않은 알약 형태의 필로폰을 말하고, 아이스는 가루로 정제된 필로폰을 말한다.

    가격은 총탄이 한 알에 1.2달러 정도이고 아이스는 총탄의 3~5배인데, 품질이 좋으면 10배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덴다’와 ‘도리도리’라는 마약이 있다. 한국에서도 ‘도리도리’는 ‘엑스터시’를 뜻하는 은어인데 북한도 마찬가지. 북한의 마약 수요자들은 ‘도리도리’를 네덜란드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격은 5달러 정도. ‘덴다’는 중국산 엑스터시를 이르는 말인 것 같은데, 가격은 ‘도리도리’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정도다.

    북한의 마약 수요자들은 얼마나 될까? 신의주에서 마약 밀수를 하고 있는 북한 주민 K 씨는 “신의주에만 1000~2000명이 정기적으로 마약을 찾고 있다. 평양은 들어가는 물량으로 보아 최소 1만명 이상의 중독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약과의 전쟁 벌이는 ‘비사 그루파’

    올해 초 모 지역에서 ‘비사’에게 체포돼 공개 군중재판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북한 주민들. 북한에서 몰래 카메라로 찍어온 사진이다.

    7월29일 신의주에서는 공개 군중재판이 있었는데, 피고인이 자그마치 65명이었다고 한다. 죄목은 마약, CD 유통, 인신매매(탈북 방조) 등등. 그중 30명이 신의주 출신이 아니라 평안남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K 씨는 “아마 이들은 신의주로 마약을 구하러 들어왔다 잡힌 경우일 것”이라고 말한다.

    92년 김정일 지시로 ‘백도라지 사업’ 시작

    먹고살기 힘든 북한에서 마약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이며, 왜 마약을 찾는 것일까?

    북한은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참혹한 식량난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 부유층이 자라나 현재는 말할 수 없는 빈부 격차가 생겨났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들여온 원조식량을 빼돌려 장마당에 유통시키거나 고리대금업을 한 사람들은 식량난 시기를 거치면서 ‘떼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돈을 많이 갖고 있어도 ‘티’를 내지 못하는 곳이 북한이라는 점 또한 알아둬야 한다. 북한 ‘떼부자’들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값어치가 떨어진 북한 화폐 대신 달러로 전 재산을 바꿔놓았다. 이것을 항아리에 담아 방바닥에 파묻어놓거나 중국에 자금관리인을 두고 반출해놓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은닉하고 있다.

    북한 떼부자는 한국에서처럼 국외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거나 고급술집에서 주색에 빠져 살 수가 없다. 이들이 부를 향유하는 것이라고는 가전제품을 일본제로 바꾸거나 이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는 것뿐이다. 그러니 마약은 부자들의 마지막 골인 지점이 된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도 마약에 중독됐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북한은 정부 차원에서 마약을 만들어 해외에 밀수해왔다. 2002년 7월 대만 경찰은 북한 해역에 들어갔을 때 헤로인을 건네받았던 대만 선박 순길발(順吉發)호를 압수수색해 헤로인 79kg을 적발해냈다. 순길발호 측과 마약을 밀매한 사람은 북한 해군의 여단장급 장교였다고 한다.

    2000년 2월 일본 경찰은 필로폰의 원료인 각성제 암페타민을 밀반입한 혐의로 북한인 무역업자 이한상 씨를 체포했는데, 압수한 각성제는 250kg(시가 150억엔)으로 일본의 마약 단속 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현재 호주에서는 2003년 4월 헤로인 50kg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북한 무역선박 봉수호 선원 4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은 북한을 헤로인 생산과 밀거래의 중심국가로 지적하고 있고, 유엔의 재정 지원을 받는 세계 마약류 통제기구인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북한을 각성제인 메스암페타민의 주요 생산국으로 지목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92년부터 김정일의 직접 지시로 ‘백도라지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는데, ‘백도라지’란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를 말한다. 이때부터 감자밭을 뒤집어엎고 양귀비를 심기 시작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대규모 제약회사 하나를 헤로인 전문 제조공장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백도라지 밭’에서 생산된 생아편은 주민들 사이에서 비상약으로 유통되고 있다.

    북한에서 제조된 마약은 해외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로도 스며들 수밖에 없는 것.

    ‘마약소탕 그루파’의 활동은 일시적으로 3개 도시의 마약 복용자 수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유흥 수단이 없고, 의약품도 부족한 북한에서 마약 수요는 쉽게 줄어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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