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7

2005.08.09

지상 ‘절대의 표정’ 해인사 비로자나불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입력2005-08-04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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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로병사라는 ‘감옥’에 갇힌 인간은 늘 초월을 꿈꾼다. 삶의 고통을 한꺼번에 씻어줄 무한대의 행복과 평안…. 비록 내가 그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상태를 표현해줄 유형의 물건이 있다면 어떨까. 불가에서 불상(佛像)을 만들었던, 혹은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바람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최근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에 있었던 비로자나 좌불상(毘盧舍那 坐佛像)이 지금까지 국내에 보고된 목조불상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이 불상은 무려 1200여년 전인 중화 3년(883년)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기껏해야 70~80년을 사는 인간의 삶에 비춰볼 때, 1000년 전 만들어진 물건이 전해 내려온다는 것, 그것도 나무가 삭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돼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생 성모상을 제작해오면서 ‘초월의 얼굴’, ‘절대의 표정’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조각가 최종태(73)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찰인 길상사의 관음상을 제작했다. 그는 평생 전 세계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절대평안의 마음상태’라는 관념을 형상으로 표현한 조각상의 얼굴들을 찾아다녔는데, 우리나라 석굴암이나 반가사유상을 대적할 만한 것은 없더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가 해인사 불상을 보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나는 전문가적 안목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며칠 전 해인사에서 본 비로자나 불상 얼굴은 분명 석굴암 불상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앉은키 높이가 1.25m이니 보통 장정보다 체구가 좀 큰 편이라 할 이 좌상은 반달 모양의 이마에 갸름한 얼굴, 단단한 어깨, 죽 뻗은 허리가 그야말로 ‘몸짱’이었다. 감은 듯 뜬 듯 아래를 향한 두 눈, 미소를 짓기 막 직전인 듯한 가늘지만 뚜렷한 입술, 적당한 살집의 볼과 우뚝한 콧망울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참으로 잘생겼다.

    불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비로자나불은 ‘깨달은 붓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이 말대로 불상의 표정은 평안과 행복 그 자체다. 재미있는 것은 불상의 모습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정면 형상은 ‘절대의 얼굴’이었지만 보는 지점을 달리하면 희로애락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모두 느껴볼 수 있었다.



    비로자나불은 오른손 손바닥을 펴 들고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불상의 자세를 하고 있지 않다. 왼손 집게손가락을 들어 오른손 손바닥으로 감싸 안고 있는 수인(手印)을 짓고 있는데, 이는 ‘너와 나’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불상의 얼굴도 그랬다. 보는 지점마다 시시각각 다른 표정의 얼굴은 마치 이승과 저승, 지금과 여기, 고통과 희열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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