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2005.08.02

이영애 완벽 변신 … 내 복수극은 끝났다

  • 입력2005-07-2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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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애 완벽 변신 … 내 복수극은 끝났다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한국을 방문해서 수많은 한국 영화를 본 뒤 돌아갔다. 그는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식 발표는 7월 말에 예정돼 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베니스 진출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박 감독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양수리 영화종합촬영소에 있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사운드 믹싱 작업을 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양수리로 갔다. 2004년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이후 그는 부쩍 해외 나들이가 잦아졌다.

    “나는 해외 영화제에 참석할 때 꼭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데리고 간다. 보통 영화제에 참가하면 닷새가 걸린다. 그중 하루 정도는 같이 지낸다. 나머지 시간은 인터뷰나 시사회, 파티 같은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딸은 내 영화의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영화사 직원들과 같이 논다.”

    부인도 함께 가느냐고 묻자, “물론이다. 아내는 내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다. 시나리오와 스토리 보드를 꼼꼼히 읽는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다 외운다. ‘금자씨’의 경우도 그렇다. 영화 엔딩에서 음악을 어떤 걸 쓸까 고민하는 중에 어느 하나를 두 사람이 똑같이 주장해서 결국 그걸로 했다. 영화 기획부터 각본, 편집, 음악작업까지 아내의 의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목도 좋고 취향도 좋고. 가장 훌륭한 조언자다”며 단언했다.

    박찬욱 사단 배우들 대거 출연 … 베니스 진출 기정사실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 뒤 박 감독은 자신이 그토록 만들고 싶어했던 영화 작업에 착수한다. 그것이 ‘복수는 나의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복수 3부작이 기획된 것은 아니다. ‘올드보이’ 각본이 끝나고 촬영 들어갈 무렵, 마음속으로 복수 3부작을 계획했다.



    그는 ‘올드보이’를 다시 찍으라면 찍을 수 있는데, ‘복수는 나의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영화만의 서늘한 냉기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복수 3부작 중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한다.

    “‘복수’ 때는 스타일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올드보이’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됐다. ‘좋든 싫든 내가 갖고 있는 한계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이니까 내놓고 한번 해보자고 편하게 했던 작업이 ‘올드보이’다. ‘금자씨’는 인공적인 세트를 줄이려고 했다. 그래서 주요 장면들은 로케이션으로 찍었다. 복수를 계획하는 금자가 일하는 빵집은 일산에서 찍었다. 부득이한 공간은 세팅을 했지만, 원칙은 로케이션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로케로 찍을 때 조명 부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허술한 느낌이 싫어서 세트 촬영 못지않게 하려고 했다. 결과는 로케이션인데 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올드보이’는 입자가 거칠고 브리지 바이 패스(필름현상 기법으로 채도를 낮추고 대비를 강조한다)의 거칠고 어둡고 청록색이 드는 화면이었지만, ‘금자씨’의 앞부분은 브리지 바이 패스를 많이 하지 않아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강한 원색을 많이 썼고, 벽지·우산·상자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는 배제했다. ‘올드보이’와 어떻게 다르게 만들까를 많이 생각했다.”

    이영애 완벽 변신 … 내 복수극은 끝났다

    ‘친절한 금자씨’ 촬영현장의 박찬욱 감독(맨위 오른쪽)과 이영애. 박 감독의 ‘올드보이’ (가운데)와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에는 박찬욱 사단이 대거 출연한다. 물론 거의 모든 장면에 주인공 금자 역의 이영애가 나오는 원톱 영화지만, 금자의 복수 대상인 백 선생 역에 최민식이 등장하는 것을 비롯해서 송강호, 신하균, 강혜정, 오광록, 오달수 등 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 나왔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친절한 금자씨’를 찍고 이영애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고 말했다. 아니, 저 배우가 어떻게 저렇게 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는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영애 양은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에서 이미 좋은 연기가 어떤 것임을 보여주기도 했고 스스로 경험하기도 했다. 기초가 돼 있는 것이다. TV 드라마나 CF를 통해서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인기도 얻을 만큼 얻었다. 때문에 어떤 예술적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이가 든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 물정도 알게 되고, 소녀 시절처럼 세상의 모든 일이 선의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선의가 늘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님을 알 나이가 됐다. 그런 여러 가지 고통, 즉 직접 겪었거나 주변에서 보았을 그런 고통이 연기에 반영된 것이다. 그녀는 솜사탕 같은 이야기에 만족할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차기 작품 청춘 드라마 찍을 것”

    그는 이영애를 ‘영애 양’으로 표현했다. 이영애 씨가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하자, 그는 “영화도 많이 보고 독서도 열심히 하는 배우다. 이 세상의 예술적 표현이라는 게 TV에서만 보는, 대부분의 상업영화에서만 보는, 그런 진부한 표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봄날은 간다’ 마지막 신에서, 유지태가 들고 있던 화분으로 이영애의 머리를 치지 그랬냐고 허진호 감독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봄날은 간다’ 마지막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다시 연애를 시작해보자고 유도하는 것은 정말 뻔뻔스러웠다.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를 거기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는 다른 복수 3부작의 주인공들에 비해 가장 깨달음에 근접해가는 인물이다. “자기 내면을 가장 깊이 응시한 사람이 금자”라는 것이다.

    박 감독은 왜 복수라는 테마에 끌렸을까?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소설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한 문화에 복수가 테마로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복수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기 내부에 원죄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죄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하는 욕망, 그리고 복수를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쾌감, 자기는 깨끗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그래서 악을 응징한다는 그것이 너무 흥미롭다.”

    복수를 하면 자기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주인공들은 복수를 하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파괴적인 분노, 어두운 열정 때문이다. 이 분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박 감독은 이제 흥행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칸 수상으로 지명도가 높아져서 해외 판매분만으로도 투자 금액이 회수될 정도다. 그러나 그는 조심스러웠다.

    “해외 판매도 상업적인 실패를 연달아 두 번 하면 공기가 달라지고, 세 번 하면 추위가 온다. 그러니까 한 스태프 한 스태프가 조심스럽다. 외국에 비싸게 판다고 하지만 그 작품이 이익을 내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가격이 내려가겠지.”

    이제 복수 3부작도 끝났다. 앞으로 박찬욱은 어떻게 변화할까?

    “내 영화는 언제나 스릴러였다. 나는 언제나 장르 안에서 사고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HD 영화는 청춘 드라마다. 성장영화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틀을 자연스럽게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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