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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대처리즘의 영향

숨 막히는 사회 상황 … 훌리건 난동으로 폭발?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숨 막히는 사회 상황 … 훌리건 난동으로 폭발?

한국의 축구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는 전혀 악마 같지 않다. 어느 관중보다 열광적인 응원을 하지만, 질서정연하고 뒷정리도 잘해 악마라기보다 차라리 천사 같다. 그들은 자기 통제된 열정의 표출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대로 이 열광이 제어되지 않고 무분별하게 폭발하면 난동꾼이 되기 쉽다. 어느 경기보다 격렬한 속성을 갖고 있는 축구경기장에선 특히 그러기 쉽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과거 영국의 훌리건(hooligan)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1980년대에 출현한 영국의 ‘종족’은 축구장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영국 팀이 출전한 경기를 극성스레 쫓아다니면서 상대 응원단을 위협하는 바람에 유럽의 축구장에선 영국 팀 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급기야 자국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팀인 리버풀이 결승전에 진출한 경기에서 폭력사태를 일으켜 수십명이 죽는 참사까지 빚어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영국 정부는 강력한 단속책을 내놓았다. 그 다음 시즌에 영국 축구팀의 유럽 원정을 전면 금지했고 ‘반훌리건법’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영국을 통치하던 ‘철의 여인’ 대처에게 훌리건은 가장 골치 아픈 사회문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훌리건이야말로 사실은 대처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질환이었다. 훌리건이 기승을 부리게 된 기원을 따져보면 거기에는 대처리즘이라는 사회·경제적 신자유주의 정책이 있었던 것이다. 대대적인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으로 대변되는 대처리즘으로 숨 막히게 된 영국의 젊은이들이 내지른 일그러진 비명과도 같은 것. 그 폭력화된 형태가 이를테면 훌리건의 난동이었던 것이다.

가령 광부들의 대규모 파업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대처한 것이 대처리즘의 대단한 업적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이를 역으로 들여다보자면 노동자들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밀려난 젊은이들에게 축구장은 소외감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훌리건들을 낳았던 대처리즘 이후의 영국의 사회상은 여러 감독의 카메라에 잡혔다. ‘내비게이터(The Navigators)’는 리얼리즘 작가인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남부 요크셔 지방의 철도 건설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제목의 ‘내비게이터(항해자)’란 원래 19세기에 영국의 수로와 철도 공사에 동원됐던 아일랜드 노동자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민영화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들에게 닥친 현실이 험난한 파도를 헤쳐가는 항해와도 같다는 의미다.

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시기적으로는 대처가 물러난 이후다. 그러나 대처 은퇴 후에도 영국은 여전히 대처리즘이 지배하고 있는 시절이었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철도 노동자들은 처음엔 민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근무 조건은 열악해지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변화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머리와 함께 몸으로 전해져온다. 과중한 노동에 노동자들은 병으로 쓰러지고 죽음을 맞는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철도 노동자가 감독 켄 로치에게 보내온 편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작업 현장에서 암에 걸린 이 노동자의 얘기가 영화로 옮겨진 뒤, 이 편지의 발신자는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대처리즘이 가져온 변화는 사회 구석구석에 미친 것이었다. 다른 많은 영화들에서 ‘대처식’으로 재편되는 영국 사회에 대한 은유와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런 결과다.

실직자들의 얘기를 다룬 ‘풀 몬티’가 그 직접적인 영향을 다루고 있다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나 클레이 애니메이션인 ‘치킨 런’은 간접적인 은유를 담고 있다. 가령 ‘치킨 런’에 등장하는 치킨 파이 자동제조기가 ‘대처리즘’에 대한 알레고리(비유)가 아니냐는 식이다. 올해로 대처가 물러난 지 15년,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지 8년. 이제 대처리즘은 더 이상 없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동당의 집권은 대처리즘에 대한 반대가 아닌 그 계승을 통해 가능했다. 이른바 ‘제3의 길’이라는 우경화된 정책으로 노동당은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대처리즘의 본류인 보수당이다. 이번 영국 총선거에서 보듯이 ‘보수당 같은’ 노동당 탓에 차별화된 공약을 내세울 수 없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대처리즘을 어머니(?)로 한, ‘이부(異父)형제’ 같은 두 당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랄까. 훌리건은 없어졌지만, 누가 집권하든 내비게이터들에겐 여전히 힘겨운 현실이다.



주간동아 2005.05.17 485호 (p81~81)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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