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3

2004.12.09

현대車 인도 도로 ‘초고속 점령’

진출 6년 만에 점유율 20% … 현지형 모델 개발·고급 브랜드 마케팅 ‘주효’

  • 인도 델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12-02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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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車 인도 도로 ‘초고속 점령’

    인도 남동부의 항구 도시 첸나이에 위치한 현대차 인도공장 정문.

    11월17일 인도 뉴델리의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판매점 ‘사마라 현대’에서 만난 사업가 라지브 아후라씨(35)는 일주일 전 계약한 상트로(Santro)의 출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연말 특별세일을 통해 상트로를 3만 루피(약 70만원)나 싸게 살 수 있었다며 흡족해했다.

    “1년 전쯤 액센트를 구입했는데,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품질이 우수하니까요. 상트로는 아내에게 선물할 생각입니다. 요즘 인도 여자들, 상트로의 매력에 푹 빠져 있거든요. 상트로가 가장 인기 있는 혼수품목일 정도죠.”

    인도에서 현대차가 생산하는 소형차 상트로 열풍이 뜨겁다. 자동차와 시내버스,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대중교통수단), 자전거 심지어는 소까지 한데 뒤섞여 있는 복잡한 인도의 시내 도로에서 낯익은 현대차 로고를 단 상트로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트로는 아토스를 인도형 모델로 수정 개발해 인도에 출시한 제품으로, 역으로 국내에 도입되어 비스토란 이름으로 판매될 정도로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 소비자들은 상트로에 ‘톨 보이(Tall Boy)’란 애칭을 붙여줬다. 다른 경·소형차들보다 키가 크기 때문이다. 상트로 출시 이전에 인도 도로를 점거하던 800cc급의 경차는 차체가 워낙 낮아 고개를 숙이며 탑승해야 했는데, 상트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시크교(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발원한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융합된 종교) 교인인 리시 팔 싱씨(21)는 “머리에 터번을 두르는 시크교인들은 기존 경차를 타는 데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톨 보이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도 사람들은 식구가 많아서 한 차에 7명씩 타기도 하는데, 상트로는 실내 공간이 넓어 좋다”고 덧붙였다.

    현대車 인도 도로 ‘초고속 점령’

    뉴델리의 현대차 판매점 ‘사마라 현대’에서 상트로를 살펴보고 있는 인도인 부부.

    단기간에 2위 자동차 메이커 자리 굳혀



    최근 국내 산업계가 브릭스(BRICs)에 주목하고 있다. 브릭스란 2003년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로, 이들 4개 국가는 장기화된 세계 경기 침체를 타개할 수 있는 ‘꿈의 시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광활한 영토,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가진 브릭스가 2050년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런 시점에서 브릭스의 한 멤버인 인도에 진출해 짧은 기간에 큰 성공을 거둔 현대차가 주목을 끈다. 인도는 한반도의 15배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 10억5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다. 1991년 개방정책으로 전환한 이후 해마다 6%대의 꾸준한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오고 있다. 자동차 시장규모 또한 대폭 확대되는 추세로, 올해 승용차 수요는 75만대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17% 증가한 규모.

    98년 9월23일 첫 판매를 한 이래, 현대차 인도법인 현대모터인디아(HMI)는 비약적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2만대 판매 돌파, 2003년 12월 인도에서 최단기간 생산누계 50만대 생산 기록 등의 성과를 올렸다. 현재 현대차는 인도 내수시장 점유율 20%를 기록하는 2위 자동차 메이커로 명실공히 자리를 굳힌 상태다.

    현대車 인도 도로 ‘초고속 점령’

    9월 콜카타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서 열린 겟츠의 런칭 행사(왼쪽)와 델리 시내를 달리는 상트로.

    현대차가 빠른 성공을 거둔 비결은 뭘까. 델리에 위치한 현대차 판매본부의 민왕식 이사는 “기존 자사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는 경쟁사들과 달리 현대차는 인도형 모델을 개발,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고 평가했다. 진출 초기 800cc급 스즈키 마루티가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세련되면서도 마루티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는 것.

    주 고객은 상류층과 신흥 화이트칼라

    현대차는 인도의 자동차 연료 질이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10만km가 넘는 로드 테스트와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인도형 엔진을 개발했다. 또 여름에 최고 50℃까지 올라가고 습기 많은 인도 기후를 고려해 에어컨디셔너 기능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높은 강우량,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도로의 열악한 사정을 감안해 방수 기능을 보완했다. 여기에다 추월할 때 엄청난 가속을 하는 거친 운전습관을 고려해 파워 트레인(Power Train)을 강화했다. 자동차 문화 가운데 인도가 우리와 크게 다른 점 하나는 경적을 수시로 사용한다는 것. 서로 속도가 다른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가 한데 달리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는 경적과 브레이크 기능 또한 보강했다.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는 주요 자동차 소비자인 중·상류층과 신흥 화이트칼라 층을 겨냥한 것. 이들에게 좋은 품질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인도 최고의 영화배우 샤루칸을 모델로 내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하는 한편, 정비망을 지속적으로 증대했다. 민왕식 이사는 “딜러 매장마다 25일 분량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게 해 계약 즉시 출고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질 높은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지화 전략과 고급 브랜드 구축은 판매 급증으로 이어졌다. 소형차 판매 부문에서 2000년 상트로가 마루티를 제치고 1위를 차지, 현재까지도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10월, 현대차 인도법인은 창사 이후 최다 판매를 일궈냈다. 10월 한 달에만 2만2000여대를 판매, 전년 동월 대비 70%의 증가세를 달성한 것. 수출 또한 9446대를 기록, 전월 대비 13.7%의 증가를 기록했다. 이에 현대차는 판매목표를 올 초 19만대에서 21만5000대로 상향 조정했다.

    99년 10월 인도의 한 경제신문이 발표한 브랜드 파워에 따르면 현대차 상트로가 1위를 차지했다. 상트로 출시 1년 만의 일이다. 일본의 전자업체 아이와(Aiwa)와 인도 자동차 브랜드인 인디고(Indigo)가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4800대를 판매, 최고 실적을 낸 딜러로 꼽힌 델리의 사마라 지점 라즈니시 와드하완 사장은 “현대차 소비자는 젊은 중산층”이라고 소개했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 전략이 적중해 상류층과 신흥 화이트칼라가 애용한다는 것. 이는 고객조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2004년 1월 이뤄진 고객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 상트로 소비자들은 다른 소형차 소비자들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들은 소득이 높고,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에어컨, 전자레인지, CD플레이어, 세탁기, 냉장고 등 전자제품의 보유 비율 또한 높았다. 컴퓨터 보유 비율, 집에서의 인터넷 사용 비율, 해외여행 경험 비율, 국내여행 시 항공 이용 비율 등도 높게 나타났다.

    현대車 인도 도로 ‘초고속 점령’

    기존 소형차보다 키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 상트로 신문광고(위)와 인도에서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배우 샤루칸이 출연한 상트로 광고.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 진출하면서 100% 단독 투자라는, 인도 시장 진출 방식에서는 다소 생경한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오랜 전통으로 자부심이 강한 인도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모험적인 선택이었지만, 현대차는 현지 생산 비중을 크게 늘려 그런 우려를 불식했다. 2003년 부품 국산화(인도 생산을 뜻함) 비율이 상트로는 91%, 액센트는 86%, 쏘나타는 60%에 달할 정도. 이는 마루티(70~85%), 도요타(50~59%), 혼다(55~60%) 등 일본 기업의 상황과는 사뭇 차별되는 점이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첸나이에 자리한 현대차 인도공장에는 77개 부품업체도 함께 진출해 있다. 인도공장을 총괄하는 성병호 부사장은 “자동차로 1시간 거리 내에서 구매하는 부품 비율이 85%에 달할 정도”라며 “덕분에 인도인들은 현대차는 한국 브랜드이지만, 인도 생산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인도인 직원들 회사 자부심 ‘대단’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수출업체로 도약했다는 점 또한 현대차가 인도 국민들에게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올 9월까지 수출 누계 실적은 총 5만1264대로 2위 마루티의 3만9270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김철환 차장은 “인도에서 생산되는 상트로와 액센트가 유럽과 서남아시아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 현대차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현지화 전략의 성공은 인도 직원들의 직장 만족도도 높이고 있다. 98년부터 현대차에서 일해온 라트나쿠마르씨(40)는 “아홉 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현대차 직원인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활짝 웃었다. 첸나이에 있는 어떤 기업보다도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을 뿐 아니라, 가족 중 현대차 직원이 있으면 인도 지역사회에서의 지위가 향상된다는 것. 서완석 총무과장은 “9월 170명 규모의 직원 모집에 7000명이 지원했을 정도”라며 “현대차 로고가 새겨진 와이셔츠를 입은 채 식당에 가면 취직 부탁하는 사람이 줄을 선다”고 귀띔했다.

    현대차는 인도 내수시장을 확대해나가는 동시에 인도를 소형차 수출 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중·대형차를 생산하는 국내 생산기지와 윈-윈 전략을 펼치겠다는 의미. 유럽이 교토의정서를 채택,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소형차 수출로 중·대형차 수출 쿼터를 확보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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