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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얍! 소리로 얼음이 ‘꽁꽁’

음압 냉동 아이스크림 제조 가능 … 소리 공진 냉각기술 전자제품 상용화 눈앞

  •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pobye2002@yahoo.co.kr

이얍! 소리로 얼음이 ‘꽁꽁’

이얍! 소리로 얼음이 ‘꽁꽁’
허풍의 나라답게 중국 무협소설에는 기상천외한 고수들이 대거 출연한다. 낭떠러지를 밧줄 하나 없이 경공만으로 뛰어 올라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나무 가지 끝에서 균형을 잡으며 춤추듯 검을 놀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검 한번 휘두르지 않고, 기합 소리만으로 상대방을 꼼짝달싹 못하게 얼려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고수의 실력은 단순히 상대편 기선을 제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콧수염 끝에 고드름을 줄줄 매달게 하는 데에까지 이른다. 물론 이들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상식적으로 손에서 나오는 장풍이나 기합만으로 사방을 온통 얼음바다로 만드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데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고수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들 실력의 원천은 무공이 아닌 ‘과학’이다. 상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나. 소리를 이용해 얼음을 얼리는 이들의 기술은 무협소설에 나오는 무림 최고수의 실력에 견줄 만하다. 소리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열을 식히는 냉각기술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소식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피커를 중요한 냉각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역사는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리를 이용한 냉각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음압(音壓)을 이용한 냉동기술과 음의 공진현상을 이용한 냉각기술이다. 소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기술로 보이지만, 실은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발현된다.

음압을 이용한 냉동기술은 말 그대로 음의 압력을 이용한 것인데, 보통 음향냉동기술로 부른다. 음의 압력은 대형 오디오를 통해 쉽게 체험할 수 있다.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면 쿵짝쿵짝하는 리듬에 따라 스피커의 진동판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음이 나는 압력에 의한 것이다. 또 스피커의 진동판에 손바닥을 대보면 ‘퉁퉁, 퉁퉁’ 하는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렇게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는 모양새는 피스톤과 다를 바 없다.

만약 밀폐된 용기 안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기체를 가득 넣으면, 스피커가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기체는 그만큼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기체의 압력이 변화한다.

기체는 압력이 높아지면 온도가 올라가고, 반대로 압력이 낮아지면 온도가 낮아진다. 따라서 스피커의 진동판이 튀어나오면서 기체를 밀어내면 갈 곳이 없어진 기체들이 압축되면서 압력이 높아져 열이 나고, 반대로 진동판이 안으로 들어가면 압력이 느슨해지면서 차가워진다. 이때 기체의 압축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그때마다 밖으로 빼버리면, 팽창과정마다 온도가 낮아져 결국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냉각시킬 수 있다.

스피커 진동으로 기체 압력 변화

실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연구팀이 이 기술을 이용해서 아이스크림 제조가 가능한 냉동고를 선보인 바 있다. 물론 연구팀이 사용한 스피커는 우리가 보통 음악을 감상할 때 사용하는 스피커가 아니다. 음향냉동에 사용하는 스피커는 인간이 보통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음압보다 두세 배 높아야 한다. 또 압축팽창에 사용되는 기체도 헬륨이나 아르곤, 크세논 같은 특수 가스다.

이 기술의 장점은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소리의 공진현상을 이용한 기술은 냉동기술이라기보다 냉각기술에 가까우며, 사용 범위도 전자제품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부채질을 할 때 빠르고 힘차게 움직이는 편이 느리고 약하게 움직이는 경우보다 시원한 것은 당연지사. 이것은 부채가 빠르게 움직일 때 공기의 흐름이 더 불규칙해지고 어지럽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채나 선풍기를 사용해 바람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인위적으로 공기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든다면 온도를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공진 냉각기술은 바로 기체의 진동현상을 이용해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기의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중 공진현상을 이용해 기체의 와류를 유도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은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공진현상은 다리를 무너뜨릴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교량 근처에서 발생한 공기 흐름이 다리 상판의 주파수와 우연히 일치하면서 다리를 무너뜨린 일이 실제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물질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춰 공진을 일으킨다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리도 무너뜨릴 힘 공진현상

이른바 오페라 가수가 높은 음을 내어서 유리잔을 깨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즉 공기가 진동하는 정확한 주파수를 맞추고, 공기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들어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공진 냉각기술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서영 박사팀에 의해 현실화되어 전자제품 냉각 시스템에 곧 적용될 전망이다.

이얍! 소리로 얼음이 ‘꽁꽁’

앞으로 냉각기술은 성가신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 음향기술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기술은 기존의 냉각팬과 달리 모양이나 크기를 맘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얇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PDP) TV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소음도 거의 없다.

공기를 진동시키는 주파수 영역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10~20Hz 정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냉각기능을 높여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공기의 진동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자제품 내부의 온도를 편차 없이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팬이라고 해도 복잡한 전자부품들이 빼곡이 들어찬 내부를 골고루 식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기존의 팬을 적용한 전자제품들은 상하좌우의 온도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전자제품의 수명을 단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온도편차 없이 골고루 냉각될 수 있는 공진 냉각기술은 차세대 전자제품 냉각기술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 이 기술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 팔려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냉각팬 대신,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열을 식히는 새로운 개념의 전자제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소리로 냉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바로 이들이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78~79)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pobye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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