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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남대문 인근 사무실 내고 부친 묘 이장 … 핵심 측근들 “정계 복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 정계를 은퇴한 지 20여개월 이회창 전 총재의 일상은 평범하다.
  • 그런 그의 주변에 ‘정치’의 기운이 감돈다. 칩거와 은둔 대신 공개(사무실)와 활동(미국 방문)의 모습이 확연하다.
  • 그의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이는 것일까. 아니면 언론의 호들갑일까.
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봄부터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택 뒤에 있는 인왕산에 올랐다. 적당하게 굴곡이 진 산책로를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미만. 한 측근은 이 산책의 의미를 “세상과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4월 말 이 전 총재는 이 산책로를 오르다가 내려오고 있는 할머니 그룹과 만났다. 이 전 총재를 알아본 할머니들이 그의 손을 잡고 울었다. 이 전 총재도 울었다. 그 이후 이 전 총재의 산행은 뜸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됐다. 대신 5월 초 러닝머신을 구입, 자택에서 걷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여름의 일이다. 이 전 총재의 측근들은 옥인동에서 칩거하는 그가 안쓰러워 ‘휴가’를 강권했다. 측근들이 제주도와 충남 안면도에 숙소까지 마련, “아들 내외와 함께 바람을 쐬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제의를 뿌리쳤다.

옥인동에 보수 원로와 정객 잦은 발길

“대선 때 나를 도왔던 서(정우) 변호사와 김(영일) 의원, 최(돈웅) 의원이 아직 갇혀 있는데….”



이 전 총재에게 이들은 원죄이자 업이다. 그들이 나올 때까지 옥인동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태도를 이 전 총재는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지난 6월2일 이 전 총재의 칠순을 맞아 측근들이 마련한 잔치상을 같은 이유로 물리쳤다. 옥인동 자택에서 이 전 총재를 보필하고 있는 이채관씨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이 전 총재의 일과를 설명했다.

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9월21일 서울 옥인동 자택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전 총재.

‘불멸의 이순신’ ‘만약에 1, 2’ ‘아틀라스 전권’ ‘반지의 제왕’ ‘연탄길’ ‘빌 클린턴 회고록’, 밥 우드워드 기자의 ‘부시 앳 워’. 지난 여름 이 전 총재가 손에 잡은 책들이다. 10월21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수행, 옥인동을 방문했던 전여옥 대변인은 서가 한쪽에서 ‘대통령의 경제학’ ‘뉴 거버넌스 연구’ ‘법 정신과 철학’ ‘시장경제의 길’ 등 이 전 총재가 몇 년 전에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을 책을 발견하기도 했다.

정계를 은퇴한 지 20여개월 노 정객의 일상은 이처럼 평범하다. 그런 그의 주변에 ‘정치’의 기운이 감돈다. 칩거와 은둔 대신 공개(사무실)와 활동(미국 방문)의 모습이 확연하다. 그의 주변에 변화의 바람이 이는 것일까. 아니면 언론의 호들갑일까.

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자택.

10월4일 원로와 보수세력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주최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모임에 10만명의 시민이 참석한 이후 이 전 총재 자택을 찾는 보수 원로와 정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그때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행정수도 이전,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 이어진다. 당연히 그런 비판은 항상 이 전 총재의 역할을 요청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이 전 총재의 측근 L씨의 설명이다.

“이 전 총재를 찾는 원로들은 ‘나라가 어지럽다. 20만 보수세력이 광화문에 모였다. (지난 대선 때) 1000만명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가만있으면 되겠는가. 국가 원로로서 몫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책성 요청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요청은 당을 접수하거나 하는 현실정치 참여 요구와 다르다. 두 차례의 대선에서 패한 그가 다음 대선을 의식한 정치 행위를 할 경우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이 전 총재의 보좌역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도 ‘국가 원로로서의 역할론’을 적극 지지한다. 그의 설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청와대를 나온 이후 더 잘하는 것 같다. 당을 접수하거나 하는 현역 정치가 아니라 국가 원로로 DJ를 찾아가 ‘현역에 있을 때 많이 싸웠는데 같이 나라 걱정 좀 해보자’며 머리를 맞대면 누가 손가락질하겠는가.”

대선 당시 이 전 총재의 보좌역으로 활동했던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최근 옥인동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런 기류가 결국 현실정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보수층의 민심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결국 이들이 옥인동을 하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가 원로로서의 역할론’ 반응은 미확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www.ksoi.org, 소장 김헌태)가 10월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월4일 보수 우익단체의 대중집회에 대해 ‘대한민국 정통성 유지를 위한 것으로 공감이 간다’는 응답이 45.9%로, ‘우리사회 개혁을 반대하는 것으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률 45.0%보다 다소 높았다. 지난해 8월15일 우익단체의 광화문 집회는 겨우 24.1%의 공감을 얻었다.

옥인동을 왕래하는 측근들과 보수 정치인들은 이런 흐름에 고무됐을 법하다. 다만 이 전 총재의 심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시중에서는 “지난 3월 노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소극적이던 홍사덕 총무가 이 전 총재와 전화통화 뒤 ‘강공’으로 돌아섰다”는 중앙일보 보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窓을 여는 昌 자의 반 타의 반?

4월 이 전 총재 자택을 나서고 있는 유승민 의원(한나라당).

물론 홍사덕 전 총무는 기자의 확인 요청에 “연말까지 언론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한 재선 의원은 “원래 홍 전 총무는 이 전 총재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노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직전에 옥인동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사실이다. 이 전 총재의 구상과 선택이 무엇보다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옥인동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은 유승민, 박성범, 홍준표 의원을 비롯, 이종구 전 특보 등 측근들이었다. 이들은 대선자금 재판을 명분으로 수시로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옥인동을 드나들던 한 관계자는 “(홍사덕 총무와의) 전화통화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그곳 분위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출입이 공개될 경우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서슴없이 왕래했다”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얘기가 쏟아졌고, 이런 지적이 동시다발적으로 한나라당에 전달되기도 했다는 것.

이 전 총재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을 찾는 현역 의원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강행 등 최근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곧잘 피력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H의원은 “이 전 총재가 치고 나가야 할 때 주저하고, 뒤로 빠져야 할 때 치고 나가는 당의 엇박자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9월21일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방문을 받고 평소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던진 것도 “잽으로는 안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게 옥인동 주변의 분석이다. 이날 이 전 총재는 전에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국보법을 남용하거나 악용한 사람이 나쁜 것이지, 법 자체를 폐지하자는 건 법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21명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를 떠난다는 결연한 의지를 국민에게 보이는 게 필요하다.”

2002년 대선 이후 처음 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신 김에 몇 말씀 더 드리겠다”며 왔다 갔다 하는 박대표와 한나라당의 태도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10여명의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 전 총재는 개의치 않았다.

이 발언 후 옥인동에는 묘한 바람이 불어닥쳤다고 한다. 보수세력들을 비롯해 그동안 연락이 뜸하던 과거 동지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거나 전화로 안부인사를 해온 것. 옥인동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입 다물고 있으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속 시원하게 잘 얘기했다는 격려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침묵을 깬 이 전 총재의 발언은 당내 보수 중진들의 태도에 힘을 실어주고, 당 외부의 보수 원로들에 대한 결기를 유도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메시지로 작용한 셈이다.

이 전 총재는 10월12일, 20여일 일정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돈웅, 김영일 전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등의 구속으로 일체의 움직임을 자제하겠다던 평소 발언에 비춰볼 때 그의 출국은 갖가지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에 앞서 이 전 총재는 지난 4월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선영에 안장했던 부친의 묘를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로 이장했다. 서울 남대문 인근 단암빌딩에 사무실을 낸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 전 총재 사무실을 자주 찾는 측근들의 발길, 분출하는 역할설, 그리고 사무실 개소와 이장 등 이 모든 움직임은 이 전 총재가 2년여 침묵을 깨고 정계에 복귀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걸어왔던 복귀 시나리오와 궤적이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종구 전 특보는 15일 “정치를 재개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 총재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18일 “정치재개는 언론이 만든 말”이라며 “정계에 복귀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아직도 ‘이회창 빅토리 2002(hcv2002)’를 이메일 주소로 쓰고 있는 한나라당 이정현 상근 부대변인도 “정계 복귀론은 한나라당 내부를 혼란으로 빠뜨리려는 여권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또 “현실적으로 복귀할 수도, 복귀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침묵 깬 최근 움직임 정계 복귀 모습?

다른 측면에서 이 전 총재의 복귀 불가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 전 총재가 복귀 타이밍을 놓쳤으며 지금으로서는 자력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대선 당시 보좌역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탄핵 정국과 총선 등에서 이 전 총재가 몫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뒤로 물러나 있었다”며 “참여정부의 실정에 기댄 반사이득으로 부활을 꾀하는 것은 또 한번의 비극을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뀐 패러다임이 이 전 총재의 복귀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옥인동을 벗어난 이 전 총재의 동선은 이제 남대문 단암빌딩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정치는 생물이고, 민심은 변한다. 2004년 가을, 옥인동 기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창(窓)을 연 창(昌)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18~2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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