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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풍수 | 달래내 고개(경부고속도로)

왕실 후손 불행 찬반 35년 논쟁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왕실 후손 불행 찬반 35년 논쟁

왕실 후손 불행 찬반 35년 논쟁

경부고속도로 달래내 고개.

●●●서울과 판교 톨게이트

중간 지점에 ‘달래내 고개’라는 곳이 있다. 교통방송에서 고속도로 상황을 전할 때 가끔 정체구간으로 언급되는 곳이다. 지금은 서울과 삼남(충남·영남·호남)을 잇는 가장 큰 도로가 되었지만, 조선시대 때는 한양과 삼남 지방을 잇는 좁은 길로 겨우 달구지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고갯길 하나가 무려 35년 동안 조선 조정과 왕실의 큰 논란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어떤 사연이었을까. 세종 12년(1430) 풍수학자인 최양선이 한 장의 상소를 올린다. 요점은 ‘태종의 무덤인 헌릉(獻陵, 현재 서울 서초구 세곡동 국정원 옆에 소재)의 내룡, 즉 주산에서 혈장에 이르는 산능선이 ‘천천현(穿川峴)’이란 고갯길에서 끊어지는데, 만약 그대로 둘 경우 왕실의 후손에게 불행이 닥칠 수 있으므로 고갯길을 막아 통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풍수지리에서 가장 먼저 살피는 부분이 바로 높은 산에서 무덤이나 집터로 이어지는 산능선(龍)이다. 이 산능선이 패어나가거나 끊어지면 지기(地氣)가 흐르지 않아 후손이 끊길 수 있다는 내용이다. 왕손의 번창과 왕업의 무궁무진한 계승 발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임금으로서는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로 세종은 해당 관청인 예조로 하여금 최양선의 글을 논의케 한다. 예조에서는 ‘고갯길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것은 풍수상 오히려 귀한 땅임을 의미한다’고 하여 고갯길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달 뒤 세종은 다시 이번에는 예조가 아니라 의정부와 육조의 대신들에게 천천현 고갯길을 막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도록 지시한다. 조정에서는 조선 건국 때부터 한양 정도(定都)를 비롯해 왕실 풍수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여 태조뿐만 아니라 태종, 세종에 이르기까지 신임을 받아오던 원로 지관 이양달에게 자문한다. 이양달 역시 “고갯길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밝힌다.



그러자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풍수지리 서적들을 참고하여 천천현을 막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시비를 가리도록 한다. 집현전 학자들은 3년의 연구 끝에 방대한 분량의 연구결과를 임금에게 올린다. 집현전 학자들의 결론은 ‘헌릉으로 이어지는 천천현은 풍수에서 기가 뭉쳐 지나가는 벌의 허리(蜂腰)와 같은 곳으로 막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고갯길이 계속 훼손되면 왕실에 불상사가 있을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천천현 통행에 대한 허용과 금지가 반복되었다. 결국 성군이었던 세종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임금인 문종에게 넘겨진다. 문종은 1451년 천천현을 직접 둘러본 뒤 대신들을 불러 논의를 하게 하지만 끝내 결론을 얻지 못한다.

왕실 후손 불행 찬반 35년 논쟁

달래내 고개를 35년 동안 통행 금지하게 한 태종 무덤(헌릉).

단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세조는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어서(御書)를 내려 고갯길을 막아버리게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론과 민원제기가 심해지지만 세조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당시 서운관 책임자인 이순지가 ‘천천현에 잔돌(薄石)을 깔아 고갯길이 더 이상 파이는 것을 방지하되 사람과 우마의 통행을 허용하자’는 타협책을 제시해 채택된다. 1430년 ‘천천현’ 문제가 제기된 후 35년 동안 통행의 금지와 허용이 반복되다가 1464년 논쟁이 끝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논쟁이 돼온 천천현은 과연 어디일까. 그 사이 ‘천천현’은 ‘월천현(月川峴)’ ‘달래내 고개’ 등으로 지명이 바뀌어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리학을 전공한 한동환씨(은행 근무)가 청계산과 인릉산 사이의 고개, 즉 지금의 ‘달래내 고개’라고 알려주었다. 답사를 해보니 과연 세종에서 세조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논쟁이 붙은 ‘천천현’과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최근 천성산 및 사패산 터널공사를 두고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천천현 35년 논쟁’을 참고하면 어떨까.

땅에 대해 너무 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고 다양하고 장기적인 논의를 통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이 나올 때까지.



주간동아 454호 (p182~182)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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