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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 저지… ‘국회 몸싸움’ 또 보나

여야 국보법 보-혁 이념 대결 정면충돌 … 민생 법안 표류·상쟁 재현 우려 목소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강행… 저지… ‘국회 몸싸움’ 또 보나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 논란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전운이 국회를 감돌고 있다. 진보-보수의 진검승부가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국보법을 중심으로 한 여야의 전선(戰線)은 개혁법안을 둘러싸고 전방위로 확대될 태세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수적 우위’에 있는 과반수 여당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것. 노대통령이 국보법 폐지를 강조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당은 국보법 폐지, 개정을 놓고 정리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우리당은 한동안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로부터 “비개혁적 정책기조가 또렷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우리당의 ‘개혁 드라이브’는 다시 거세졌다. 우리당 한 의원은 “‘개혁 앞으로’를 천명하고 ‘표결 처리’를 강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국보법 폐지를 비롯한 이른바 ‘개혁 입법’을 두고 ‘강행 처리’와 ‘실력 저지’가 맞붙는, 낯익은 ‘국회 몸싸움’이 재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극한 이념 투쟁으로 번져가면서 정치권은 이른바 보-혁 대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메가톤급 이슈의 후폭풍으로 정기국회 첫 10일 동안 통과된 법안은 겨우 3개(간접투자자산운용법, 조세특례법 개정안, 관세법 개정안)에 그친다. 일부 상임위 회의는 국보법이라는 ‘대형 쟁점’에 매몰돼 파행을 겪기도 했다.

10일간 겨우 3개 법안 통과



국보법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회 파행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이 장외투쟁과 시국강연회를 검토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회기 전체가 싸움으로 얼룩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형 이슈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으로 ‘민생 국회’는 물 건너갔다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 역시 ‘상쟁의 국회’로 막 내릴 공산이 크다는 것.

국보법 논쟁으로 100일간의 정기국회 기간 동안 100건의 개혁법안을 통과시키겠다던 우리당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우리당 한 관계자는 “국보법 논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우리당의 100대 입법 과제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져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노대통령과 우리당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노대통령이 국보법을 이슈로 제기하면서 일부 양보가 가능했던 법안들도 첨예한 갈등을 빚게 됐다”고 말했다.

관심은 과반 의석의 우리당이 쟁점 법안에 대한 ‘표결 처리’에 나설지에 쏠리고 있다. 특히 우리당이 9월23일 이전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이하 친일규명법)의 표결 처리 여부가 주목된다. 9월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개혁 법안은 당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행자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친일규명법 개정안 상정을 강행한 것을 두고 여권이 이미 강공을 결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17대 국회 첫 정기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발의된 법안이 많다. 그중에선 국보법 논란 탓에 여론의 관심이 비켜서 있지만 여야가 합의점을 찾기 힘든 쟁점 법안들 또한 적지 않다. 우리당 한 의원은 “국보법 논쟁으로 보-혁 대결이 불거진 터라 개혁 법안의 통과를 둘러싸고 여야 간의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개혁 법안은 거의 모두 통과시킨다는 게 당의 의지”라고 말했다.

여야가 거세게 격돌할 법안으로는 △친일규명법을 비롯한 과거사 규명 관련법 △신문법 및 방송법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에 관한 법 △사립학교법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비롯한 경제관련 법안 등이 거론된다. 국보법 개폐 논쟁을 계기로 여야 모두 당내 이견이 줄어들어 보-혁 대결은 이들 법안 처리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전망이다. 소신을 강조해온 187명의 초선의원들이 표 대결에서 거수기 구실에 나설지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국보법과 함께 정기국회의 정상 운영을 가름할 최대 쟁점은 친일규명법 개정안이다. 벌써부터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기 싸움이 읽혀진다. 우리당은 9월8일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국회 행자위에 친일규명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9월23일 전까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관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우리당이 단독 표결을 시도할 경우 실력 저지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친일규명법 개정안은 조사 범위를 군인의 경우 기존 법안의 ‘중좌’에서 ‘소위’ 이상으로 확대했고 ‘문화, 언론 분야 식민통치 적극 협력자’를 새로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우리당은 또 진상규명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이 진상규명위원을 임명하도록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진상규명위를 대통령 소속이 아닌 학술원 산하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확정하고 맞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학술원장이 국회의 추천을 받아 9명의 진상규명위원을 임명하게 돼 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진상규명위를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로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국가 기구로 만들 경우 여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187명 초선의원 표 대결 관심사

한나라당의 개정안도 기존 법안보다 조사 범위가 늘어났다. 일본군 ‘중좌 이상의 장교’를 ‘소위 이상의 장교’로 넓혔고, 동양척식회사 식산은행의 ‘중앙조직 간부’를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 고쳤으며, 일제강점기 헌병과 경찰 중 친일행위자를 조사 대상에 새로 넣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이 “헌병과 식산은행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를 넣은 건 우리당 일부 의원들을 겨냥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사 청산 기구 설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를 규명해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우리당 주장과 “순수 민간단체가 아닌 여당의 진상규명은 위험하다”는 한나라당 주장이 각각 마주 달리는 기관차에 오른 형국이다.

우리당은 9월 하순 독립적 국가 기구에 의한 진상규명을 골자로 하는 각종 과거사 관련법(13개)의 모법이 되는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여권은 또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 금강산댐 사건 등도 과거사 규명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 사안이다.

일제강점기 반민족 행위와 독재정권 시절의 의문사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우리당의 의견과 친북·용공 행위에 대한 조사를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어느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청산 기구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도 여야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100일간의 정기국회 첫 달인 ‘9월 국회’가 국가보안법과 과거사 관련법 논쟁으로 불을 뿜는다면 ‘10월 국회’는 언론관계법 개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진검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언론개혁 법안 관련 쟁점은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 독립 법제화 △신문시장 점유율 제한 △신문공동배달제 등이다. 우리당은 70~80년대 언론사 해직사건과 정수장학회의 부산 MBC, 부산일보 몰수 문제 등을 다루는 ‘언론탄압행위 과거사 진상 규명위원회’ 설치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 언론개혁단(단장 김재홍 의원)과 언론개혁국민행동은 그동안 신문법과 언론피해구제법 방송법, 관련 입법을 목표로 비공개 간담회 및 토론회를 벌여왔다고 한다. 우리당은 9월 말께 신문개혁에 무게 추를 둔 언론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데, 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고 1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줄이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우리당은 또 언론계(3인) 학계(4인) 법조계(2인) 시민단체(3인)로 구성되는 국회의장 직속의 언론발전위원회 설치를 한나라당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소유지분 제한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고, 신문 시장을 강제로 재편하는 것은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면서 MBC 민영화 등을 포함한 신문 방송 통신 전반에 걸친 방송통신융합법을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해 방송통신융합법 언론피해구제법 신문법 전반에 걸친 외부 용역을 의뢰해놓았는데, 신문법과 언론피해구제법은 9월, 방송통신융합법은 10월 중 법안 구성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밖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이하 고비처) 설치에 관한 법, 사립학교법 등을 두고도 여야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우리당은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 산하에 고비처 설치안을 주장해왔으나 법조계의 반발로 이와 관련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고비처를 부방위 아래에 둔다는 우리당의 구상에 대해 “여당의 검찰 길들이기와 대통령의 권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고 검찰을 견제한다는 우리당의 논리를 반박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고비처 신설은 한나라당의 17대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 궁여지책으로 한나라당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 특별검사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부방위에 둘 경우 거대한 사찰기구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조사하는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해 사안이 발생하면 국회 의결로 실행하자는 것.

10월엔 언론관계법 진검승부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간 견해차도 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우리당은 이사장의 친족 및 관계자가 해당법인 학교장으로 취임하는 것을 막는 등 학교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이사회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학교장과 교사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것. 반면 한나라당은 자립형 사립학교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자율적 운영을 원하는 사립학교는 자립형 사립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 이밖에 남북관계발전기본법,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공무원노조법 등을 둘러싸고도 여야의 대립이 예상된다.



주간동아 453호 (p26~2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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