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3

2004.09.23

‘밀사’ 李世基 고구려사 충돌 봉합

정부 공식 창구 외 막후 채널로 중국과 접촉 … “간도 협약 무효” 한·중 2차전 재개될 가능성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16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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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사’ 李世基 고구려사 충돌 봉합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8월18일 오후 6시,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 중식당. 한국의 대표적인 ‘중국통’인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이 3명의 중국 공산당 고위 관계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동북공정으로 불거진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마련된 회동으로, 막후 대화를 통해 대외적으로 ‘비밀’에 부쳐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 앉기 전 이회장은 NSC (국가안전보장회의)로부터 현안으로 떠오른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협상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먼저 ‘그들’이 입을 열었다.

    “한국 측이 지나치게 과열시키고 있다. 한국 책임이다. 결국 한국이 손해를 볼 것이다. 한국이 풀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 서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위관계자 H, R씨는 고구려사 왜곡 및 논란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표정은 냉담했다. 이회장은 다소 유연하게 한국 측의 의견을 전개했다. “한국이 들끓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만만디’였다.

    “서두르면 오히려 꼬인다. 시간을 두고, 인내를 가지고 여유롭게 대처하자.”



    이회장이 이 말을 받아 역공을 취했다.

    “인내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인내로 대처할 상황이 아니다. 이 문제로 한·중 간에 ‘불’이 붙었다. 불 구경 즐기는 이웃이 늘고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부채질하는 이웃도 생길 거다. 기름을 들이붓는 이웃도 나올 것이다.”

    동북공정으로 불거진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이는 두 나라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말로, 주변 열강(미·일·러)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담은 발언이었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회담의 통역을 담당했던 노련한 통역사 황모씨는 이회장의 말을 한마디도 빼지 않고 통역했고, 듣고 있던 중국 측 고위 관계자들은 침묵했다. 이날 이회장과 중국 측 관계자 3명은 3시간에 걸쳐 5병의 죽엽청주를 비웠다. 그 직후인 8월24일과 25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부부장(차관급)이 한국을 방문해 두 나라는 5대 양해사항에 구두로 합의했다.

    외교부와 호흡 맞춰 임무 수행

    임시방편으로 봉합된 고구려사 왜곡문제와 관련 외교부와 NSC라는 공식 창구 외에 ‘막후 채널’이 가동됐음이 밝혀졌다. 주인공은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 그는 8월 중순 NSC의 요청을 받고 베이징으로 날아가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정부 및 당 고위 관계자들과 5시간에 걸친 막후 회동을 통해 확산일로로 치닫던 동북공정의 불길을 잡았다. 여권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회장은 외교부, NSC와 호흡을 맞춰 일을 무난하게 수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회장이 고구려사 문제 해결사로 나선 것은 NSC 한 고위관계자한테서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협의를 받고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그의 한 측근은 설명했다. 이에 NSC 관계자는 “직접 나서 도와달라”며 사실상 막후 채널 역을 제의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회장은 “밀사나 막후 채널이라기보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분위기를 취재하고 탐색해보자, 그런 기분으로 베이징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통상 막후 채널이나 밀사 역에는 드라마틱한 긴장감이 생긴다. 대북 밀사 역을 수행했던 박철언 전 의원의 활동 과정을 보면 얼굴 없는 밀사의 동선이 가져다주는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난다.

    이회장도 내심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8월15일 개인 업무를 보기 위해 중국 칭다오에 머물던 이회장이 베이징으로 날아간 것은 18일. 같은 날 오후 4시, 이회장은 숙소였던 캠핀스키 호텔에서 NSC 관계자와 긴급 회동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밀사로서의 구실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한 이회장이 막후 채널로서의 활동 범위 및 협상시 필요한 대응책 등에 대해 브리핑을 받는 자리였다. 중국 당국자들과의 회동을 2시간 앞둔 시점에 진행된 브리핑에서 NSC 측은 이회장에게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이날 NSC의 안 가운데 이회장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8월26일 이전까지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시한부 해결론’이었다. 26일은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의 방한이 예정된 날. NSC는 그의 방문 이전에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복안을 가졌던 것이다. 캠핀스키 호텔에서 정부 측의 이런 의견을 통보받은 이회장은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오후 6시, 공산당 청사 내 식당에서 진행된 2차 회동에서 이회장은 중국 관계자들에게 “26일로 예정된 자칭린 주석의 방한 일정을 연기할 수 없느냐”고 제의했다.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 이회장은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모두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언급할 텐데, 아무런 결론 없이 만날 경우 자칭린 주석의 처지가 난처해질 것”이라는 배경 설명도 곁들였다.

    “5대 양해사항은 미봉책에 불과”

    이회장은 중국 측이 난색을 표하자 “그렇다면 방한 전에 문제를 해결하자”고 압박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전날과 같은 논리로 당 관계자들의 태도 변화를 유도했다. 다음날인 20일, 당의 한 실무자가 이회장을 찾았다.

    “우리는 이회장의 발언을 문제제기로 보고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부’에 ‘특별보고’도 했다. 26일 자칭린 주석의 방한 전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부부장을 먼저 보내 이 문제를 협의하도록 하겠다.”

    이후 한·중 두 나라는 8월24일과 25일 한국을 방문한 우다웨이 부부장을 통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5대 양해사항에 구두로 합의했다.

    정부 측은 당초 이회장의 ‘역할’을 놓고 꽤나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한 관계자는 “NSC 관계자가 이회장에게 ‘특사 형식으로 역할을 부탁하고 싶지만 번거롭고, 오히려 문제가 꼬일 수 있으니 막후에서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회장이 정부를 대표한 사람임을 확인해주는 서류와 통역 지원 등을 통해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이회장이 제의를 거절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회장 한 측근의 설명이다.

    “이회장은 20년 동안 500번 넘게 중국을 방문하면서 한 번도 통역사를 붙인 적이 없다. 8월18일에도 정부 측의 통역사 제의를 받고 ‘내가 통역사를 데려가면 중국 측이 할 말을 다 하지 않는다’고 거절한 것으로 안다.”

    이와 관련해 NSC 한 관계자는 “외교부와 NSC가 정상적 외교 활동을 통해 중국 측과 접촉했고, (이회장의 밀사 활동은) 보완적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한 고위 관계자는 “외교 활동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말을 아꼈다.

    이회장은 지난 8월23일 귀국했다. 다음날인 24일 서울 모처에서 정부 고위당국자와 만나 중국 측과의 협상 내용을 설명했다. 27일 예정대로 자칭린 주석이 한국을 방문,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회동했다. 회동 후 마련된 오찬에서 이회장은 자칭린 주석 및 노대통령과 함께 헤드테이블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언론과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큰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그러나 이회장은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불행히도 중국은 지난 9월10일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 우리 정부가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해 이회장의 예언을 현실화했다. 간도문제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한 출발점. 또 지난 3일 59명의 한국 국회의원들이 간도를 중국에 넘겨준 간도협약 무효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흐름으로 본다면 조만간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한·중 간의 2차전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세기는 누구…

    전두환 정권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세기 한중친선협회 회장은 한국 최고의 중국통으로 통한다. 후진타오 주석이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부상할 것임을 직감한 이회장은 97년 봄 그를 만나 “중국의 큰 지도자가 될 분이 서울엔 오지 않고 평양만 방문해서야 되겠느냐”며 후진타오의 서울 방문을 유도했다.

    1년 뒤인 98년 4월 후진타오는 서울을 방문했다. 이회장은 최근까지 후진타오 주석과 6~7차례 회동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탈북자 문제 등과 관련 이회장은 후진타오 주석, 장쩌민(江澤民) 군사위 주석 등 중국 수뇌부에게 “가급적 인도적 관점에서 처리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할 정도로 발이 넓다. 4선 의원 출신으로 통일부, 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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