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3

2004.09.23

美-이스라엘 안보 공조 흔들리나

펜타곤 스파이 사건 美 언론 시끌 … 행정부 네오콘과 유대인 영향력 조사로 확대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4-09-15 1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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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미국의 51번째 주(州)’란 말이 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조(自嘲) 섞인 표현이 아니라 미-이 관계의 돈독함을 과시하는 말이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 두 나라의 찰떡공조는 국제사회의 반발과 시비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NPT(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지도 않으면서 아무런 제재 없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할 수 있는 것도 이스라엘이 중동에 위치한 미국의 51번째 주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펜타곤(미 국방부) 내의 이스라엘 스파이 사건인 ‘래리 프랭클린 사건’으로 인해 이러한 공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사건은 CBS가 8월27일 특종 보도해 세상에 알려졌다. 펜타곤의 근동 남아시아국 소속 이란 이라크 정보분석관 래리 프랭클린이 이라크 이란 정책에 관한 백악관의 비밀정보를 친(親)이스라엘 로비단체 AIPAC(미국 이스라엘 공무위원회)을 통해 이스라엘 외교관에게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FBI(미 연방수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미국 언론이 앞다투어 이를 보도함으로써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란 관련 민감한 내용 문서 빼돌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FBI는 이미 2년 전부터 방첩(防諜)수사의 일환으로 AIPAC을 통한 이스라엘로의 미 행정부 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프랭클린이 AIPAC 관계자 및 이스라엘 대사관 관계자와 접촉, 정보를 전달하는 정황을 감시·감청장비를 통해 2개월 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클린이 이스라엘에 전달한 기밀문서에는 미 행정부가 완전히 의견 정리를 하지 못했을 당시의 이란 정책과 관련한 민감한 토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은 이란의 핵개발 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안보관계에서 이란의 핵 능력을 아젠다의 정점에 올려놓았고, AIPAC 또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한 관계법안이 상정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왔다. 따라서 프랭클린이 제공한 정보로 이스라엘이 미 행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란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미리 알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가 수사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프랭클린 또는 다른 정보 제공자가 공여한 정보를 이용해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미국 내 첩보와 로비 활동의 단면이 드러난 것은 또 다른 흥밋거리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 보안 분야 공조체제는 1983년 레이건 행정부 때 체결한 전략공조 프로그램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에는 이스라엘의 모사드(비밀정보기관), IDF(방위군), 국방부 정보기관 요원이 상주한다. 그러나 이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이스라엘이 정보수집 활동(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美-이스라엘 안보 공조 흔들리나

    1985년 이스라엘에 군 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조너선 폴라드.

    두 나라의 공조체제를 깨뜨린 대표적 사건이 바로 미 해군 정보기관원의 스파이 사건인 ‘조너선 폴라드 사건’이다. 조너선 폴라드는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 포섭되어 군 비밀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85년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의 아내 안네 폴라드 역시 이 사건에 연루돼 5년형을 선고받았다. ‘조너선 폴라드’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신뢰를 상실했고, 미국 내 유대인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받게 되면서 정보관련 기관에서는 스파이 임무에 유대인을 고용하지 않는 현상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폴라드 사건 이후 미 영토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지만 크고 작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9월2일 워싱턴포스트는 래리 프랭클린에 대한 조사는 전체 수사의 일면일 뿐이며, 미국 내 최대 친(親)이스라엘 로비단체에 대한 수사가 핵심이라고 보도했다. 50년대에 창설되어 미국 전역에 6만5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AIPAC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로 평가받는다. 해마다 100여건이 넘는 친이스라엘 입법안이 통과되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30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전 주미 이스라엘 대사였던 텔아비브 대학총장 이타마르 라비노비치는 “이스라엘이 보유한 직접 군사력 외에 AIPAC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미국과의 관계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로 중요한 전략무기”라고 이 단체의 영향력을 평가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이 가장 우려한 것 중 하나가 미국 내에서 AIPAC의 영향력 약화였다.

    AIPAC은 프랭클린한테서 정보를 넘겨받아 이스라엘에 전달한 혐의로 이 단체의 2인자이자 로비정책 책임자 스티브 로센과 이란 전문가 케이스 와이스만이 거론되자 실력행사에 나섰다. 먼저 AIPAC 지도부는 민주, 공화 두 당의 주요 인사들한테서 지지발언을 유도해내고 있다. 공화당의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가 “이번 조사는 이 단체에 대한 근거 없는 흠집내기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 단체를 옹호하고 나섰다.

    불필요한 전쟁 음모론 새삼 부각

    또한 9월7일 베니스 마노체리언 AIPAC 위원장과 호워드 코르 사무총장 명의로 모든 회원에게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AIPAC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AIPAC 전체의 힘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AIPAC에 대한 신뢰를 그들이 평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의 자금력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 이번 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모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그룹은 국방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프랭클린이 속해 있는 국방부의 근동 남아시아국은 이번 이라크전쟁 계획에 핵심 구실을 한 부서다. 이 부서를 관할하는 국방정책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근동 남아시아국 책임자 국방정책 부차관 윌리엄 루티, 이란 전문가 헤럴드 로드, 국방보좌관 리하르트 페레, 국방차관 폴 올포위츠, 국무부 차관 존 볼튼, 부통령 딕 체니의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 부통령 보좌관 데이비드 움서 등은 모두 유대인이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이라크전쟁과 대이란 정책에서 강경노선을 견지하는 네오콘의 핵심인사들이다.

    이들은 콜린 파월로 대표되는 국무부 세력, CIA(미 중앙정보국), 국방부 내 다른 인사들과 갈등을 빚어왔으며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미국이 명분 없고 실리 없는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주범이라고 비난받아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이란과의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9월4일 워싱턴포스트는 FBI의 조사가 행정부 내의 네오콘에 대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로 확대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미국 내에는 이스라엘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펜타곤 내 네오콘 유대인 그룹과 AIPAC을 통해 부시 행정부를 조종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존재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이 음모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미-이 두 나라의 정보 공유는 양국의 안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냉각기류가 흐를 수는 있겠지만 공조 자체가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구 600만명, 남한 영토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로만 평가한다면 이스라엘은 보잘것없는 나라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숨겨진 힘은 미국을 움직인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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