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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봉이 김선달, 80년대를 팔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문화평론가들, 감수성 자극 ‘1등 공신’ … 광고·음악·미술 각 분야서 ‘복고 마니아’ 맹활약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80년대적 감수성을 오늘에 되살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 있다. ‘일상의 시시한 것들’에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 1세대 문화평론가 혹은 문화비평가들이야말로 그 맨 앞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1992년에 탄생해 미시적 문화 읽기 붐을 조성한 ‘현실문화연구’ 멤버들이 대표적이다. 현실문화연구는 문화연구를 표방하는 운동체이자 출판 모임. 이들은 압구정동 문화를 본격 조명한 책 ‘압구정동 :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출간을 시작으로, 일상문화 대중문화 청년문화 세대문화 등 사회의 제반 문화현상에 대한 펄펄 살아 있는 담론을 생산해냈다.

민원규씨, 인사동서 20~30년 전 물건 판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토토의 오래된 물건' 민원규 사장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의 저자인 미술평론가 김진송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95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45년에서 현재까지의 우리나라 시각문화와 일상문화를 다룬 특별전을 기획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일상과 기억과 역사를 넘나드는’ 전시 컨셉트는 이후 우리 예술 비평계와 작업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인사동에서 네오 앤티크(Neo Antique) 가게 ‘토토의 오래된 물건’을 운영하는 민원규씨 또한 당시 전시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다. 미대 졸업 후 10년간 장안평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던 민씨는 96년 인사동으로 가게를 옮기면서 ‘골동품점 같지 않은 골동품점’을 구상했다. “인사동에 그저 익숙한 대로 반닫이 위에 도자기 올려놓고 벽에는 민화 액자를 걸어놓는 식의 골동품 가게를 하나 더 보태긴 싫었어요. 20대 젊은이들도 쉽게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 제가 어렸을 때 직접 쓰고 보았던 20~30년 전 물건들을 다루기로 했죠.”

‘토토의 오래된 물건’은 곧 유명세를 탔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 직접 사용하고 또 가지고 놀았던 학용품이며 장난감들을 보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간혹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20, 30대가 있는데 어르신들은 여기 분위기를 싫어하신다는 거예요. 꼭 여기 옛 물건들만큼 허접하고 구질구질한 과거를 뭣 하러 기념하느냐는 거지요. 그런데 자녀들은 아니에요. 맘껏 뛰놀며 아무 걱정 없던 시절, 가난했지만 정 넘치던 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죠. 요즘 먹고살기 너무 각박하잖아요.”

같은 해 서울 홍대 앞에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름 하여 ‘신식공작실과 얼레꼴레’. 시각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인 현태준·남주현 부부의 놀이터이자 작업실이며 작품 판매 공간이었다.

“시작할 때 ‘옛날을 되살리자’ 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너무 어려운 거 말고 쉬운 소재로 작업하자,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것을 찾아보자 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하다 보니 사람들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것들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왜 있잖아요, 옛날 교과서, 지우개 달린 연필, 국민학교 때 갖고 놀던 물건인 듯 키치(kitch, 저속한 작품)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종이 공작물들 따위요.”

현씨의 아내 남주현씨는 최근까지 ㈜쌈지의 ‘딸기’ 디자인실장으로 일했다. ‘똥’까지 귀여운 캐릭터로 재탄생시키는 엉뚱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컨셉트로 청소년들 사이에 ‘80년대풍의 키치적 감수성+엽기 코드’를 유포한 장본인 중 하나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장난감 아저씨' 현태준씨

전국 문방구 돌며 옛 장난감 수집한 현태준씨

현씨는 이름난 장난감 수집가이기도 하다. “신식공작실 바로 옆집이 오래된 문방구였어요. 어느 날 그 가게가 문을 닫게 됐는데 주인 할아버지께 인사도 할 겸 혹시 뭐 건질 게 없나 둘러봤지요. 그런데 이 구석 저 구석에 잊고 살아왔던 옛날 그 싸구려 장난감들이 먼지를 뽀얗게 쓰고 앉아 있는 거예요. 감격했죠. 감격 그 자체였어요.”

현씨는 생업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수년간 전국의 초등학교 앞 문방구 1000여 곳을 돌았다. ‘추억 속 장난감을 보듬어 보전하는 일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귀중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했다. 2002년 현씨는 그렇게 모은 장난감 사진들과 일러스트레이션, 장난감에 얽힌 이런저런 사연들을 담은 책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를 펴냈다. 현씨가 그 전해 펴낸 책 ‘뽈랄라 대행진’은 현씨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살아 있는 시, 그림, 만화, 수필, 어린 시절 일기 등을 모은 것이다. 현씨는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보통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 그들이 느끼고 간직하고 관계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작업할 뿐이다. 사람들이 날보고 자꾸 ‘추억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저씨’ 어쩌고 하는데 아주 미치겠다”며 허허 웃었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황신혜밴드'의 라이브 공연 포스터

96년은 ‘황신혜밴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밴드 리더인 김형태씨는 ‘무규칙이종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술가 겸 음악가 겸 글쟁이. 김씨의 작업 역시 80년대적 정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김씨는 “누군가 ‘왜 밴드 이름이 그러냐’고 물으면 대충 ‘(황신혜씨가) 예쁘지 않느냐’는 답을 하곤 했다. 물론 그게 정답이지만 맘속 깊은 곳에는 밴드 이름을 통해 달라진 세상, 달라진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고픈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80년대 중순 황신혜라는 배우가 등장했죠. 그때를 기점으로 미인의 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현모양처형, 그러니까 뭐랄까, 예쁘긴 예쁜데 고생하고 순종적이고 학대받는 그런 여성상이 주종을 이뤘거든요. 그런데 마침내 이른바 ‘서구형 미인’이 각광받기 시작한 거예요. ‘밥 못 하면 어때, 예쁘면 되지’ 뭐 그런 식의…. 그런 어떤 사회적 모럴, 의식이 바뀌는 시점, 지금(1996년)이야말로 그런 전환이 완성된 때라는 것을 밴드 이름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현태준씨의 만화이야기



98년의 외환위기는 ‘예전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부채질했다. 민원규씨는 “경제가 어려워지자 더 어렵던 옛 시절을 돌아보자는 류의 드라마, 공연, 전시 등이 봇물을 이뤘다”고 말했다. 저때도 살아남았는데 이까짓 고통이 대수냐, 혹은 이웃·가족·형제애 등을 강조하는 옛날식 가치관이 한껏 힘을 받은 것이다. 어렵던 그 시절은 한편 정이 흘러넘치는 시절이기도 했음이다.

비슷한 시기 대중문화 시장에 또 하나의 ‘혁명가’가 나타났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다. 김씨는 “딴지일보의 등장은 어떤 이데올로기, 집단 기억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감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한 신호탄이었다”고 자평했다.

“이전에는 개인감정, 연애, 추억 뭐 그런 것들을 말하면 반역이고 반동이며 대의를 모르는 놈으로 취급받았거든요. 근데 딴지일보가 나오면서 개인도 중요하고 취향도 중요하다는 어떤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어요. 외환위기와 인터넷의 등장은 구시대적 가치의 해체를 더욱 가속화했고요. 그런 가운데 자연스레, 이전에는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았던 나만의 추억, 나만의 옛 기억이 사람들의 관심권에 들기 시작한 거지요.”

김씨는 “일본만 해도 이미 70년대부터 이른바 ‘추억 산업’이 불붙기 시작했다. 실생활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되지만 뭔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것에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것”이라 풀이했다. “경제 발전 단계가 이만큼 되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을 보면 나이 50, 60이 돼서도 자신이 젊었을 때 좋아하던 로큰롤 음악을 여전히 즐기잖아요. 그럴 만한 분위기도 돼 있고요. 우리나라도 70년대 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부터 바로 그러한 문화 향유가 가능하게 된 거죠.”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대중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나갔던 ‘80년대식 취향’은 몇몇 TV 광고를 통해 결정적인 힘을 얻었다. 98년 초 ‘국제전화 002’의 새로운 CF가 방송을 탔다. 광고 속에서 ‘영원한 조연’ 탤런트 전원주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작정 들판을 달려가고 있었다. 첨단업종 중 하나인 통신산업과 ‘원단 아줌마’의 요상한 만남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016 \' Na\'광고

회사원 권오훈씨, ‘클로버문고’ ‘어깨동무’ 등 수집

얼마 뒤 선보인 KTF ‘Na’ 광고는 ‘복고·엽기 컨셉트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으며 광고업계를 평정했다. 그 자신 옛날 장난감 수집광인 박명천 감독은 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달동네, 속옷 차림으로 “나도 몰러” 하고 너스레를 떠는 까까머리 아저씨, 앞섶을 풀어헤치고 앉아 하릴없이 양은 냄비를 휘젓는 양아치, 20여년 전 국민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우뢰매’ 스타일 외계인 등을 등장시키며 이 땅에 ‘80년대의 부활’을 선언했다.

이제 80년대적 감수성, 혹은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기호품의 수집은 더 이상 이상한 일,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클로버문고’ 만화 시리즈와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 옛 소년 잡지 만화 부록을 모으는 회사원 권오훈씨도 추억, 어린것들을 사랑하는 어른 중 한 명이다.

“클로버문고는 74~84년 발간된 문고판 만화 브랜드입니다. 30대 대부분이 기억하는 만화가 한 명이 바로 이 클로버문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죠. 어쩌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냈던 옛 시절이 고스란히 되살아나요. 뭐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모하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로선 다른 사람들이 운동하고 책을 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취미생활입니다.”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무규칙이종예술가' 김형태씨

김형태씨는 “80년대 문화는 힘이 세다”고 말했다. “당시의 문화 컨셉트가 요즘 젊은이들에게까지 광범위한 인기를 끄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만큼 질이 우수하고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0년대는 문화적 교양과 작가 정신과 의미를 중시하는 시대였죠. 90년대 이후 만연한 상업주의 속에서 오직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들과는 확연히 달라요. 때문에 요즘의 대중문화 상품들은 80년대 것들의 저력과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영화판 광고판 방송판을 휘어잡고 있는 게 바로 386세대잖아요.”

‘80년대 추억’에 불지핀 사람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김어준씨는 “혹자는 지금의 복고 무드를 퇴행적이라 비난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 생각한다”고 했다. “드디어 개인의 추억이 존중받기 시작한 거잖아요. 40년, 50년 전의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20년 전, 10년 전의 ‘개인의 역사’를 중시하는 시대가 온 거죠. 이는 우리 사회에 문화적 다양성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추억 산업은 앞으로도 날로 번창할 거고요.”



주간동아 453호 (p66~68)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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