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3

2004.09.23

매트 위 천하장사 13년 무패행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30kg서 올림픽 3연패 … 지독한 연습벌레에 고전문학 전공 ‘문무 겸비’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4-09-15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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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30kg 이상급에서 활약한 알렉산드로 카렐린(37·러시아)은 패배를 모르는 불곰이었다. 1987년 러시아선수권대회 때 당시 세계대회를 2연패하고 있던 선배 이고르 로스토로츠키에게 생애 유일한 패배를 당했을 뿐 1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천하무적’이었다.

    카렐린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낸 뒤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잇따라 정상에 올라 레슬링 사상 첫 한 체급 올림픽 3연패 신화를 창조했다. 카렐린과 맞붙었던 선수들은 한결같이 “정면으로 맞붙어서 카렐린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2인자 가파리와 22전 무실점 전승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 주요 대회 때마다 카렐린이라는 벽에 부딪혀 ‘영원한 2인자’로 불렸던 미국의 매트 가파리는 “카렐린과 치른 경기는 마치 고릴라와 싸우는 것 같다”고 악몽처럼 말하곤 했다. 가파리는 카렐린과 10년 동안 22번 맞붙어 모두 패했다. 그것도 단 한 점도 따내지 못하고 폴패(KO패) 또는 일방적인 판정패를 당했다. 특히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전에서는 카렐린이 갈비뼈가 부러져 컨디션이 최악이었는데도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6kg이 넘었던 카렐린은 191cm, 130kg의 거구로 체격만 클 뿐 아니라 힘도 엄청나게 셌다. 그는 상대 선수에게 포인트를 내준 적이 거의 없는 월등한 기량과 힘으로 매트를 지배했다. 훈련도 미련하다고 할 만큼 많이 했다. 허리까지 차는 시베리아 눈 속을 양팔에 통나무 하나씩 매달고 달리는 훈련을 했고, 지구촌 사람들이 거의 모두 쉬는 연말인 12월31일에도 혹독하게 3시간을 훈련하고 잠시 눈붙이곤 이튿날 새해 아침에 3시간을 더 훈련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타고난 체격에 훈련벌레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오로지 훈련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가시간에는 유연성을 기르면서 머리도 식힐 겸 발레연습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선수였던 것이다.



    카렐린은 불과 18살이던 1985년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 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회, 올림픽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하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카렐린의 주 특기는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한 필살기였다. 강력한 팔 힘으로 상대 선수의 허리를 껴안아 매트 위에 내다꽂는 ‘간단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기술. 이 기술은 레슬링에서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인 5점을 따내는 고난도 기술로 꼽히며, 카렐린 외에 다른 선수들은 감히 이 기술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엄청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드니올림픽 결승서 연승 멈춰

    카렐린은 88년 서울올림픽 결승전에서 불가리아 랭겔 그로브스키에게 종료 30초를 남길 때까지 0대 3으로 뒤지고 있다가 바로 ‘거꾸로 들어 메치기’ 기술로 5점을 따서 5대 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또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결승전에서는 스웨덴의 요한슨 선수가 워낙 겁을 먹고 슬슬 피하는 바람에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손쉽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가 끝난 뒤 요한슨은 “부상이나 당하지 않고 얼른 경기를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놨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전에서 만난 미국의 매트 가파리는 홈 매트인데도 카렐린 공포증에 걸려 있던 상황이라 그야말로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경기처럼 싱겁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기록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스포츠계의 진리가 카렐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87년부터 99년까지 13년 동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패배를 몰랐다. 아니, 패배는커녕 상대 선수에게 흔한 1점조차 거의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그레코로만형 130kg 이상급 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럴런 가드너와 연장 접전 끝에 0대 1로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로써 카렐린은 13년 동안 이어온 연승행진에 종지부를 찍었고 4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의 꿈도 무위로 돌아갔다. 또 카렐린은 결승에서 1점을 허용, 96년 애틀랜타올림픽부터 이어져온 무실점 기록도 깨졌다.

    은퇴 후 국경수비대 현역 중장 근무

    당시 가드너는 난적 카렐린을 맞아 허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손을 맞잡고 가슴과 어깨를 바짝 붙이는 작전으로 1, 2회전을 버텼다. 승부처는 연장전 종료 8초 전. 피로한 기색을 보이던 카렐린은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던 가드너의 손을 뿌리쳤고, 심판은 카렐린에게 벌점 1점을 선언했다. 10여년 동안 ‘세계 레슬링계’를 호령하던 시베리아 불곰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당초 출전시키기로 했던 매트 가파리가 카렐린에게 10년간 1점도 따지 못하고 22전 전패를 당하자 교육지책으로 가드너를 내세웠고, 마침내 카렐린을 꺾는 대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카렐린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은퇴한다. 그 후 영하 20~30℃까지 기온이 내려가기 일쑤인 고향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국경수비대 현역 중장으로 근무하면서 러시아 하원의원도 겸해 매트 밖에서도 최고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우람한 체격, 험악한 인상과 달리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지금 파바로티, 쇼팽,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즐겨 듣는 멋진 중년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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