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지쓰배는 일본이 주최하는 세계대회이면서도 “일본은 없다!”란 소리를 듣고 있는 기전. 지난 16년간 한국인이 무려 열 번이나 우승했으며, 1998년부터는 아예 한국기사가 6년째 월계관을 독점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명인(名人) 요다 9단이 “일본은 있다!”라고 외치며 분연히 일어섰다. 일찍이 요다 9단은 ‘이창호 킬러’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이창호 9단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근래 5연패에 빠지며 전세가 역전됐다. 그러나 이날 바둑은 왜 요다 9단이 이창호의 천적인지를 보여준 한 판이었다.

이창호 9단은 흑17까지 사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나 이것은 백이 두텁고 깨끗하게 처리된 모습이다. 선수를 잡은 백이 흑의 공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20·22로 큰 끝내기를 서둘러버리자 여기서 저울추가 살짝 기울었다. 243수 끝, 백 3집 반 승.
주간동아 439호 (p9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