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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불치병 된 럭셔리 증후군

  • 이충걸 GQ KOREA 편집장 norway@doosan.com

불치병 된 럭셔리 증후군

불치병 된 럭셔리 증후군
이젠 아무리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외쳐도 계몽적인 캐치프레이즈로만 여겨질 뿐이다. 우리는 너무도 자극적인 럭셔리 제품들의 숲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브랜드에 관한 정보만 해도 분량이 몇 백 메가바이트는 될 것 같다. 없이 살면서도 치솟아오르는 상승욕구 때문에 우울해 죽겠는데 가짓수까지도 셈하기 힘들 정도라니, 날마다 묵직한 두통이 가난한 머리를 짓누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럭셔리 라이프’를 숭상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일을 간단하게 저지르나 보다. 물론 지금은 돈만 있으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원하는 삶’을 위한 즐겁지 않은 방법들이 창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퍼즐처럼 보이지만 아주 고전적인 럭셔리 열기의 한 예를 들어보겠다. 솔직히 포인트를 잃은 농담 같다.

큰 집, 큰 차에 대한 집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초여름 아침, 모 고등학교 교문 앞에는 3000cc가 넘는 고급 자동차가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눈이 멀어지기라도 할 것 같은 광택, 가죽 시트, 장착된 네비게이터는 ‘선택된 종족’들에겐 필수다. 그들은 정글 같은 교통지옥의 할큄 속에서 도로의 주행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데 합세한 다음, 부모의 열기에 쪼그라든 10대들을 떨궈놓고 떠난다. 그들의 부모는 아침의 교통 정체시간조차 엄청난 에너지로 전환시킬 만큼 자신들의 자손들을 아낀다는 걸까(혹시 걸어서 등교하는 걸 학교에서 금지하는 건 아닐까)? 이럴 때도 부모가 생각하는 호화로운 삶이란, 그들의 분신인 자식들에게 모든 걸 충족시켜주는 거라고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게 옳은 걸까?

‘럭셔리 라이프’ 지역에서는 ‘하나를 위한 현명함, 전부를 위한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선택들로 가득 차 있다. 큰 사이즈에 대한 집착은 완벽한 예다. 솔직히 우리 머릿속엔 더 크고 훌륭한 집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안락함과 과시라는 명분을 위해 우리는 날마다 지나치게 큰 공간을 몽상한다. 나에게 ‘공간’이 더 주어졌다는 것은 분명 현대적 의미의 권력이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보다 넓은 평수에 살기 위해 지어진, 효용성이 떨어지는 집은 좁은 땅에 넘쳐난다. 바야흐로 청소하는 데만도 한나절이 걸리는 큰 집이 럭셔리 광신도들의 기념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도 그렇다. 자동차로 전함을 밧줄을 이용해 끌어오거나 암벽에 매달고 달릴 것도 아니건만, 배기량 800cc짜리의 작은 차로도 가고 싶은 곳을 얼마든지 갈 수 있건만, 사람들은 동급 최고 배기량의 자동차를 꿈꾼다.

다른 사람의 차보다 더 큰 차란, 자신을 더욱 멋져 보이게 만드는 백작 같은 권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큰 자동차는 운전자가 (약간의) 안전함과 (대단한) 부를 드러내는 데엔 도움이 되겠지만, 자동차 크기만큼 국토가 줄어드는 것과 새로운 교통체증 유발(골목길을 다니기도 힘들 만큼 큰 차는 교통정체 라인을 길어지게 만드는 데 진정 책임이 없을까)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넘쳐나는 재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을 덜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과 방법들뿐이다.



이를테면 ‘럭셔리 라이프’ 지역은 교통 재난과 불(不)건강함이라는 새로운 문제와 타협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두 다리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고 말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동차가 지배하는 세계에선 열등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현관부터 헬스 센터까지 운전하고 가서야 애달픈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이다. 계절마다 집 뒤편 작은 산에 핀 꽃 나무들의 풍경에 감사한다고 해도 그 사이에 대규모 맨션이 들어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풍경을 뺏긴 사람들에게 더 이상 조용한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진정한 럭셔리는 엄청난 굉음에 강력한 마력의 기계들을 사용하는 건설회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굴착기가 1분 30초 내에 청각의 영구 손실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물론 풍경을 잃게 된다거나, 수질이 오염된다거나 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류의 문제들은 그들에겐 상관이 없다. 이윽고 부자들은 좀더 심한 교통난, 더 위험한 도로, 더 심한 소음들로부터 숨어버릴 자신들만의 단호한 참호를 구입한다. 조용히 걷고 싶은 어느 화창한 날에조차 한 블록도 걷지 않도록.

이 모든 딜레마는 럭셔리 열기가 치료된 뒤에야 풀리겠지만, 럭셔리의 열기는 이제 잡을 수 없는 질병이 되었다.



주간동아 439호 (p104~104)

이충걸 GQ KOREA 편집장 norway@doo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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