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2004.06.03

기자의 집념 + 고급 정보원 ‘합작 대특종’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입력2004-05-27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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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집념 + 고급 정보원 ‘합작 대특종’
    월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월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68년 3월에 ‘미라이’라는 마을에서 미군이 500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몰살했다는 내용이다. 500명이라는 수도 수려니와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사격 연습하듯 무차별 살해한 수법은 더욱 끔찍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 언론들이 월남전의 추악한 이면에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보도는 한 젊은 기자의 추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33살의 젊은이였던 세이무어 허시 기자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라크군 포로에 대한 학대 사실을 보도해 다시 한번 전 세계인의 시선을 끌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것도 대단하거니와 미국이 20세기와 21세기에 각각 벌인 주요 전쟁의 이면을 폭로한 주역이 됐다는 점에서 이 노(老) 기자를 소개하는 국내 언론 기사에서의 ‘탐사보도 전문기자’라는 별칭이 그야말로 손색없어 보인다. ‘탐사보도-사건의 이면을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진실을 밝혀내다’. 기자의 일이란 게, 또 기사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겠지만 발표된 사실 위주로, 표피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언론의 행태와 대비시키려는 용어로 보면 될 듯하다.

    탐사보도 하면 우리는 흔히 밥 우드워드를 떠올린다.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특종보도로 일약 스타가 된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는 지금도 굵직굵직한 특종을 꾸준히 터뜨리고 있다. 그가 쓴 책은 예외 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거물이 된 그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 보도한 이야기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부하들’(All the President’s Men·사진)이라는 영화에 나온 그의 모습은 새파란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의 신참기자로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절도사건에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매달려 대특종을 낚아낸다. 그 후 30년간 그는 기자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다.

    영화에서 텁수룩한 머리칼의 더스틴 호프만이 분한 동료 칼 번스타인이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는 것-몇 년 전 국내 한 자동차 광고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과도 대조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우드워드의 대특종에는 상당히 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예일대학 출신의 인텔리인 우드워드 자신의 기자 감각과 집념어린 추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종은 ‘딥 스로우트’라는 고급 정보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취재가 벽에 막힐 때마다 ‘딥 스로우트’는 지하주차장 등 한적한 곳에서 우드워드를 만나 한두 마디 결정적인 정보를 던져준다. 당시 한 포르노 영화 제목을 딴 이 정보원의 정체에 대해 우드워드는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워터게이트 특종의 숨은 연출자는 바로 딥 스로우트인 셈이다. 유명인이 된 이후 우드워드의 취재는 사실 탐사보도라기보다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한 측면이 크다. 워싱턴 주류사회에서 우드워드의 집에 초청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고급정보를 털어놓으면서 친분을 쌓고 싶은 이들, 또 명성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그의 ‘고공 플레이’가 과연 탐사보도인지는 의문이 든다.



    현장을 뛰어다니는 진짜 탐사보도 기자의 일면은 그보다 ‘업클로즈 앤 퍼스널’이라는 최근 영화에서의 워렌이라는 고참기자에게서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워렌은 중남미의 분쟁지역 취재를 위해 단신으로 뛰어든다. 재미있게도 워렌을 연기한 건 ‘모두가 대통령의 부하들’에서 우드워드로 분한 로버트 레드포드다. 영화에서 워렌은 우드워드와 달리 주류 속에 쉽게 편입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묘사된다. 허시 기자도 제도권 언론의 최고봉인 뉴욕타임스에 스카우트돼 갔다가 적응을 못하고 그만뒀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아웃사이더야말로 진짜 탐사기자의 숙명이 아닐까도 싶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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