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2004.05.27

전문 기술직은 ‘Yes’ 단순 노무직은 ‘No’

기능 실습 제도 엄격 적용 부작용 최소화 … 불법 체류자 단속 방법론엔 ‘고민’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5-20 1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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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기술직은 ‘Yes’ 단순 노무직은 ‘No’

    일본 법무성 도쿄입국관리국 건물에서 만난 스리랑카인들. 기능연수생 가이얀씨, 유학생 샨미씨, 기능연수생 디네시씨(왼쪽부터).

    scene#1. 일본 도쿄의 통신 전자기기 종합회사 NEC의 한 사무실

    4월27일 오후 한국인 전정휘씨(31)가 일본인 동료들과 새로운 업무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논의를 벌이고 있다. 전씨가 유창한 일본어로 기존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일본인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씨는 한 일본회사에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IT(정보기술) 전문가다. 5년 전부터 일본의 전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 일본에 왔다. 가끔 전씨는 자신이 일본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동료들과 사장이 그를 ‘외국인’ 취급하기는커녕 장난을 걸 만큼 허물없이 대하기 때문이다. 빠른 적응력과 붙임성 있는 성격도 순탄한 생활에 한몫했다.

    그는 1999년 입사 때부터 줄곧 능력을 인정받아 내국인과 똑같은 급여를 받으며 근무해왔다.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연금 납부의 의무도 이행하고 있다. 반면 같은 회사의 중국인들은 전씨보다 100만엔 정도 낮은 연봉을 받는다. 적응력이나 IT 기술면에서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하는 일본 회사의 풍토에서 전씨는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고 있다.

    scene#2. 일본 도쿄 신주쿠역 근처의 라면 가게

    4월28일 점심시간, 여종업원 류카휴씨가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한다. 중국인 류카휴씨는 불법체류자다. 관광비자로 일본에 들어온 뒤 어느새 2년째 머무르고 있다. 음식 주문과 서빙을 담당하는 얼굴엔 긴장감이 떠날 줄 모른다. 아직 서투른 일본어 때문이다. 이날도 ‘도리자라(접시)’를 갖다달라는 손님의 주문에, ‘하이자라(재떨이)’를 가져다주는 등 실수 연발이다.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웃어도 보고 정성을 다해 서빙하지만 어쩐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부쩍 불법체류 단속이 심해지며 갑자기 도쿄의 경찰이라도 들이닥치지는 않는지,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이 들통나지는 않는지 내내 불안하기 때문이다.



    일본 노동시장 부정적 영향 차단 ‘고심’

    일본에서 만난 두 외국인 노동자가 각기 살아가는 모습이다.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전문 분야의 외국인 노동자는 적극 수용하고, 단순 분야의 노동자 유입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자’는 입장으로 풀이할 수 있다. 1999년 8월13일에 의결된 일본의 ‘제9차 고용대책 기본계획’은 이러한 기본방향을 밝히고 있다. 전정휘씨와 같은 전문인력들은 일본 산업의 발전과 국제화의 촉진을 위해 적극 받아들이는 반면, 류카휴씨와 같은 비숙련 단순기능 분야의 외국인 노동자는 국내 노동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의 ‘외국인연수제도’나 ‘기능실습제’가 모두 일본의 제도에서 따왔기 때문. 중국과 동남아시아, 한국 등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노동력의 유입이 증가하는 상황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볼 수 있다. 특히 남미 출신의 일본 동포인 ‘니케진’은 우리나라 조선족과 비견될 수 있다. 한국과 닮아 있는 국가, 일본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전문 기술직은 ‘Yes’ 단순 노무직은 ‘No’

    일본 법무성 도쿄입국관리국에서 발간한 ‘불법체류자 감호 시설’ 브로셔(오른쪽).일본 도쿄의 라면 가게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노동자, 류카휴씨(아래 왼쪽 사진 오른쪽). 일본의 IT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근로자들.

    “일본 IT산업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왔어요. 이제 일본에 온 지 겨우 두 달 됐는데, 사장님이며 모두 친절해요. 아직 연수생 신분이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여태껏 사업장을 이탈한 동료는 한 명도 없어요. 일본에 오기 전,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국 땅에서 잘 견디고 있는 편이죠.”

    4월28일 일본 법무성의 도쿄입국관리국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가이얀씨(23)는 기능연수생으로서의 삶에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어가 서툴러 유학생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의사를 전달하는 형편이지만, 그의 얼굴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흘렀다.

    가이얀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는 한국에 비해 더 엄격하고 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회사들은 송출국의 재직노동자 중 3~5배수의 후보를 선발하고, 이들을 상대로 직접 인터뷰를 실시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골라내는 데 만전을 기한다. 새로운 국가에 대한 적응력과 연수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별함으로써 기능실습생의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검증 없이 외국 인력을 도입해 연수는 실시하지 않고 근로만 시켜 논란이 된 한국의 ‘산업연수생제도’와 차별화된 모습이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단순기능직의 경우, 일본 정부는 제도 운용의 유연성을 발휘한다. 단순기능 외국인 노동자의 활용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인력을 확보할 수 없는 업종에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감춰진 속내다.

    해외 거주 일본인 동포인 니케진은 아무런 제한 없이 일본에서 취업할 수 있다. 니케진은 2000년 통계 기준으로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32.9%인 23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의 80% 이상이 제조업에 종사해 부족한 인력을 메우고 있다. 다음으로 기능실습생과 시간제 근로에 종사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순기능근로직’의 공백을 메운다. 일본 외국인 노동자 정책의 큰 특징은 일본에 학업을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 유학생이나 어학연수생이 주 28시간 이하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2만명 불법체류자 처리 ‘발등의 불’

    한국인 유학생 윤정숙씨(32·여)는 일본에 머물며 커피 전문점이나 음식점의 종업원에서부터 일본 회사의 통역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는 “학생들은 근로할 기회를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어 생활비를 벌 수 있고, 일본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한다.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이 크게 불거지지 않은 사실도 한국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회사가 부도나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고용주에게 노동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국제노동자조합 ‘브라이트(Bright)’가 이들의 권리 찾기를 돕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오가와 마코토 외국인고용정책 과장은 “일본에 합법적으로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라면 누구나 능력에 합당한 급여를 지급받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보험, 산재보험, 교육권 등 모든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불법체류자도 일하다가 재해를 입을 경우 ‘의료권’을 보호받는다. 3년 전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었던 한국인 김모씨는 요코하마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철근이 떨어져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었던 회사는 김씨가 불법체류자임을 탓하기에 앞서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그는 1년 만에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한국의 기업이었다면 불법취업자를 그렇게 치료해주었을까?’ 아직도 그런 의문이 김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전문 기술직은 ‘Yes’ 단순 노무직은 ‘No’

    후생노동성의 오가와 마코토 외국인고용정책 과장, 국제이주노동기구(IOM)의 나카야마씨, 법무성 도쿄입국관리국의 기타 조노씨(왼쪽부터).

    하지만 일본도 불법체류자 문제는 코앞에 닥친 숙제다. 2002년도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76만명 중 불법체류자는 2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관광비자를 받아 입국해 불법으로 일을 하거나 아예 남의 비자를 도용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외국인 지문·홍채 정보 전산시스템 도입 검토

    도쿄 근교에 집단적으로 살아가던 불법체류자들이 최근 각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입국관리국의 단속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들은 “일본의 고령자와 소수자들이 일할 자리를 뺏고 있다”는 원성마저 듣고 있다. 지난해 한 중국인 노동자가 일본인 일가족 4명을 살해하는 등 외국인 범죄율이 높아지자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는 ‘불법체류자 완전 소탕’을 강력히 천명하고 나섰다.

    일본의 법무성 도쿄입국관리국의 기타 조노씨는 “불법체류자 정책이 더욱 강경해졌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전문 기술직은 ‘Yes’ 단순 노무직은 ‘No’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요코하마 항구(위). 건설 인력 시장이 열리는 요코하마의 빈민촌 고도부키초.

    “일본 정부는 꾸준한 단속으로 5년 이내 4만2000명의 불법체류자 인력을 모두 색출할 계획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들어올 불법체류자들을 막는 일이 진행되겠죠. 현재 불법체류 경력이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원천봉쇄해야죠. 불법체류자의 양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의 지문, 얼굴 윤곽, 홍채 정보를 기록하는 전산시스템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부 범법자를 소탕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들의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인지, 투자한 경비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인 일본은 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꿈꾸는 기회의 땅이다. 일본은 그 지위에 걸맞은 선진 외국인 정책을 운용하고 있을까. 국제이주노동기구(IOM) 도쿄 지부의 나카야마 소장은 일본 정책에 대한 자신의 큰 소망을 털어놓았다.

    “일본은 자신이 ‘송출국’이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전문직 외국인 노동자만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있어요. 앞으로 일본에 필요한 외국인력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을 돌볼 간병인이나 사람들이 꺼리는 3D업종의 종사자들이란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불법취업자를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 협력해서 이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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