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3

2004.05.06

헉! 엄마의 커밍아웃 큰일났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4-30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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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엄마의 커밍아웃 큰일났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종종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어놓을 때가 있다. 지금 스페인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떠오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들을 보라. 마치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알모도바르의 영화처럼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일 것 같지 않은지…. 물론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알모도바르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던져준 이미지들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알모도바르가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상업영화다. 설정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알모도바르적’이다. 오래 전에 아빠랑 이혼한 피아니스트 엄마가 새 애인을 세 딸들에게 소개해준다.

    그 애인이 엄마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체코의 피아니스트인 것만 해도 기가 막혀 죽겠는데, 여자다! 세 딸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엄마의 새 취향을 받아들여? 그러기엔 젊고 예쁜 외국인 여자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중년 여자에게 달라붙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 보인다. 혹시 이 여자가 엄마 돈을 뜯어내려는 꽃뱀은 아닐까? 엄마의 새 여자친구를 엄마에게서 떼어내기로 작정한 세 자매는 결국 엄청난 계획을 세운다. 그들 중 한 명이 엄마의 여자친구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정만 읽고 알모도바르식 영화를 기대하지는 마시길.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그렇게 과격한 작품도 아니고, 자기 주제를 모르고 예술영화인 척하는 작품도 아니다.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그건 엄마의 커밍아웃이라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이용해 가벼운 가족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다. ‘엄마 애인 유혹하기’라는 다소 자극적인 음모도 신경 거슬릴 정도로 발전하지 않고 중간에 눈물 어린 화해 속에 통합된다.



    영화는 오히려 알모도바르보다 우디 앨런 쪽에 가깝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둘째 딸 엘비라는 전형적인 우디 앨런 영화의 캐릭터다. 가족들간의 관계나 연애 운이 형편없는 신경질적인 지식인 말이다. 영화에서 엄마의 커밍아웃만큼이나 중요한 건 자신감 없는 작가 지망생인 엘비라가 온갖 소동을 겪으면서 당당한 한 명의 예술가로 성장하고, 애인도 한 명 건진다는 이야기다.

    연인들의 키스로 끝나는 결말은 흐뭇한 해피 엔딩이고, 스페인 사회의 호모포비아(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형식적인 가족제도를 비웃는 야유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지만,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비교적 평범하다. 영화의 분위기는 흥겹지만 전체적인 주제나 스토리 전개는 알모도바르와 앨런의 영화들을 지나치게 모방한 것 같고, 주제에 대한 깊이는 빈약하다. 그러나 엄청난 개성과 깊이를 과시하는 걸작을 만드는 건 처음부터 이들의 의도가 아니었을 듯하니 너무 야박할 필요도 없다. 그냥 긴장 풀고 느긋하게 가벼운 코미디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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