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4

2016.09.07

사회

스토킹 신고? 보복이 더 두려워

‘지속적 괴롭힘’에 기껏 벌금 8만 원…‘스토킹처벌법’ 16년간 여덟 차례 입법 시도 무산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9-02 1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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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A아파트단지에서 여성 B(30)씨가 30대 남성 C씨에게 살해됐다. 가해자 C씨는 피해 여성 B씨와 3주 전 이별했는데, 그 후에도 계속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는 등 스토킹을 해왔다. 스토킹이 살인사건의 전조였던 것. 피해자 가족은 “만나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둥 가해자의 협박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지만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처럼 스토킹 피해자가 대부분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스토킹 관련 처벌이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로 구분돼 최대 10만 원 벌금형이 처벌의 전부다. 벌금 처분 외에는 스토킹을 막을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이다. 스토킹으로 벌금형을 받고도 또다시 스토킹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현행법상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경범죄 처벌법상의 ‘지속적 괴롭힘’ 규정(제3조 1항)이다. 해당 법상 ‘지속적 괴롭힘’의 정의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것’이다. 스토커에 대한 처벌을 결심한 피해자가 부딪히는 첫 번째 난관은 스토킹 피해 증거를 직접 모아 반드시 본인이 신고하게 한(친고죄 분류) 법 규정이다. 즉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 신고해야 스토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 처벌받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스토커의 지속적 괴롭힘으로 정신이 황폐해진 피해자는 대부분 증거 수집은 고사하고 보복이 두려워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신고해도 대부분 경고만 받고 풀려나

    몇 달 전까지 스토킹에 시달리던 직장인 정모(30·여) 씨도 비슷한 경우다. 전 직장 거래처 직원 김모(32) 씨는 1월부터 “나와 교제하자”며 정씨 주변을 배회하고 미행까지 했다. 정씨는 “스토커 김씨가 내 얼굴과 이름을 다 아는 상황이라 경찰에 신고하면 (나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정씨는 직장 근처에까지 찾아온 김씨 때문에 결국 3월 초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스토킹은 계속됐고 정씨는 3월 말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첫 신고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김씨가 경찰의 경고 조치만 받고 풀려난 것. 김씨는 그 후에도 정씨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김씨가 경고만 받고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경범죄 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처벌 규정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법상 ‘지속적 괴롭힘’이 성립하려면 △3회 이상 이성교제 요구 △반복적으로 지켜보거나 따라다니는 행위에 피해자의 명시적 거절의사 표현 △신고 후에도 스토킹이 이어지는 상황 등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설령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 스토커가 처벌받는다 해도 스토킹을 멈추는 스토커는 별로 없다. 처벌이 너무 경미하기 때문이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른 스토킹 처벌은 고작 10만 원 이하 벌금형이 전부다. 경찰에 따르면 어렵사리 스토킹 사실을 밝혀낸다 해도 법원이나 검찰이 내리는 벌금형은 보통 8만 원 수준이라는 것.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와 비슷한 액수다. 몰래 찾아와 지켜보고 미행하는 것 외에 직접적 위해(형법상의 폭행, 주거 침입, 협박, 주거 및 신체 수색, 명예훼손, 모욕 등)가 없다면 스토킹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법적 방법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명무실한 형사처벌 때문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스토커의 접근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피해자가 직접 스토킹 증거를 모아야 하기 때문.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려면 스토커가 피해자를 스토킹한 사진이나 문자메시지, 메신저 내용 같은 증거와 스토커의 신원 및 주소가 필요하다. 스토커를 경찰에 신고했다면 경찰을 통해 스토커의 신원과 주소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피해자가 일일이 스토킹 증거를 모아 제출해야 가능하다. 게다가 접근금지가처분 자체가 민사법상 결정이라 형사법상 처벌만큼 강제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한계다. 



    유명무실 형사처벌, 2차 범행 유발

    국내에서 스토킹은 벌금 10만 원 이하 경범죄지만 선진국에선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강력범죄로 취급한다. 미국은 1991년부터 스토킹 범죄 가해자에게 1년 이하 징역, 1000달러(약 113만 원)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에 비해 스토킹을 강력하게 처벌한다. 2000년 제정한 스토킹 규제법에 따라 스토커에게 징역 1년 이하, 벌금 1000만 원을 부과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스토킹을 징역형으로까지 처벌하게 된 이유는 스토킹이 살인이나 상해사건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89년 여배우가, 일본에서는 99년 회사원과 여대생이 각각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각국은 스토킹 문제를 법제화해 처벌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스토킹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경우가 수차례 있었다. 4월 가락동 살인사건 외에도 2013년과 2015년 스토커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스토킹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통칭 ‘스토킹처벌법’이 아직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1999년부터 총 여덟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범죄 양태에 따라 사후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스토킹 범죄에 대한 확실하고도 실질적인 처벌을 위해 ‘스토킹처벌법’을 특별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스토킹 피해 실태 및 법적 대응’ 심포지엄에서 “현행 형법 및 경범죄 처벌법 규정은 스토킹에 대한 사후적 대처로 피해 방지와 피해자 보호가 부족한 데다 처벌 형량도 극히 제한적이고 경미해 오히려 스토커를 자극하고 2차 범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일정한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해 무겁게 처벌하고 스토킹 범죄 발생 시 응급조치, 신변안전조치,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둬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스토킹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위협과 협박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강력범죄나 성범죄에 가깝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실제적으로 상해를 입는 경우가 적다는 이유로 경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스토킹이 살인이나 상해사건 같은 강력범죄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스토킹을 강력범죄 징후로 규정하고 스토킹을 근절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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