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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 가족이 흔들린다

‘건강한 가정’ 과 ‘ 不 건강한 가정’ 의 경계선은?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건강한 가정’ 과 ‘ 不 건강한 가정’ 의 경계선은?

‘건강한 가정’ 과   ‘  不 건강한 가정’  의 경계선은?
‘한때는 가장 견고했으나 이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그걸 ‘가족’이라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억지가 아닐 듯하다. 그렇게 흔들리는 가족을 지키려는 안간힘이 요즘 법이나 제도의 틀을 빌려서 시도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혼 상담제’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을 새로 만들었는데, 앞으로 이혼하려는 부부는 이 법에 따라 설치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이혼 허가제’라는 논란이 분분한데, 그 논란 속에는 한발 더 나아가 ‘건강가정’이라는 법의 이름에 담긴 발상 자체에 대한 지적도 들어 있다.

‘가정의 건강’을 지키자는 취지에 누군들 이의를 제기할까마는, 문제는 그렇다면 건강한 가정은 어떤 것이고, 건강하지 않은 가정은 또 어떤 걸 가리키느냐는 것이다. 이혼 가정은 ‘불(不)건강’ 가정으로 보는, ‘건강하지 못한’ 전제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전통적인 가정과 가족 개념의 균열과 혼란이 엿보인다. 최근 여성학계나 사회학계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도 바로 이에 대한 것이다. 비판자들은 혈연 중심적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데 종래의 가족 개념과 가정 모델을 고집하려는 시대 역행적인 사고방식의 발로가 아니냐고 얘기한다. 호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팽팽한 대립에서도 이 같은 논점들이 제기된다.

가정의 붕괴 내지 해체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그 파열음이 크게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마도 가족을 묶는 핵심 요소를 혈연이라고 할 때, 그 혈연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게 우리 민족이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대한 스펙터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피로 맺어진 가족애였다. 형 진태가 어린 동생 진석이를 구하겠다는 일념에 총탄 빗발치는 전장을 휘젓는 용기의 원천은 ‘물보다 진한 피’, 그것이었다. 그 가족애는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논리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오랜 세월 알아왔던 가족이란 이데올로기다. 우리 역사에서 국가라는 관념이 견고했던 것도 결국 국가가 가족의 확장이었기 때문이다. ‘국가(國家)’라는 말의 어원에서 연상되듯이 국가의 역사가 짧은 서구에서는 결사체의 하나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는 국가를 우리는 가족처럼 선험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영화 ‘바람난 가족’(사진)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그 튼튼한 가족이라는 ‘성’의 균열과 해체를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가족들은 혈연으로 맺어져 있으면서도 사실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 시부모 아들과 며느리 네 사람은 한집에 동거할 뿐, 이들을 한 가족으로 묶는 끈은 너무도 느슨하다.

오히려 이 가정에서 가장 ‘가족적인’ 관계는 혈연관계가 아닌 두 사람, 여주인공과 입양아들이다. “엄마는 왜 내가 입양됐다는 걸 알려줬어?” “너만 당당하면 되지, 입양됐다는 게 뭐가 중요해?” 이런 가족은 과연 건강하지 않은 가정일까. 결국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관념만 없다면 이 가정은 나름대로 건강하게 비칠 수 있다. 그래서인가. 남녀 주인공이 결별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밝고 긍정적인 해피엔딩이다.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해야 하느냐를 놓고 국내외에서 격론이 벌어질 정도로 휙휙 바뀌고 있는 요즘 세상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양화되는 가족의 형태에 대한 열린 시각이다. 이를 위기로 보느냐, 변화의 과정으로 수용하느냐. 그건 우리의 마음속 단단한 고정관념에서 ‘바람’을 빼는 것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431호 (p87~87)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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