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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무너지는 주식회사 적십자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감사원 감사 이후에도 혈액관리 여전히 ‘구멍’ … 헌혈 2910명분 B형 간염 검사 없이 공급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대한적십자사의 사과문(아래). 적십자사의 부적격 혈액 유출사고는 그후에도 계속됐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가 지난 5년 동안 에이즈와 간염에 양성반응을 보인 7만6000건의 혈액을 각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했다는 감사원의 충격적인 감사 결과가 보도된 뒤 적십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겁다.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마다 탄핵정국에 버금가는 국민적 반발이 잇따르자 적십자사는 4월2일 모든 중앙 일간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싣고 “감사 이후 과거 양성 경력이 있는 헌혈자가 헌혈을 하게 되더라도 자동 폐기되는 등 헌혈 전부터 공급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해명에 나섰다.

직원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단 … 복지부에 보고도 안 해

그러나 “신상정보가 잘못 통보된 에이즈 환자 199명의 혈액은 출고된 사례가 없고, 과거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63명의 에이즈 감염이 우려되는 자는 최종 확인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는 등 적십자사의 사과문은 오히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꼬박꼬박 딴죽을 거는 ‘반박문’에 가까웠다. 적십자사는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문에서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주간동아’ 취재 결과 감사원 감사 이후에도 혈액 안전관리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가 끝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2910명분의 헌혈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거치지 않은 채 각 병원, 제약사에 그대로 공급된 것. 더욱이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는 자신들의 이런 엄청난 실수를 3월 초에야 뒤늦게 발견했다. 2000년 4월 이후 유통 금지된 부적격 혈액을 수술 환자에게 공급함으로써 5명(적십자사는 3명이라고 주장)의 B형 간염 환자를 발생시킨 적십자사가 이번에는 아예 검사조차 거치지 않은 혈액을 그대로 공급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일단 당시의 상황을 재연해보자.

지난 2월12일 적십자사 남부혈액원 혈액검사과 직원 최모씨(임상병리사)는 B형 간염 검사기가 고장 나자 검사용 혈액 샘플을 모두 C형 간염 검사기에 옮겨넣고 검사를 계속 진행했다. B형 간염 검사기와 C형 간염 검사기는 같은 종류의 검사기계로 입력하는 양성(감염) 판단 기준치(Cut-off값)에 따라 B형 간염 검사기로도, C형 간염 검사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즉 B형 간염의 감염판단 기준인 0.05를 Cut-off값으로 입력해놓으면 B형 간염 검사기가 되고, C형 간염의 감염판단 Cut-off값인 0.4를 기준으로 설정하면 C형 간염 검사기가 되는 것이다. C형 간염 검사기의 양성판단 기준값을 0.4에서 0.05로 바꾸어놓으면 B형 간염 검사 결과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최씨가 B형 간염 검사용 혈액 샘플을 C형 간염 검사기에 넣으면서 기준치를 B형 간염 검사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검사 안 거친 혈액 유통에도 “수혈감염 사고 우려 없다” 발뺌

이날 C형 간염 검사기로 검사한 561명분의 B형 간염 검사용 샘플에서는 당연히 B형 간염 양성반응자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B형 간염의 양성판단 기준치는 0.05인데 검사기에 입력된 기준치는 그보다 8배나 높은 C형 간염의 양성판단 기준치 0.4가 입력돼 있으니, 설사 B형 간염 환자의 혈액을 넣었다 하더라도 검사 결과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게 된다. B형 간염 환자의 Cut-off값은 아무리 높아도 0.4를 절대 넘을 수 없다. 561명의 혈액 검사가 끝나는 동안 최씨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고장 난 B형 간염 검사기는 수리를 위해 외부로 보내졌다.

최씨는 다음날도 C형 간염 검사기의 기준값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B형 간염 검사를 C형 간염 검사기에서 그대로 진행했다. 이날 하루 들어온 1612명분의 헌혈 혈액 샘플에서도 B형 간염 양성반응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무려 2173건의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시중에 유통된 것이다. 사흘째에는 최씨가 아니라 다른 직원인 이모씨가 최씨 대신 헌혈 혈액에 대한 B형 간염 검사를 진행했다. 이씨는 기준치 입력이 잘못됐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다시 713명분의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됐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나흘째 고장 났던 B형 간염 검사기가 수리가 끝나 돌아오면서 중단됐다.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대국민 사과문이 나온 뒤에도 혈액 유출사고가 계속된다면 누가 적십자사를 믿고 수혈을 받으려 하겠는가? 적십자사의 진정한 반성이 시급하다.

하지만 최씨와 이씨는 그때까지도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정상대로라면 B형 간염 검사기가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 대용으로 사용했던 C형 간염 검사기의 기준값을 C형에 맞게 바꾸기 위해 점검을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기준값을 변경하지 않고 B형 간염 검사를 엉터리로 한 사실을 발견해야 했다. 그렇게만 했어도 병원과 제약사에 보내진 혈액 중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인 혈액을 다시 수거해 폐기하거나 재검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의 실수는 3월18일 적십자사 수혈연구원의 검사시약에 대한 시험평가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미 공급된 혈액은 모두 병원과 혈액원에서 사용된 뒤였다. 적십자사는 최씨를 즉각 해임하고 이씨와 검사과장, 혈액원장을 각각 중징계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모두가 적십자사 산하 16개 혈액원 중 유일하게 ISO(국제표준규격) 인증을 받은 남부혈액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검사과정 없이 유출된 혈액들의 B형 간염 감염 가능성이다. 보통 우리 국민의 5~8%(바이러스 보유자 포함)가 B형 간염에 노출돼 있고, 평상시 검사 혈액의 평균 2~5%가 B형 간염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25명분의 B형 간염 감염 혈액이 유출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1명분의 혈액이 혈장과 혈소판, 적혈구로 원심분리된 후 수혈용과 혈액제제 원료로 공급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의 정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더욱이 유출된 혈액 속에는 1차 B형 간염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재검사가 요구된 24명의 혈액이 포함돼 있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측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냉동 보관된 2500여건의 문제 혈액 검체(검사를 위해 보관해둔 시료)에 대한 B형 간염 검사를 재실시한 결과 단 한 건도 양성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수혈감염 사고의 우려는 절대 없다”고 밝혔다. 적십자사는 또 “검체 조사 과정에서 약한 양성반응이 나온 5명의 혈액이 성분별로 9개 팩(unit)으로 나눠져 병원으로 출고됐으나 전혀 이상이 없는 혈액”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적십자사측은 검체에 대한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감독기관인 복지부는 ‘징계를 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반응.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적십자사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조사하고 ‘죄는 있어도 피해는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와 관련, 부패방지위원회는 이번 사건 또한 적십자사의 조직적인 ‘부패행위’로 판단해 자세한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국무총리실에 이를 보고했다.

과연 “수혈감염의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적십자사측의 해명은 사실일까?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이제 감사원의 감사자료를 넘겨받아 수사에 나선 검찰(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의 몫이 됐다.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적십자사가 검찰수사 과정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430호 (p20~21)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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