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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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멈춘 골목 왕서방 그림자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02-27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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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 멈춘 골목 왕서방 그림자

    경인전철 종착역인 인천역에서 내리면 만날 수 있는 패루 중화가(큰 사진). 패루를 지나면 차이나타운 거리가 나온다. 한국판 자장면의 본산지인 공화춘.

    중국에도 자장면이 있을까? 원래 자장면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중국 음식이라는데, 과연 정말 그럴까? 수수께끼도 풀 겸, 중요한 이웃으로 급부상한 중국도 만날 겸 해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은 외국의 문물과 문화가 흘러 들어온 거대한 근대의 창구다. 그 물결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전통과 만나 충돌하고 섞이면서 근대사에 족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 중구는 개항의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차이나타운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중국인 거리로 들어서는 세 개의 길목에는 키 큰 패루가 세워져 있다. 자유공원 아래 가장 북쪽의 선린문을 가운데로 하여 왼쪽 발치께의 인천역 앞과 마주한 것이 제1패루, 오른쪽 월미주유소 앞에 서 있는 것이 제2패루다. 제1패루와 제2패루 모두 이름은 ‘중화가’이다. 여행은 제1패루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세월 멈춘 골목 왕서방 그림자

    복래춘에 쌓여 있는 월병 더미(위). 풍미에서 중국요리를 먹고 있는 사람들.

    중국인 거리에 들어서면 우선 중국풍의 붉은 빛이 많다. 길에도 붉은색이 화려하게 칠해져 있고 금색 용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붉은 가로등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언덕길을 쭉 오르면 붉은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있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돌면 긴 석조 계단이 보인다. 산을 계단처럼 깎아 만든 길 위에 집들이 있는데, 길들은 아직도 난간을 흔적처럼 갖고 있다. 다섯 개의 층개참마다 이루어진 길들 때문에 이 길의 이름은 층층길이다. 이곳 층층길을 올라가는 석조 계단은 풍물거리로 조성되고 있다. 길 끝에는 선린문(善隣門)이 있다.

    다시 삼거리로 나와 왼쪽으로 내려가면 자장면 골목이 나온다. 이 골목 깊숙이 들어서면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사거리를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수수께끼 같은 자장면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공관처럼 네모지고 퇴락한 건물에 ‘공화춘’이라는 낡디낡은 간판이 붙은 이곳이 바로 한국판 자장면의 본산지다.



    자장면은 부두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청국 상인들이 만들어낸 음식이다. 본토의 콩으로 만든 노란 자장면과 달리 캐러멜을 넣은 춘장을 볶아 국수와 비벼 낸다. 자장면의 ‘자’는 볶는다는 뜻의 ‘작(炸)’에서 유래했다.

    아쉽게도 공화춘은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 일대의 음식점들은 다 청국 상인들이 만들어낸 원조의 맛을 낸다. 그중에는 공화춘 주방장이던 사람이 차린 음식점도 있다. 공화춘과 등을 대고 서 있는 ‘풍미’가 바로 그곳이다. 풍미에서는 양장피와 마파두부, 탕수육, 화권, 자장면으로 이루어진 코스메뉴를 3만원(2인분)에 먹을 수 있다. 유산슬과 오향장육, 고추잡채, 화권, 자장면으로 된 코스도 같은 가격이다. 자장면은 3000원.

    이제 중국인 거리를 슬슬 걸어볼 차례다. 이곳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멈춘 듯 지난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화려한 가로등과 붉은색으로 칠해진 길, 세월 속에 적막하게 늙어간 이국 풍정의 집들, 틈처럼 보이는 옹색한 골목길, 창틀과 벽까지 한 가지 색으로 칠해버린 50, 60년 전의 시멘트 가옥들은 우리의 가난한 지난날 풍경 같기도 하다.

    세월 멈춘 골목 왕서방 그림자

    1899년에 지어진 일본제일은행 건물에 들어선 월미관광특구 홍보관(왼쪽). 자유공원 누각에서 내려다본 모습. 붉은 지붕이 화교중산학교다.

    인천 중구에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과 청국인들이 지은 근대 건물 79채가 지금도 남아 있다. 차이나타운의 두 번째 패루에서 기호신문사 맞은편 길로 들어서면 지붕에 초록색 돔을 인 단층 석조 건물을 만난다. 월미관광특구 홍보관이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원래는 일본제일은행 건물이다. 후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으로 1899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렇게 지은 지 100년이 지난 건물도 4채가 넘는다. 고즈넉이 낡은 풍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역사를 증언하고 있기도 한 건축물들이다.

    풍미 맞은편 길로 들어서면 제2패루가 내려다보이는 길과 만나는 사거리가 나타난다. 한쪽 길은 석등을 양편에 거느린 석조 계단이다. 계단 초입에 기념비가 서 있다. 석조 계단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인천시가 세운 것이다. 계단은 일종의 국경선이었다. 이를 중심으로 왼쪽은 ‘청관’이라 불리던 중국인들이 살던 조계지였고 오른쪽은 일본인들이 살던 조계지였다.

    조계지란 외국인들이 임대하여 집단 거주했던 치외법권지역이다. 1883년 인천을 개항시킨 일본이 이 지역에 자리잡자 이듬해 중국도 중국 조계를 만들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이들 조계지가 1910년 경술국치 때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중국인들도 우리 땅에서 상권을 쥐고 번창했다.

    이 석조 계단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나무 덧문이 달리고 이층의 주랑 안쪽으로는 외닫이문이 있는 중국식 가옥이 보인다. 화교협회 건물이다. 오른쪽에는 바둑판 같은 격자무늬 창이 툭 튀어나와 있는 전형적인 왜식 가옥이 있다.

    계단 공원 위로 올라가면 공자상이 나타난다. 이 공자상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있는데, 공자상 위의 응봉산에 자리잡은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이 그것이다. 자유공원은 산책길이 잘 가꾸어져 있어 사람들로 북적댄다. 망루에서 내려다보면 인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천역 뒤 엄청난 크기의 범선들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곳 자유공원에는 한·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

    개항 후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미·영·러·독·불 등의 나라도 인천에 자기들의 지계(地界)를 만들어 만국지계 시대를 열었다. 이리하여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만국공원이 들어선다. 만국공원은 한국전쟁 후 맥아더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을 내려다보면 중국에서 일본, 서구 열강과 미국 등 차곡차곡 쌓인 우리 속 외세의 역사가 보인다.

    자유공원에서 내려갈 때쯤 살짝 입이 궁금하다 싶으면 들를 만한 곳이 있다. 공자상이 있는 공원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화교중산학교 앞에 온통 붉고 화려하게 외장을 꾸민 과자점 ‘복래춘’이 보인다. 한국 땅에서 3대째 과자점을 하고 있는 이곳에 가면 월병과 공갈빵, 찹쌀과자 등을 사 먹으며 다리를 쉴 수 있다.

    현재 500여명의 화교가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퇴락한 데다 개발 바람에 밀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마저 많이 훼손된 실정이다. 인천에서는 뒤늦게나마 이곳과 중구 일대의 역사 자원을 보존할 계획에 있다.

    우리는 중국과 과거 파란만장했던 역사와 전혀 다른 새 역사를 열어가려 하고 있다. 곧 차이나타운의 붉은 등이 휘황하게 빛나고 닫힌 문들을 열어젖힌 청국인들이 현재진행형의 중국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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