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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제발 사고 없길” 공포 뚫고 빠~앙

지하철 기관사 매순간 식은땀 주행 … 투신자살 걱정 상당수 ‘공황장애’ 시달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제발 사고 없길” 공포 뚫고 빠~앙

“제발 사고 없길” 공포 뚫고 빠~앙

땅 밑은 끝없는 어둠이 깔린 공포의 공간이다. 기관사들은 그 안에서 죽음의 위협에 맞서 싸운다. 컴컴한 기관실에서 지하철을 운전하고 있는 정승호 기관사(아래)와 기자.



어둠은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다. 폐쇄된 공간은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어두운 뒷골목, 불 꺼진 지하실, 컴컴한 창고…. 우리의 공포 중추를 자극하는 공간들은 알고 보면 이 두 요소가 중첩돼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죽음의 위협에까지 직면한다면. 상황은 그 자체로 완벽한 공포영화가 된다. 이번 ‘현장 속으로’에서 기자는 바로 이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했다. 매일매일 어둡고 격리된 공간에서 죽음의 위협에 맞서는 이들, 지하철 기관사의 생활을 체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지하철 기관사를 이처럼 비장하게 소개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를 쓰기로 한 순간부터 기관사 체험을 마칠 때까지, 최근 잇따르는 지하철 자살사건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게 하나의 변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눈앞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개연성은, 상상만으로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했다.

눈앞에서 사고 상상만 해도 끔찍

실제로 지하철 기관사 가운데 상당수는 정신질환의 일종인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심지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다행히 2월19일 오후 5시47분 개화산역을 출발하는 5호선 기관실에 함께 탑승할 정승호 기관사(30)는 건강하고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기관실에 대한 첫인상은 좁고, 어둡고, 시끄럽다는 것이다. 각종 장비가 들어차 있어 빈 곳은 길쭉하게 1평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당히 어둡다. 조명장치가 달려 있지만 운전실 안에서 나오는 빛은 주행 중 시야를 방해할 수 있어 거의 켜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은 끝없는 어둠이고 주행과 제동 소음은 쉴 새 없이 좁은 공간을 울려댄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불편한 공간에 끼어 타 운전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울 지경인데 정기관사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누군가 같이 타면 굉장히 들떠요. 이제 4시간 동안은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오늘 책임지고 저랑 놀아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그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바빴던 탓이다. 오후 6시가 넘어서면서 러시아워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이날은 앞 차에서 발생한 고장의 여파로 10분 이상 지연된 운행 시간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승객들이 평소보다 더 많았다. 본부 사령은 계속 무전을 통해 “좀 서둘러서 앞차를 따라잡으라”고 재촉하는데, 지하철은 영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 역을 지날 때마다 시간은 점점 더 늦어져갔다. “열차 출발합니다. 출입문 닫습니다”를 아무리 외쳐도 승객들이 끊임없이 밀고 들어섰기 때문이다. 결국은 바쁜 틈틈이 띄엄띄엄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기판에 표시된 객실 하중은 어느새 ‘130’. 수치 ‘100’은 객실이 포화상태라는 것을 가리킨단다. 30이나 넘어섰으니 지금 객실 안 승객들은 ‘내 배와 앞 사람 등 사이에 낀 게 내 손인지 저 사람 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포개진 채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역마다 사람들은 또 지하철에 올라탔다. 차를 오래 기다린 데다 객실은 만원이니 하나같이 짜증스런 표정들이다.

하지만 승객이 이렇게 많을 때는 기관사도 그만큼 힘들어진다.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하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지하철 출입문에도 엘리베이터처럼 자동인식장치가 있어 이물질이 끼면 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라는 믿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오해다. 지하철 문은 수동으로 작동된다. 닫히는 지하철 문을 열기 위해 가방이나 우산 또는 자기 팔을 끼워넣을 경우, 출입문 시스템은 안전을 위해 그 이물질을 ‘박살’내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다.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문이 열리는 까닭은 기관사가 상황을 파악해 ‘열림’ 버튼을 누르는 덕분이다.

“여기 1부터 8까지 숫자 아래 괄호 표시된 것이 보이죠. 문이 제대로 닫히면 여기에 O표시가 생겨요. 모두 O표시가 되면 출발 버튼에 초록불이 들어오고요. 출발을 누르면 그때부터는 자동운전이 시작되는 거죠.”

간신히 한 역을 통과하면서 정기관사가 계기판을 설명해주었다. 버스처럼 내리는 문이 하나뿐일 경우 자동인식장치가 있어도 별 문제가 없지만, 객차는 출입문이 8개 이상이라 여기저기 문이 마구 열리기 시작하면 출발이 지나치게 지연될 수 있어 ‘수동 개폐’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문제는 기관사가 모든 상황을 파악해 대처할 수 없다는 점. 문 사이에 옷깃 같은 얇은 물질이 낄 경우 센서가 이를 인식하지 못해 초록불이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심지어 노트북이 끼었는데도 지하철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출발한 적도 있었다. 몇 정거장이 지난 후 다시 그 방향의 출입문이 열렸을 때 컴퓨터는 이미 부서진 상태였다.

“제발 사고 없길” 공포 뚫고 빠~앙

출입문을 닫기 전 승객들이 안전선 안으로 완전히 물러섰는지를 확인하는 정승호 기관사. 현재 지하철 승강장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흑백 CCTV와 기관사의 눈밖에 없다.

“피해자가 와서 노트북 값과 소프트웨어 파손비, 업무 지연 손해 배상 등을 합쳐 1000만원을 물어내라고 하더군요. 회사가 중재해서 금액을 많이 낮췄지만 그때 놀라고 당황한 이후로는 사람이 많으면 예민해져요.”

정기관사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관사들은 혼잡한 시간대가 되면 사람의 옷자락이 낀 채 지하철이 출발하는 사고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못한다. 기차가 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물러서라”는 방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출입문 수동 개폐 욕먹기 ‘일쑤’

한창 바쁜 시간, 계기판도 볼 줄 모르는 초보 동승자가 도울 일은 출입문 상태 점검밖에 없었다. 5, 6, 7, 8호선 도시철도 역에 설치된 CCTV는 직선역 2개, 곡선역 4개씩. 하지만 모니터가 흑백이기 때문에 사람과 배경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출입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부지런히 창문을 오가며 밖을 내다봤지만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들, 안전선 주위에서 거니는 사람들 탓에 육안으로도 닫힘 여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정신없던 차에 한 승객한테서 출입문을 빨리 닫는다는 욕설까지 듣고는 ‘도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허탈해졌다.

“사람 많은 역일수록 기관사가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게 참 위험해요. 기관사가 쳐다보면서 문을 닫으면 사람들이 ‘왜 내가 뛰어오는 걸 봐놓고도 문을 닫느냐’며 욕을 하거든요. 밤 시간대 취객들은 한 대 친다고 달려들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사람을 다 태울 수도 없으니 방법이 없죠.”

차를 출발시킨 후 정기관사가 웃으며 말했지만, 삿대질을 해대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하철은 출발 버튼을 누르면 열차가 알아서 진행하는 자동운전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2분 간격으로 한 역씩 들어가 전쟁을 치러야 하는 기관사는 바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지하철을 자살 장소로 이용하는 이들까지 늘어나면서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이 몇 배가 됐다.

기관사들은 사람이 열차에 부딪혀 죽거나 다치는 사고를 ‘사상(死傷)사고’라고 부른다. 정기관사도 햇병아리 기관사였던 2001년 3월, 군자역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겪었다.

“연수 마치고 단독 운전을 시작한 게 2000년 10월이었어요. 다섯 달 만에 제 기차로 사람이 뛰어드는 사고를 경험한 거죠. 50대 아저씨였는데, 역 맨 앞 승강장에 서 있다가 제 기차가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 뛰어들더군요.”

정기관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전히 컴컴하고 좁은 공간, 바로 지금도 또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교육 때 사상사고 처리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일단 비상제동을 해놓고 차에서 내려 시체를 찾았죠. 바퀴 사이에 빨려 들어가 있는데 다행히 몸이 끊어지지는 않았더라고요. 끌어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목격자를 찾고…. 제 자신이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목격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려는데 손이 떨려서 펜을 잡을 수 없는 거예요. 한 아주머니가 ‘아저씨, 떨지 마세요’라고 하며 직접 자신의 이름을 적어 제게 쥐어주었어요.”

기관실에 들어와 보니 장갑이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시체를 본 것은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제가 아는 한 기관사 분은 보름 만에 두 번이나 사상사고를 겪은 적이 있어요. 두 번째 사고가 터졌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기관실 밖으로 못 나가고 주저앉아 울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심정을 이해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이면 모를까,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정기관사는 그 후 자주 끔찍한 꿈을 꾼다. 한번은 사람들이 승강장에 죽 늘어서 자신의 기차를 향해 웃으며 머리를 내밀고 있는 꿈을 꾸었다. 제동은 걸리지 않고, 눈앞에서 그들의 머리가 기차에 부딪혀 하나씩 날아갔다.

“왜 내 차에 뛰어든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큰 상처를 주는 걸까 수없이 생각했어요. 그 후에는 매순간 사고 공포에 짓눌려 살죠. 어린 학생들 중에 가끔씩 차에 뛰어들 것 같은 태도로 장난을 치는 애들이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고 화가 치밀어 올라요. 할 수만 있다면 기차를 세우고 뛰어나가 그놈을 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죠. 참을 수가 없어요. 내가 느끼는 공포는 절대 장난이 아니니까요.”

그를 정말 두렵게 하는 것은 누군가 뛰어들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매순간 출입문을 살펴야 하는 기관사는 전방에서 달려드는 사람을 못 본 채 지나칠 수 있고, 역에는 이를 막아줄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공익근무요원이 배치된 곳도 있지만, 이들은 사고가 날 경우 승객들보다도 더 무서워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잖아요. 2인 승무만 된다 해도 지하철 안전사고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역무원을 한 역에 1~2명씩 배치하면 훨씬 더 안전해질 거고요. 스크린 도어 설치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지금 논의하는 것처럼 일부 역에만 설치할 경우 사람들이 당연히 그 역을 피해서 뛰어내릴 거 아닙니까. 다 설치하는 데 드는 막대한 예산을 부담할 수 없다면 사람을 늘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왜 그것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후 9시10분. 지하철이 다시 개화산역에 도착했다. 어느새 한산해진 역에 내리는 그의 뒤에서 꼬마들이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기관사로서 그가 느끼는 보람은 이런 것이다. 어린이들이 자신을 보며 꿈을 키우는 것, 기관실 앞 창문에 붙어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 언젠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들이 자라나 ‘우리 아빠가 지하철 기관사’라며 자랑스러워할 모습을 상상하는 것.

“어린이들은 기관사를 멋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환상이 깨지죠. 저는 아이들의 상상 속에 있는 친절하고 따뜻한 기관사의 모습을 지키고 싶어요. 두려움 없이 기쁘게 일하고 싶고요. 그걸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끝났다. 그와 헤어지며 나는 사상사고를 겪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주간동아 424호 (p50~52)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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