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2004.02.26

제목만 봐선 ‘구분 불가능’ 외화도 한국영화처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2-20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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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봐선 ‘구분 불가능’  외화도 한국영화처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붙어야 산다’, ‘8명의 여인들’, ‘12명의 웬수들’, ‘머나먼 사랑’ 등. 최근 개봉되었거나 개봉을 기다리는 외국영화들이지만 한국영화보다 더 한국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제목이어서 먼저 시선을 끈다.

    한때 ‘올모스트 페이머스’, ‘미트패런츠’, ‘투마로우 네버다이’, ‘캐치미이프유캔’, ‘호메스’(프랑스어로 ‘남자들’이란 뜻의 ‘옴므’(Les hommmes)를 옮긴 것) 등 영어 제목을 무리하게라도 한글로 옮겨서 외화임을 강조하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영화 제목들은 한국영화 점유율 50% 시대를 맞아 관객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외화를 ‘일단’ 한국영화처럼 보이게 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추측. 그러나 영화 홍보사측에서는 “영화 자체가 훌륭한데 일부러 관객들을 속이려 했을 리가 있냐”는 반응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원제 Something’s Gotta Give·사진)의 홍보를 맡은 ‘올댓 시네마’의 채윤희 이사는 “원제를 발음 나는 대로 쓰기가 곤란했다”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잭 니콜슨이 나왔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문학적이고 지적인 유머가 있는 작품이라 내용과 어울리는 제목을 지었다.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에서도 아주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 Lost in Translation) 역시 ‘트랜스레이션’ 같은 유력한 제목 대신 광고 카피 같은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로서는 착각하기 쉬운 제목이기도 하다. 특히 ‘12명의 웬수들’(원제 Cheaper By The Dozen)은 한글 표기법엔 어긋나지만 ‘원수’와 애증이 담긴 상대를 칭하는 ‘웬수’의 미묘한 차이까지 고려해 붙인 제목이다. 덕분에 전형적인 한국 코미디물이 떠오른다. 실제로 영화 제목이 홍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작명일 수밖에 없다. 우리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의 작명 솜씨로 처음엔 영화사 내부에서도 직원들의 반대가 컸지만 5000만 한국민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박’용 제목임이 증명됐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억지스럽고 뜻도 이해할 수 없는 영어 발음 제목 대신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리말 영화 제목이 많아진다는 것이 반가운 변화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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