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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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 美 보건 식민지로 전락했나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2-04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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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줄을 잇는 가운데 국내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조류독감의 인체감염 조사 의뢰를 받은 미 질병예방센터(CDC)가 검사 결과에 대한 통보를 계속 미루고 있어 그 진의를 두고 온갖 억측이 무성하다. 축산 전문가들은 CDC의 검사가 계속 늦어지면 국내 축산 농가와 관련 산업이 완전히 붕괴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 자체 백신개발이 늦어져 올해 말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 사이에 유행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수의학계의 경고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국내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H5N1)가 동남아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종에 속하지만 유전자 염기서열이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며 “하지만 인체 감염 여부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는데 2월 중순이 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중순 CDC에 국내 발생 조류독감 인플루엔자의 샘플을 넘길 당시 국립보건원측은 “CDC측이 늦어도 1월 말까지 인체감염 여부를 통보해주기로 약속했다”고 공언했다. ‘1월 말’ 이라는 시점은 당시에도 동물실험 기간으로는 너무 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때문에 “미국이 광우병 소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보복을 하는 게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돌았던 게 사실.

    그런데 CDC측은 1월26일 예비통보 형식으로 유전자 분석 결과만 통보하고 동물실험 결과는 “2월 중순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CDC는 질병관리본부측의 “사정에 따라 실험 결과가 그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통보해왔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국립대 수의학과 교수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검사기관이 4곳이나 있는데 정부가 하필이면 광우병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은 CDC에 검사를 의뢰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동물검사 결과가 두 달 이상 걸린다는 해명에 대해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보건당국의 안일한 자세다. 현재 WHO에서 경고했듯 조류독감이 인간 사이에서 감염 될 가능성이 거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상태에서, 또 경험으로 미뤄 전염병이 최초 발견 시점에서 1년 후에 대대적으로 유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류독감 인체감염 실험의 국내 실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립보건원 등 보건당국은 실험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적인 기관이 많은데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측은 1월30일 “조류독감의 실험실 진단 시약의 개발과 비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조류독감의 대규모 유행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았다. 조류독감의 인체감염 여부도 자체적으로 조사할 수 없는 실정에서 인간 사이에 감염을 일으키는 변종 인플루엔자를 우리 보건당국이 제압할 수 있을까.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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