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9

2003.06.19

문학 같은 역사 … 흥미진진 1400쪽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6-12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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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같은 역사 … 흥미진진 1400쪽
    무엇 때문에, 무엇이 궁금해서, 삶의 어떤 경이에 놀라 역사가, 이야기가 생겨났을까를 상상하라! 시인 김정환의 ‘한국사 오디세이’는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역사, 등장인물의 ‘퇴장 그 후’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난해한 역사의 바다에 푹 빠졌다.

    ‘한국사 오디세이’는 그가 1996년부터 98년까지 3년 동안 집필한 ‘상상하는 한국사’(전 7권) 전면 개정판이다. 한 손으로 들기에 벅찰 만큼 묵직한 두 권짜리 개정판을 내면서 그는 ‘세계사로서의 한국사’를 그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기자조선’을 둘러싼 논쟁을 중국의 세계관-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자부하는-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는지 ‘역사의식’의 문제로 연결한다. 이때부터 이미 중국은 한국사의 가장 거대한 벽이자 후원자로 등장한다. 그래서 기자 이야기는 기자에서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다. 기원전 218년 진시황의 치세에 이르면 ‘창해역사’라는 강원도 강릉 출신의 한 장사가 등장한다. 그는 장량과 함께 폭군 진시황의 암살을 도모하지만 실패한다. 진시황 저격 시도 7년 후 진시황이 사망하자 중국은 내란에 휩싸였고 수만명의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피난을 온다. 창해역사가 누구였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창해역사와 함께 한국은 중국의 역사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이 책의 진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바다에 있다. 그는 사료와 고증이라는 부담을 짊어진 역사학자가 아니다. 아주 커다란 불덩어리(big bang)에서 시작된 지구의 역사를 10100년 암흑기까지 마음껏 확장할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원시시대라…. 그건 까마득한 옛날이지. 너무 까마득해…. 하지만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건 10개월밖에 안 되지만 그것도 까마득하지 않은가. 까마득하다는 것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그’의 탄생,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역사의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그 몇 백만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역사연구에서는 금기나 다름없는 의문부호와 말줄임표를 ‘남발’하며 시인은 죽음, 종교, 언어의 탄생과정을 마음껏 상상하고 독백한다. “이상하군….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멀쩡하게 걷던 사람이 어느 날 땅에 누워 움직이지 않는다. 발로 툭툭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과 슬픔을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일이다. 가슴 아픈 기념물로서의 무덤, 평안남도 상원군(평양) 흑우리의 검은모루는 40만~60만년 전 구석기시대의 무덤이다.

    ‘한국사 오디세이’는 신화와 건국(고대사), 삼국의 흥망과 통일(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와 발해(남북국시대), 색증시공 공즉시생(고려), 백성을 위한 나라(조선 전기), 근대로 가는 길(조선 후기), 그 후(식민지와 전쟁기 분란) 등 한국사를 크게 7시기로 나누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극본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한 독특한 서술방식이 역사를 문학이자 예술로 만든다. 여기에 한몫하는 것이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도판이다. 청동기시대의 간돌검과 같이 설명적인 도판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뜬금없는’ 도판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유화 부인(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과 금와왕의 이야기는 한 편의 짧은 연애소설처럼 긴박하게 전개된다. 질투와 절망에 빠진 금와왕이 “하느님, 마지막으로 저를 돌봐주소서. 나라를 주지 않으셨으나, 사랑은 제게 주소서”라고 외칠 때 뭉크의 그림 ‘질투’가 겹쳐진다.



    소설가 이순원씨는 시인 김정환을 가리켜 “박학다식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사 오디세이’를 음미하다 보면 역사고 언어고 문학이고 음악이고 미술이고 그만큼 아는 사람도 드물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400쪽이 넘는 ‘한국사 오디세이’의 무게감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끝없는 지적 호기심과 재기 발랄한 상상력의 힘에서 나온다.

    한국사 오디세이/ 김정환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1권 604쪽 2만5000원, 2권 796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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