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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2003 희랍극 페스티벌

별빛 아래서 ‘그리스 神’들 만나볼까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별빛 아래서 ‘그리스 神’들 만나볼까

별빛 아래서 ‘그리스 神’들 만나볼까
저녁 8시, 남산 중턱인 국립극장의 ‘하늘극장’ 위로 총총 별이 뜨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는 막 대신 초여름의 어스름이 푸른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바로 이 시각, 막 해가 진 후에 시작되었다. 야외극장인 만큼 무대장치나 조명은 변변치 않다. 날벌레들이 앵앵거리며 불빛을 찾아 날아들고 산속의 대기는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하다. 그야말로 3000여년 전 그리스 어딘가의 극장에 와 앉아 있는 것 같다.

6월6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2003 희랍극 페스티벌’은 말로만 듣던 고대 희랍극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무대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3주의 주말(금·토·일) 3일 동안 각기 ‘오이디푸스’(소포클레스 작, 연출 성준현) ‘아가멤논 가의 비극’(아이스킬로스 작, 연출 오유경), ‘메데이아’(에우리피데스 작, 연출 박재완)가 공연된다.

셰익스피어부터 아서 밀러까지, 후대의 모든 연극들은 그리스 비극을 그 원형으로 한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해 이 작품들을 극장 공간에서 실제로 본 사람은 드물다. 3000여년 전의 ‘히트작’들을 현대에 공연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긴 대사들과 웅얼대는 코러스들, 신(神)이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극의 전개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낯설기 짝이 없다.

서사적인 대사들 ‘매력 만점’

“그리스 비극들은 인간 사이의 조화, 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조화가 깨지면 파국이 온다는 교훈을 담은, 일종의 교훈극입니다. 대사도 굉장히 많아 전체 연극의 길이는 보통 3시간 가량 됩니다. 야외극장에서 공연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길기 때문에 1시간 40분 정도 내용으로 압축하기는 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 비극의 참맛을 느끼는 시간이 될 겁니다.” ‘오이디푸스’의 연출자 성준현씨의 말이다.



성씨의 말처럼, 폭포처럼 쏟아지는 서사적인 대사들은 배우에게나 관객에게나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인 듯했다. 길이는 두 번째 작품인 ‘아가멤논 가의 비극’이 2시간10분으로 가장 길다. 이 작품의 연출자인 오유경씨는 “신에게 의탁하는 인간보다도 주체적인 인간을 그릴 수 있도록 작품을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신들은 인간과 다름없이 정치적이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이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들에게 죄 사함을 받으려 하죠. 이번 ‘아가멤논 가의 비극’은 이런 신들보다는 인간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관객들이 ‘인간’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오씨의 주문이다.

마지막 작품인 ‘메데이아’는 그리스 장군 이아손과 사랑에 빠지나 그의 배신을 참지 못해 자식마저 죽이는 악녀 메데이아의 이야기. 연출자 박재완씨는 “줄거리를 보지 말고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증오의 덩어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보라”고 주문한다. “연출자 입장에서도 그리스 비극은 쉽지 않은 과제죠. 그러나 사랑이나 증오, 광기 등 그리스 비극이 담고 있는 인간의 감정들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주제들입니다”

결국 그리스 비극이 보여주는 것은 연극의 줄거리나 결말보다도 연극 그 자체, 원초적인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연극의 원형이다. 그 주제가 사랑이든 증오든 간에 그리스 비극 속에 등장하는 것은 동물에 가까운,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견 지루하지만 서사적이고 문학적인 대사들을 곱씹어보는 것도 이번 희랍극 페스티벌을 즐기는 방법일 듯싶다. 공연 시간이 저녁 8시인 만큼 긴 소매 옷과 방석 등은 ‘필수 준비물’이다.(문의 02-744-0300)





주간동아 389호 (p82~83)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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