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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도서관’ 미완성 첫걸음

기증받은 연세대, 운영 방향·리모델링 여부로 고민 … ‘자료 빼돌린다’ 주위 오해도 부담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김대중도서관’ 미완성 첫걸음

‘김대중도서관’ 미완성 첫걸음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옆에 세워진 김대중도서관. 9월에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6월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도서관(구 아태평화재단, 이하 아태재단)이 모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이날 이 건물 지하 1층 회의장에서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전인초) 주최로 하멜 표류 3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주제: 17세기 조선과 서양의 만남)가 열렸다. 연세대 김우식 총장을 비롯해 헤인 드 브리스 주한 네덜란드 대사와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관계자들은 아태재단이 김대중도서관으로 문패를 바꿔 단 후 이곳을 찾은 첫 외빈이었다.

김총장은 축사에서 “이 의미 깊은 국제학술대회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게 돼 기쁘다”며 “이 도서관은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연세대는 앞으로 이 도서관을 한국 근현대 사회와 통일문제를 연구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핵심 센터로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이름 딴 국내 첫 도서관

전시장으로 꾸며진 건물 1층 로비와 8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지하 1층 회의장은 “퇴임 후 아태재단으로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김 전 대통령의 꿈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었다. 원래 1층 로비에는 DJ의 육필원고와 각종 저서, 소장품들이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현재 유리로 된 전시공간은 텅 비어 있다.

DJ는 전 재산을 털어 이 건물을 신축하면서 연구와 저술 활동, 젊은 연구자들과의 대화로 보내는 ‘아름다운 은퇴’ 이후의 생활을 그렸을 것이다. 물론 아태재단이 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비리 의혹사건에 휩싸이기 전의 일이다.



‘김대중도서관’ 미완성 첫걸음

텅 빈 김대중도서관 1층 전시장.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사진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2월17일 연세대측은 아태재단의 건물 등 모든 재산과 소장자료를 기증받아 ‘김대중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기증 목록에는 재단 소유의 동교동 땅과 지하 3층 지상 5층 건물, 제주 북제주군 애월읍 소길리 임야 등 총 16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아태재단이 소장한 연구자료, 취임 전 DJ 관련 사료 외에 은행부채 20억원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9월 아태재단이 처음 연세대에 기증 의사를 밝힌 후 최종 수용 여부를 놓고 대학 내부에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DJ의 소장자료와 건물을 넘겨받아 ‘대통령학’의 메카로 만들자는 찬성론과, 비리 의혹이 있는 재단의 건물과 자료를 넘겨받는 일이나 DJ에게 퇴임 후 활동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대학에 부담이 된다는 반대론이 맞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건물을 평화 및 통일문제, 통치학 등 순수 학술연구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아태재단은 ‘김대중도서관’으로 거듭났다. 대통령 이름을 딴 한국 최초의 도서관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기증을 받고 20억원의 부채 변제까지 마쳤지만 대학측의 고민이 적지 않다. 김대중도서관 관장인 신동천 교수(경제학)는 “국내에서는 대통령 이름을 딴 도서관의 모델이 없어 어떤 형태로 운영할지 처음부터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세대측은 김중기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김대중도서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간 활용을 위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현재로선 1층을 전시장과 자료실로 이용하고 2층은 본격적인 도서관, 3층은 연세대 통일연구원과 현대한국학연구소 등 관련 연구기관이 사용한다는 큰 그림만 그려놓은 상태다. 4층은 DJ를 보좌하고 있는 김한정 1급 비서관(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 비서관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이 있고 5층에는 DJ 개인연구실이 자리잡고 있다.

아태재단 자료실로 사용되던 2층은 재단측이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던 지난해 4월에서 시간이 멈춰버렸다. 서가에 꽂혀 있는 2002년 4월 발행 잡지들이 사회적 비판을 의식해 황급히 철수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2층 사무실 한쪽에는 DJ 퇴임 후 청와대에서 옮겨진 이삿짐 상자 100여개가 쌓여 있다.

‘김대중도서관’ 미완성 첫걸음

김한정 비서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육필을 보여주고 있다. 6월5일 도서관 지하 1층 회의장에서 연세대 국학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 모습. 도서관 2층에서 연세대 직원들이 청와대와 구 아태재단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들을 분류하고 있다. (왼쪽부터)

DJ 개인연구실 문 굳게 닫혀 있어

사실 아태재단을 김대중도서관으로 개편하고 그곳에 각종 통치사료와 장서들을 관리한다고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민감한 자료들을 빼돌리려 한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 1만5000여 점의 각종 자료들을 분류하고 있는 연세대 중앙도서관 사서 이대형씨는 “대통령 통치사료라고 할 만한 것들은 이미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됐고, 도서관으로 넘어온 것은 대통령 취임 이전 것과 아태재단 소유의 장서들뿐”이라고 설명했다. 김한정 비서관도 도서관 건립을 전직 대통령의 업적 홍보용으로 치부하는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시 ‘공공기관의 기록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강화해 통치사료를 사사롭게 소유할 수 없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우신 분이다. 이미 재임 5년간 국정 수행 과정에서 남긴 각종 통치사료들은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됐다.”

정부기록보존소로 넘어간 DJ의 통치사료는 15만8232건으로, 정부 수립 후 50년간 누적된 역대 정부 대통령 기록물(12만956건)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비서관은 규정에 따라 통치사료를 모두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했지만 솔직히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며 서가에서 검정색 표지의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아무런 제목도 없는 겉장을 넘기니 대통령의 육필로 ‘개혁해야 산다’고 적혀 있다. 이 노트의 내용은 이 한 장이 전부였다.

“김 전 대통령께서 취임부터 퇴임까지 26권의 일기를 남기셨는데 바로 이 노트에 기록됐다. 정책에 대한 단상이나 신문을 읽거나 대화 도중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직접 메모하셨다. 자료들을 정리하다 잠깐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취임 초기 14항목으로 적어놓은 대통령의 각오 부분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건강을 다스리자,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하되 원칙을 저버리지 말자와 같은 내용이었다. 저런 각오로 하루하루를 사셨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뜻대로 되지 않으셨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내용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바란다.”

DJ측은 도서관 운영에 대해 연세대와 협의를 계속하면서 미국의 카터센터를 모델로 삼았다. 애틀랜타에 있는 카터센터는 에모리대학과 협력 관계를 맺고 평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국제 봉사활동의 근거지로서 기념관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연세대 통일연구원 원장직을 겸하고 있는 신동천 관장도 “김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평화통일의 이미지를 연구활동으로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빠르면 2004년 신학기부터 통일연구원 내 ‘통일합동과정’(석사)을 신설할 방침”이라고 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DJ가 직접 강의를 맡을 가능성도 높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5층 개인연구실의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아직도 현실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후학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경륜과 지혜를 전하고 젊은이들과 세상사를 마음껏 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은퇴’는 언제쯤 가능할까.



주간동아 389호 (p68~69)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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