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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한국화 등 551점 소장 작은 미술관 수준 … 우리 문화 예술 소개 발상의 전환을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박영율의 작품 ‘일자곡선’. 부조에 아크릴로 색을 내고 불연처리를 했다.

청와대 주인이 바뀌고 TV와 신문을 통해 청와대 동정이 자주 보도되면서 미술계에서는 대통령의 ‘사진발’을 살려주는 배경 그림이 화제다. 시원한 푸른색 바탕에 왼편으로 소나무가 살아 있는 듯 힘차게 뻗어 있는 이 그림은 청와대에서 큰 회의가 열릴 때마다 항상 등장해 시선을 끄는 작품.

이 작품이 미술계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은 첫번째 이유는 이 대작이 내로라하는 대가의 작품이 아니라, 뜻밖에 조용히 소나무만을 그려온 비교적 젊은 작가 박영율(46)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소나무 그림 ‘일자곡선’(3×4.5m)이 걸린 자리에 2001년 7월까지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민화 ‘일월곤륜도’가 걸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처음 걸린 ‘일월곤륜도’는 조선시대에 왕이 행차하는 곳마다 옮겨지던 그림으로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란 논란을 빚어 커튼 뒤로 모습을 감췄다가 김대중 정권 말기에 사라졌다. ‘조용히’ 그림을 바꿨기 때문인지 ‘일자곡선’이 청와대로 간 것은 노무현 정권 출범 이전이지만 새 대통령과 함께 최근에야 자주 TV에 등장하게 됐다.

작가와 소장 경로는 1급 비밀?

“청와대에서 소나무가 그려진 그림이 좋겠다고 의뢰를 해왔습니다. 소나무를 주로 그리는 작가들을 다 찾아다닌 것 같더군요. 일자와 곡선의 통합이라는 작품 의미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대통령과 키가 비슷한 사람을 세워놓고 그렸는데 막상 회의실에 걸고 보니, 폭포가 (대통령)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아 현장에서 수정한 것과 표면을 불연처리해달라고 요구해와 그렇게 한 것을 빼면, 특별히 신경 쓴 것은 없어요.”(박영율)



한국 민화의 대가 송규태가 그린 ‘일월곤륜도’와 소장 화가 박영율의 ‘일자곡선’, 청와대를 대표하는 두 작품은 청와대의 미술품 컬렉션이 상당히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청와대측은 최근 소장작을 묻는 기자에게 “2003년 5월 현재 한국화 134점, 서양화 110점, 도자기 157점 등을 포함해 모두 551점의 미술품이 있으며 21점은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규모는 양으로 볼 때 작은 미술관 수준. 그러나 작품과 작가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해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이 어떻게 수집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컬렉션에 관여한 화랑과 작가들을 통해 나온 이야기가 미술계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창고에 쌓여 있던 그림들에 대해 정리와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 말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오늘날 청와대 총무비서실에 해당하는 부처 등에서 몇몇 미술계 인사들과 고미술 전문가들에게 ‘창고’를 보여주고 손상된 작품을 보수하기 시작했다는 것.

옛 청와대(구관)는 공간 자체가 워낙 협소해 소품들이 몇 점 걸려 있는 정도. 드물게 국전 수상작을 구입하기도 했으나 별도의 미술품 구입용 예산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미술품 관리에 참여했던 한 화랑 관계자는 “뛰어난 작품은 거의 없었는데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와 겸재 정선의 ‘도산서원도’가 눈에 확 띄었다. 그후 ‘도산서원도’는 몇몇 사람들이 수년간 일반인들이 볼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한 끝에 전두환 정권 시절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1990년까지 청와대에 있는 것이 확인된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는 청전이 가장 필력이 좋은 시기에 드물게 황금색의 가을 산수를 그린 걸작으로 수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청와대 컬렉션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청와대 컬렉션을 이룬 작품들. 민화작가 송규태의 ‘십장생’병풍. 유산 민경갑의 ‘설경’. 청와대 컬렉션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왼쪽부터 시계방향)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는 청남대와 상춘재를 지으며 약간의 미술품을 구입했으나 대통령이 서예에 관심을 가졌을 뿐 미술품 구입 관리자들도 특별한 취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자문을 요청받았던 인사는 “추천작으로 추상화와 구상화 사진을 반씩 섞어 청와대 담당자에게 건네줬었는데, 며칠 후 다시 만나니 추상화 사진은 다 없애버렸더라”며 쓰게 웃었다.

역대 정권에서 미술품을 가장 많이 구입한 때는 대통령 관저(1990)와 청와대 신관(1991)을 신축한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집기’로 미술품을 구입했으나 처음으로 자문회의가 운영돼 홍익대 H교수 등이 활동했다. 이 시기에 청와대에 들어간 그림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본관과 관저에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구입 별도 예산 없어

본관 1층 왼쪽에는 조선시대 어가행렬도를 재현한 유양옥의 대작 ‘행차도’가, 오른쪽에는 김식이 고구려 무용총을 모사한 ‘수렵도’가 걸려 있고, 대회의실 입구에는 회의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뜻을 크게 품으라고 경계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월전 장우성의 ‘군학도’가 걸려 있다.

대식당인 ‘충무실’ 동쪽에는 연회 장면을 그린 ‘진연도’(이병숙 작) 병풍이 놓여 있고, 운보 김기창의 ‘산수’와 산정 서세옥의 ‘백두산 천지도’가 마주 보고 있으며, 접견실에는 민화작가 나정태의 ‘십장생도’가, 대기실에는 유산 민경갑의 ‘설경’이 디스플레이됐다. 당시 작품을 낸 작가들은 예외 없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대가들이다. 본관에 왕궁에 설치했던 드므(넓적한 독으로 여기에 물을 담아놓으면 악귀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도망간다고 한다)를 놓는 등 건축물의 모델을 ‘왕궁’으로 삼은 것을 본다면 상식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중 많이 알려진 것은 나정태의 ‘십장생도’로 일본 고이즈미 총리 등 귀빈들이 청와대를 방문할 때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황금빛 민화다.

청와대 신축 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인 등을 초청해 새 집을 보여주었는데 이 자리에서 ‘수렵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 작품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잘 표현하고 있으나 원본이 무용총, 즉 무덤에 있는 그림이므로 청와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노 전 대통령은 불쾌하게 생각하여 이를 곧바로 철거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의 본관 사진에 언뜻 ‘수렵도’가 보인다. 이 그림의 본관 존재 여부에 대해 청와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도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양띠(31년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석방되자 양그림을 선물하려다 ‘속죄양’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로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준공된 청와대 본관 1층 오른쪽에는 ‘수렵도’가, 왼쪽에는 ‘행차도’가 있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그림을 둘러싼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청전의 또 다른 걸작 ‘춘하추동’ 연작은 KBS에서 빌려온 것으로,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자 KBS노조 등에서 이 작품의 ‘반납’을 요구했다. 결국 이 작품은 현재 청와대를 떠나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전임자의 취향과 현직 대통령의 종교적 취향이 크게 마찰을 빚은 시기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까닭에 청와대 불상 철거설이 나돌아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 송규태의 ‘연화도’ 등 불교적 상징물이 그려진 그림들이 창고로 보내졌다가 김대중(DJ) 정부 시절 다시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그림의 교체가 직접적인 YS의 뜻이었는지 아랫사람들의 배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그림을 관리했던 인사는 “우리가 처음 청와대에 있는 그림들을 일일이 조사해 체계적인 목록을 만들었다”며 “그 전에는 대통령 개인 소장품과 청와대 컬렉션이 ‘혼동’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 현정부 총무비서실에서도 “미술품 목록은 문민정부 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전에도 수기 형태의 작품목록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어, 작품목록이 존재했으나 그것이 문민정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경우든 분명한 것은 최근까지 청와대의 미술품들은 매우 ‘허술하게’ 관리돼왔다는 사실이다.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 미술품 기록 전산화가 이뤄지고 대형 상업화랑들이 청와대 미술품 디스플레이에 참여하면서 청와대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 시기에 디스플레이를 맡았던 한 화랑 대표는 “청와대는 인테리어가 너무 강렬해서 전시에 적당한 공간이 아니다. 웬만한 미술품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젊지만 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들어갔는데 상당히 잘 어울렸다”고 기억했다.

폐쇄성 여전 미술품 의혹만 키워

특히 DJ가 추상화를 선호해 처음으로 추상화가 많이 늘어났고 금강산 사업이 추진되면서 송필용 등 금강산을 소재로 한 작가들이 환영받아 DJ 집무실을 차지했다. 반면 이희호 여사는 꽃을 좋아해 이여사가 쓰는 방에는 꽃그림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또 다른 화랑계 인사는 이런 에피소드를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생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비서팀에서 빨간색이 많은 그림은 다 치우라고 하더군요.”

청와대에 미술품 구입용 예산이 별도로 책정된 적이 없었고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에 그림을 빌려준 화랑들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작품가격의 2%를 1년치 대여료로 받는다. 작가와 화랑들은 “이제 청와대도 국내 작가 지원 차원에서 작품을 구입할 때가 아니냐”고 하지만, 청와대측은 “청와대에 작품이 걸린 작가라는 점을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기증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나는 보고 싶다 ‘청와대 컬렉션’

‘연화도’(왼쪽)는 불교적 상징물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일월곤륜도’는 왕정을 상징한다고 해서 청와대에서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예상과는 달리 청와대가 소장한 작품을 그린 작가들은 대개 이런 사실을 알리기를 꺼려했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청와대의 작품 소장 경로가 불분명한 경우 예상치 못한 사건에 연루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 동양화가는 “예전에 한 기업가가 구입한 그림이 청와대에 있는 것을 TV를 보고 알았다. 어떻게 해서 그 작품이 청와대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은 작품이 청와대에 소장됐다는 사실 자체가 ‘어용작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차례 감사패를 받았다는 한 미술계 인사는 그런 사실도 숨긴다고 말한다.

청와대의 미술작품 소장 목적이 청와대를 방문하는 국내외 귀빈에게 다양한 우리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데 있다면, 작품과 소장 경위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소장품과 관리체계가 공개된다면 현재 ‘보존상의 이유’를 들어 작품 임대를 거부하고 있는 외부기관들에서 작품을 빌려와 청와대 국빈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정부에서도 여전한 청와대의 ‘폐쇄성’은 미술품과 관련한 의혹을 키울 뿐 아니라 청와대를 ‘전근대적인 제왕적 통치의 산실로 인식’(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하게 할 뿐이다.

백악관의 경우 대부분 정원 관람으로 채워진 청와대 견학 코스와 달리 건물 내부를 일반인들이 구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홈페이지를 통해 소장한 미술작품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고 설명을 붙여놓아 누구나 백악관 컬렉션을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간동아 389호 (p64~66)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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