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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지금 떨고 있다

전체 60% 여름철 자연재해 무방비 노출 … 장마 닥치기 전 보호대책 서둘러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문화재’는 지금 떨고 있다

‘문화재’는 지금 떨고 있다

2002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루사’는 여러 문화재에 큰 피해를 주었다. 강원도 강릉시의 신복사지는 사찰터 전체가 토사에 매몰돼 보물 제84호인 신복사지 석불좌상(왼쪽)과 보물 제87호 신복사지 3층 석탑까지 훼손됐다.

5월15일 일어난 국립 공주박물관 국보 도난사건은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 실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국보가 전문 도굴꾼도 아닌 한낱 좀도둑의 손에 의해 어이없이 유출됐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흐른 지금 과연 우리 문화재는 안전해졌을까.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다’다. 특히 폭우와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여름철에 들어서면서 문화재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이 같은 지적은 감사원이 4월23일 ‘자연재해 대비 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상돼왔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를 조사한 결과 전체 8478건 가운데 60%가 넘는 5871건의 문화재가 ‘자연재해시 피해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난 것. 또 지난해 여름 전국을 강타한 태풍 ‘루사’로 피해를 본 문화재의 복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산성 곳곳서 ‘성벽 배부름’

실제로 6월6일 경기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성벽이 붕괴되기 전 증상인 ‘성벽 배부름’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남한산성 동문에서 제2 남옹성 방향으로 500m 정도 지점에서 약 800m에 이르는 구간은 성벽 배부름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성벽 틈 곳곳에서 나무가 자라나 폭우시 붕괴의 위험마저 느껴졌다. 동문에서 장경사 방향 300m 지점의 배수시설은 성곽의 물구멍과 연결된 집수정이 좁은 데다 이물질로 막혀 있어 큰비가 내릴 경우 물이 제대로 빠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동문 밖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남한산성의 외성으로 정조 3년인 1779년 지어진 한봉성의 상태는 이보다 더 심각했다. 여기저기 성벽 배부름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본성과 달리 보수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올 여름이 여느 해보다 집중 호우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5월27일 기상청이 발표한 여름철(6∼8월) 기상예보에 따르면 올 여름 우리나라에는 여러 차례 폭우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달 하순부터 시작되는 장마는 한 달 가량 계속될 것으로 보이고, 8월에는 2, 3차례 집중 호우가 예상된다. 태풍은 평년(11.2개)보다 적게 발생하지만 태평양의 고수온 현상으로 강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은 오히려 높다. 철저한 재난 대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난해 태풍 ‘루사’ 때의 피해가 되풀이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태풍 ‘루사’는 일반 국민들에게뿐 아니라 문화재에게도 ‘재난’이었다. 수령 300년, 높이 19m에 이르던 경북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왕버드나무(천연기념물 제297호)가 뿌리째 뽑혔고 부산 금정산 생지봉에 있는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의 제1망루가 무너져 내렸다. 이밖에도 강원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3층 석탑(보물 제87호) 등 전국에서 문화재 피해를 본 사례가 132건에 달했다. 이 같은 피해가 충분히 보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이 흐른 지금, 문화재들은 여전히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문화재’는 지금 떨고 있다

사적 제57호인 남한산성은 ‘성벽 배부름’ 현상과 생물 훼손 등으로 일부 구역이 ‘붕괴 위험’ 판정을 받았다.

남한산성뿐 아니라 경남 거제시 사등면의 사등성(경남지방기념물 제9호),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사적 제302호) 등도 폭우시 성벽 훼손이나 붕괴 위험이 큰 상태다. 특히 사등성의 경우 지역주민들이 성벽과 맞닿은 부분에서 논을 경작하거나 성벽 위에서 채소 등을 재배하고 있어 훼손과 파괴의 우려가 높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 담이 붕괴됐던 경북 상주시 화동면 어만각(향토 유적)의 피해 원인이 지역주민들이 문화재 앞에까지 농로를 높게 조성해 물이 어만각으로 직접 흐른 것이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현상은 심각한 문제다. 경북 김천시 조마면 금릉 신안동 석불입상(경북문화재자료 제191호), 경북 상주시 함창읍 고령가야왕릉(경북지방기념물 제26호) 등 지난해 ‘루사’의 피해로 보호각 기단이나 담 등이 붕괴된 6곳의 피해 원인도 대부분 문화재 주변 환경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럼에도 문화재 담당자들의 현실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수준이다. 거제시의 사등성 관리 담당자는 “농민들이 성벽과 맞닿은 부분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가 있어 일단 50cm 이상씩 떨어지게 했다”며 “지난 수해 때 성벽의 일부가 무너진 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 초 사등성을 점검한 감사원 담당자가 ‘성벽 훼손 및 파괴 우려’라는 감사 소견을 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낙안읍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곳 담당자 역시 “올해 나타난 성벽의 문제점은 2004년 새 예산이 책정돼야만 고칠 수 있다”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새 성벽이 붕괴하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인데 위험하면 바로 말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동문 남측 50m 지점 등 3곳의 성벽 배부름 현상으로 폭우시 붕괴가 우려된다’는 것이 이곳을 감사한 감사원의 소견이었다. 이곳 담당자 역시 감사원이 낙안읍성을 감사하고 ‘위험’ 판정을 내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예산 부족·위험성 인식도 희박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 후 전국 지자체(지방자치단체)에 결과를 통보해 올 여름 방재 업무에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지만, 일선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남한산성 문화재 담당자는 남한산성의 일부 구간이 위험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최근 꾸준히 보수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모든 위험요인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일단은 남한산성 본성 가운데 예산이 집행된 위험 지역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자연재해 위험에 무방비로 방치된 이유 중 하나로 이 같은 ‘예산 확보’의 문제를 지적한다. 문화재 보수 정비사업은 대부분 문화재가 훼손된 후 추진되는 것으로 현행법상 문화재청이 국고 보조 예산을 확정, 집행하고 문화재 보수정비사업 설계를 승인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 현재의 절차에 따를 경우 지자체는 국고 보조 예산을 신청한 후 1년이 지나야 보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문화재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자연재해 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 지침’은 문화재와 그 보호구역 내 시설의 복구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소관으로 규정해놓았지만 문화재에 직접적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재해 위험시설이 보호구역 밖에 있을 경우 이곳의 피해 조사 및 복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북 성주군의 영보재(경북문화재자료 제280호)의 경우 지난해 태풍 ‘루사’로 계곡물이 넘쳐 담이 붕괴되는 피해를 보았음에도 문화재 보호구역 밖이라는 이유로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올 여름 또다시 같은 위험에 방치돼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다시는 완벽히 복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재가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파괴되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전보삼 회장(신구대 교수)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되기 전에 문화재 복구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등 문화재 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며 “당장 올 장마가 오기 전 위험 문화재 보호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389호 (p44~4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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