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9

2003.06.19

강남·서초·송파는 ‘이기주의區’

재정자립도 높은 만큼 목소리 크고 요구사항 많아 … 자치구도 서울시와 ‘힘겨루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6-11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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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서초·송파는 ‘이기주의區’

    서울시와 강남구가 강남구 개포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2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실. 정부가 8월9일 발표한 ‘주택 시장 안정대책’으로 인해 재건축에 제동이 걸린 터라 조합원들은 “왜 우리만 콕 찍어서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며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재건축 성사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강남구청장이 개발론자인 만큼 결국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거품 논란을 일으키며 6억원 안팎에서 거래되던 은마아파트 34평형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세가 계속 올라 올 5월엔 7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결국 주민들의 분석대로 시장이 움직였던 셈이다.

    6월5일 다시 찾은 재건축조합 사무실은 10개월 전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서울시가 은마아파트 재건축 불가 입장을 연거푸 천명하면서 재건축 청사진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31동에 내걸린 플래카드엔 주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전사고 나면 강남구청이 책임져라!” 박대식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장(52)은 “강남구청장이 약속했으니 법이 바뀌기 전까지(7월1일) 구청장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구청장이 주민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재건축 무산으로 인한 실망감과 분노를 강남구에 쏟아내고 있지만, 구청으로선 주민들의 이런 반응이 억울할 듯하다. 강남구가 그동안 주민들을 대신해 서울시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해왔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상가 E공인중개사 대표 K씨는 “강남구청장은 재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강남구는 끝까지 재건축 실현을 위해 서울시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면피는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강남구 나름의 논리”

    강남구는 최근 ‘은마아파트를 위해’ 서울시의 재건축 규제 방침에도 안전진단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었다.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위원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고쳐 은마아파트가 6월중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도록 정지작업에 나선 것. 강남구 관계자는 “노후아파트가 재건축되지 않으면 강남지역이 슬럼화할 것”이라며 “서울시에 서울시의 논리가 있듯이 강남구에는 강남구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말했다.



    7월1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시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강남구가 특정 아파트의 졸속 안전진단을 위해 겨우 한 달 동안 시행될 조례를 만든 셈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시행되면 용적률이 제한되고 안전진단 통과 요건이 강화돼 재건축 메리트가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단지는 7월1일 이전에 안전진단을 받아야 주민들이 과거와 같은 재건축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강남구의 이런 움직임에 서울시가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는 “강남구 조례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고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는 정부와 서울시 정책에 배치된다”며 “7월1일부터 새로운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시적 조례를 제정한 것은 공익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또 “6월 말에 폐지해야 할 조례를 만든 것은 투기심리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강남구를 비난했다.

    이후 서울시와 강남구의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강남구 조례는 다수결 등 의결 방식에서 위법이다”(서울시) “만장일치 운운하는데 여기가 무슨 UN 안보리냐?”(강남구) 서울시는 결국 강남구에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강남구의회에 관련 조례의 재의를 요구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가 다시 “서울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반발하자, 서울시는 “공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행동하느냐, 강남구청장이라고 강남구만 보느냐”고 꼬집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싼 서울시와 강남구의 불협화음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강남구가 서울시의 조례 재의 지시를 받아들여 겉으로는 조례를 둘러싼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재건축 문제에 대해 강남구와 서울시는 여전히 평행선을 걷고 있다. “부동산값 안정을 위해선 재건축을 통해 공급을 늘리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강남구)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절대 없다.”(서울시)

    강남·서초·송파는 ‘이기주의區’

    가동률이 20%대에 불과한 강남 쓰레기소각장.2001년 열린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반대 집회. 서울시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굴복, 당초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아래).

    강남구가 서울시의 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지방자치법 159조에 따라 서울시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조례가 다시 통과되더라도 지구 단위 계획에 대해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재건축을 무산시킨다는 방침이지만, 강남구의회가 다시 조례안을 통과시킬 경우 조례를 둘러싼 예의 힘겨루기가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을 용이하게 하고자 ‘은마아파트를 위한’ 조례를 만든 강남구의 경우는 서울시가 강남지역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와 이를 비호하는 듯한 자치구의 움직임에 골머리를 앓는 사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재건축이 허용될 경우 강남지역의 다른 중층(10∼15층) 아파트들이 잇따라 재건축을 요구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은마아파트 재건축 문제는 구청의 판단만으로 결정해서 좋을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가 광역자치단체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는 법도 없다. 경기대 김익식 교수(행정학·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는 “집단이기주의의 경우엔 문제가 되겠지만 기초자치단체 주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광역자치단체의 정책에 기초자치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구를 비롯해 서초구 송파구 등 재정자립도가 높은 강남지역 3개 구의 집단이기주의는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강남구 개포동 H아파트 주민 1000여명이 아파트 주변 서울시 체비지에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에 “주변환경이 나빠진다”며 시의회에 반대청원을 제출하는가 하면, 강남구 일원동 쓰레기소각장의 경우 주민들이 인접구의 쓰레기 반입을 막아 가동률이 20% 선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H아파트 인근에 세워질 임대아파트는 H아파트의 6분의 1 규모로 주민들은 ‘교통대란’ ‘환경파괴’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지만 속셈은 빈곤층이 개포동에 진입해 ‘물이 흐려지는’ 것과 그로 인한 집값 하락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1000억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건설한 강남쓰레기소각장은 하루 900t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겨우 200여t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외 지역의 쓰레기는 반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역화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 가동률을 높일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소각장 하나로 3~4개 구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데 1000억원을 들여 만든 소각장을 놀려서야 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은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서울시가 사실상 ‘굴복’한 사례다. 2000년 7월 부지가 확정된 원지동 추모공원엔 2004년까지 화장로 20기와 납골당 5만위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 초기 서울시는 서초구의 반대로 그린벨트 내 추모공원 건립이 어렵게 되자 그린벨트를 풀어 구청장의 허가 권한을 무산시키는 등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갈등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사업이 장기간 지연돼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7월 중 소송 결과가 나오면 하반기 내에 착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이것도 불투명하다.

    강남·서초·송파는 ‘이기주의區’

    강남구 도곡동 도곡주공아파트 전경.5·2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현재 서울시는 주민들과 서초구의 주장을 수용해 당초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서울시는 서초구에 대형병원 건립을 전제로 화장로 5~6기를 착공하고 추후 11기까지 늘리자고 제안했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자치구의 부지를 물색하고 우선 화장로부터 착공하겠다는 것. 그러나 서초구의 입장은 또 다르다. 서초구 관계자는 “화장로를 짓는 것은 일단 양보했으니 먼저 병원부터 완공한 뒤 그때 가서 부속시설로 화장로를 건설해도 늦지 않다”며 “가뜩이나 교통체증이 심한 강남지역에 추모공원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고 말했다.

    강남지역 자치구들의 지역이기주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초구와 송파구는 최근 정부의 ‘고급아파트 중과세 방안’을 전면 거부키로 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아파트 재산세는 보유분에 대한 과세여서 조세 저항이 크다”며 “재산세 과표를 산출할 때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의 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재산세가 30% 이상 오르는 아파트가 나오는 등 주민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주장했다. 행자부는 국세청 기준시가 3억원 이상인 아파트에 대해 적용하는 과표가산율을 2~19%에서 4~30%로 올리기로 하고 고급아파트가 많은 강남 서초 송파구에 지침을 따르도록 지시했었다.

    결국 서초·송파구청장이 납세자이자 유권자인 주민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조세전문가들은 “과세권을 갖고 있는 구청장이 중과세 방안을 거부한 것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다만 지침을 수용한 강남구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부동산값 오름세를 막기 위해 종합토지세(이하 종토세)의 과표적용 비율을 3%포인트 올리기로 한 것도 강남지역 3개 자치구가 협조하지 않으면 ‘투기억제’ 등 당초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자치구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정부는 종토세를 지방세로 유지해 지자체의 세원으로 하되 과표 결정권만은 행자부나 국세청이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강남·서초· 송파구 등 이른바 ‘빅3구’의 님비(NIMBY) 현상은 앞으로 어느 기초자치단체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정부와 광역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정부와 기초자치단체 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대 김익식 교수는 “정부와 각 자치단체의 갈등, 자치단체 간 갈등이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전무하다시피 한 정부(정부 및 자치정부) 간 이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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