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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피부인가 도화지인가‘문신 열풍’

조폭 전유물 옛말, 패션 인식 새 바람 … ‘안정환 효과’까지 겹쳐 음지의 시술자들 성업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피부인가 도화지인가‘문신 열풍’

피부인가 도화지인가‘문신 열풍’
6월4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구로구 오류동 무허가 K문신시술소. 이 시술소 사장 고모씨(41)의 휴대전화(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유선전화는 설치하지 않았다) 벨이 연신 울렸다. 전화를 받느라 귀가 먹먹할 정도지만 고씨는 요즘 ‘입이 귀에 걸렸다.’ 문신 시술을 원하는 고객의 문의전화가 며칠 사이에 크게 늘어났기 때문.

고씨는 ‘문신 열기’가 5월31일 축구 한·일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골 셀리브레이션’을 하면서 윗옷을 벗어젖히고 문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정환의 오른쪽 어깨에는 십자가가, 왼쪽 어깨에는 ‘혜원 러브 포에버(HYEWON LOVE FOREVER)’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마디로 폭발적인 반응입니다. 안정환 선수에게 로열티라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실제로 문신을 원하는 이들 중에 “안정환 선수 때문에 문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K문신 사이트에서 한 네티즌은 “지금 하면 안정환 선수 따라 한다는 얘기 들을까봐 나중에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너무 하고 싶어서 문의한다”며 담뱃갑 절반 크기의 문신을 하는 데 드는 비용과 해주는 곳, 그리고 문신으로 인한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묻기도 했다.

오전 11시께 말쑥한 외모의 자영업자 권모씨(29)가 고씨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K시술소를 발견하고 고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한 뒤 이날 시술을 받기로 했던 터였다. 그는 10대 후반에 친구들이 새겨준 어깨문신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아 치부처럼 여겨왔다고 한다. 그 문신 위에 다시 담뱃값 크기의 기하학적인 트라이벌(tribal) 문양을 덧씌우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가격은 30만원.



“함께 사업하는 아버지가 문신이 멋지게 나왔다고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있던 문신을 지우고 싶었는데 지우는 비용이 문신하는 비용의 두 배나 들어 차라리 덧씌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여기에 왔는데 모양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이렇듯 그동안 폭력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문신이 일반인들의 기호품으로 바뀌고 있다. 문신 붐이 안정환 선수로 인해 촉발된 듯한 면도 있지만 사실 더 큰 원인은 지난해 월드컵이었다. 몸에 페인팅이나 문신하는 것을 꺼려왔던 우리 사회에 월드컵을 계기로 그 터부가 깨진 것. 당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에 스티커형 문신을 붙이거나, 태극 문양의 보디 페인팅을 하는 것이 유행했다. 식물성 염료를 사용해 열흘 정도 지속되는 ‘헤너(henna)’ 문신 등이 인기를 끌었고, 자연스레 영구 문신을 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피부인가 도화지인가‘문신 열풍’

한 문신시술소의 시술 장면. 왼쪽 사람은 전신에 문신을 새겨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입어야 하지만 문신을 자랑스러워했다(왼쪽). 6월5일 한 피부미용업체가 인체에 무해하고 열흘 뒤 지워지는 착색제 ‘프라노’를 이용한 문신 시연회를 열었다.

K시술소를 찾는 이들 중 폭력배와 일반인의 비율은 3대 7 정도. 폭력배들은 남을 위협하기 위해, 그리고 새길 때의 고통을 참으며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해 문신을 한다고 한다. 반면 일반인들은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또는 호기심으로 문신을 한다. 때문에 신선한 느낌을 찾는 젊은 부부나 연인, 개성을 중시하는 남녀들이 문신시술소를 찾는 고객의 주를 이룬다. 유명인 가운데도 문신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데 심지어 모 현역 국회의원도 문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는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들도 한몫한다. 가수 구준엽이나 베이비복스 등이 팔과 등의 영구 문신을 선보였고, 지난해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주인공 신은경이 헤너 문신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올해는 김민종 김정은이 주연한 영화 ‘나비’에서 사랑의 징표로 가슴에 나비 문양의 문신을 새기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지워지는 패션문신 ‘최고 인기’

해외 스타들의 경우 문신하는 일이 보다 흔하다. 스무 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했던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빌리 봅 손튼은 서로의 몸에 상대의 이름을 새겼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베컴은 아내 빅토리아와 큰아들 브루클린의 이름, 자신의 등번호 7 등을 왼쪽 팔뚝, 허리, 등 한가운데에 새겼다.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마라도나와 후안 베론은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의 형상을, 미국 프로농구계의 악동 로드맨은 이글거리는 태양 문양을 새겨넣었다.

6월5일 오후 5시 서울 동대문 패션상가 ‘두타’ 앞.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답게 그동안 옷 속에 감춰뒀던 어깨나 몸의 문신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팔에 우표 크기만한 문신을 한 회사원 박정숙씨(26)는 “이전에는 문신이 조폭을 연상케 했지만 요즘엔 주변에서 패션의 일종으로 문신을 한 이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팔에 향로 모양의 문신을 새긴 회사원 김아림씨(22)도 “안정환 선수 때문에 문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이전에는 문신이 연예인들처럼 육체가 중요한 이들이 향유하는 이색적인 취향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젠 문신 새기는 게 옷 입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밝혔다.

마침 열린 피부미용업체인 ‘크리슈나 코스메틱’이 주최한 패션문신 무료 시연회장 앞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노 아트’라고 불리는 이 문신은 식물성 염료를 이용해 한 번 그리면 열흘 정도 지속되다가 자연스럽게 지워지는 것으로 패션용으로 호기심을 갖고는 있지만 영구 문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섣불리 문신을 새기지 못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보였다. 가격은 문신의 크기와 문양에 따라 2만5000~3만5000원대. 이는 지난해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헤너 문신과 비슷하지만 그 원료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원료들은 정식 통관 절차를 밟지 않고 보따리상들을 통해 수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인체 유해성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피해를 보는 이도 적지 않다.

피부 진피층 깊숙이 색소를 주입하는 영구 문신은 문양에 따라 ‘트라이벌’ ‘이레즈미(入れ墨)’ 등으로 나뉜다. 트라이벌은 남태평양에 흩어져 사는 부족들이 사용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느낌이어서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레즈미 문양은 수호지 등 옛 이야기책에서 따온 그림들이 대부분. 용이나 ‘108무사도’ ‘백귀도’ 등 위협적인 그림들이 대부분이지만 여기에는 스스로를 수호하고 자신을 시험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폭력배들이 ‘이레즈미’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문신에 사용되는 원료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잉크 연탄재 먹물 등을 이용한 검은색 문신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황화수은을 이용해 붉은색을 내거나 코발트로 푸른색, 티타늄 바륨으로 흰색, 카드뮴으로 노란색을 내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도구인 바늘의 경우 요즘은 전동머신을 이용하기 때문에 손바늘을 사용하던 이전보다 시술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

남성들은 팔이나 어깨에 용이나 트라이벌 문양 등을 새기는 것을 좋아하고, 여성들의 경우 나비 문양을 특히 선호한다.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가져와서 그대로 새겨달라고 주문하는 이들도 많다.

문신의 가격이나 시술 시간은 도안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폭력배들이 자주 하는 등 전체 문신의 경우 150만~350만원 정도 들고, 시술도 한 번에 조금씩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 가까이 걸린다. K시술소의 고씨는 17살 때 친구 대여섯 명과 의리를 지키자는 뜻에서 어깨에 조그맣게 문신을 새긴 게 처음이었고, 이후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던 24살 때 1년에 걸쳐 전신 문신을 했다고 한다.

의사 외 문신 시술은 모두 ‘불법’

문신기술자들은 스스로를 ‘타투이스트(tattooist)’라고 부른다. 타투란 타히티어로 문신이란 뜻으로 타히티에서는 문신이 하나의 주술적인 의식이었다고 한다. 기술자들이 그런 의미를 부여해 자긍심을 가지려 하는 것. 이들은 또한 자신이 ‘남의 몸에 혼을 불어넣어주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문신을 시술해주는 것을 ‘그림을 판다’고 표현한다. 또 문신을 ‘시술한다’고 표현하는 대신 ‘새긴다’거나 ‘작업한다’고 말한다. ‘시술’이라는 말 속에는 의료법을 어기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

미국 등 몇몇 나라들에서는 문신 시술을 교육하는 기관이 있어 이곳을 수료하거나 자격증을 따면 합법적으로 문신을 시술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술자들은 대부분 독학으로 문신을 배우고 있다. 실력 있는 시술자들은 자존심이 세고 기술을 전수하기를 꺼려 제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에서부터 문신 시술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K시술소 실장인 김모씨(38)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배우려고 했는데 제대로 가르쳐주지는 않고 욕만 했다”며 “독학을 결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시술소에 정착해 시술하고 있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40여명 안팎. 나머지 300여명의 시술자 대부분은 몇 명의 손님을 모아두고 출장 서비스를 하는 ‘뜨쟁이’ 들이다.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과 동두천시 보산동 일대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70년대부터 시술을 해온 20여곳의 문신시술소는 지금도 성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신을 시술하거나 문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전국적으로 집계하기는 쉽지 않지만 빠르게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신 관련 웹사이트나 동호회 카페도 100여개가 넘는다.

어떤 기술자들은 시술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알고 있지만 “표피에 하면 불법이 아니다”라든가 “마취제 대신 바셀린을 바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등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표피는 그 두께가 0.04~0.1mm 정도로 얇아서 문신을 위한 색소 주입이 불가능하고 설령 표피에 색소를 주입했다 해도 표피는 1개월을 주기로 재생되기 때문에 영구 문신이 될 수 없다는 게 의사들의 견해다. 또한 마취제를 쓰든 쓰지 않든, 대가를 받든 받지 않든 문신 시술 자체는 불법이다.

문신을 시술하고 돈을 받지 않을 경우 의료법 위반(무면허)이 되고, 돈을 받을 경우 보건범죄특별단속법 위반이 된다. 따라서 합법적인 문신 시술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에서나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신을 시술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의 문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무허가업자들이 활개칠 수밖에 없다. K시술소 역시 무허가지만 시술 도구 수입 등을 목적으로 무역회사로 등록해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의사들도 많다. 안규중 건국대 의대 민중병원 피부과 교수는 “영구 문신은 색소가 피부 깊숙이 침투하게 되므로 인체가 독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가려움증이나 질병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며 “번거롭더라도 화장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눈썹 문신이나 입술 문신 등 반영구화장이라고 불리는 문신 역시 진피에 화장용 색소를 넣어 화장 효과를 내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문신 후유증으로 피부염, 흉터, 육아종이 생겨 피부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최근 경찰은 무면허시술자와 미용업자들을 무더기로 적발하기도 했다.

안교수는 외국의 경우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문신을 시술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인은 한국의 법논리를 따라야 한다”며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는 일은 의사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술 방법 자체의 난이도를 떠나 인체에 예기치 않은 반응이나 영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술 행위 자체만 익히는 기술자들이 아니라 종합적인 인체 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들이 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요는 넘쳐나고 공급은 부족해 기술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시술받는 이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문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문신이 대중의 기호품으로 떠오른 마당에 이를 공론화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문신을 뒷받침할 만한 제도적 장치, 즉 문신에 대한 보건 의료 기준이나 문신면허제 등을 도입해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신업자들도 요즘이 문신을 공론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W문신 실장 박모씨(40)는 “정부가 문신을 미용예술 분야의 하나로 인정해서 관리감독한다면 위생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며 “그래야 타투이스트들도 합법적으로 영업하고 선의의 피해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 이중 잣대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문신동호인협의회 유동화씨는 “문신을 해주는 이는 처벌하고, 문신을 받는 이에 대해서는 처벌기준이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시장을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신 열풍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문신은 우리 사회 주류에 편입되기에는 거리가 있는 하나의 ‘터부’다. 외국에서는 문신 관련 세계대회도 열리는 등 문신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문신은 아직 금기 대상이다.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은 금기였다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식이 바뀐 동성애, 누드, 동성동본 결혼 등처럼 문신이 개방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주간동아 389호 (p36~39)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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