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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386의 빛과 그림자

내년 총선 386 잔치 벌어지나

‘국민의 힘’ 이끌고 밀며 참여민주주의 체험 … ‘젊은 피 수혈’ 아닌 정치 주역 가능성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내년 총선 386 잔치 벌어지나

내년 총선 386 잔치 벌어지나

‘희망돼지’와 ‘노사모’의 주역은 386이다. 지난해 10월 저금통을 들어 보이는 노대통령(위)과 대선 직후 노후보의 승리에 환호하는 노사모 회원들.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몇 차례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었다. 첫번째는 2000년 4월 총선 직후 탄생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정치인 팬클럽이다. 자발적 네티즌 모임인 노사모는 그후 노대통령의 정치적 도전에 결정적 힘을 보태는 우군 역할을 맡았다.

두 번째는 2002년 3~4월, 정국을 강타했던 노무현 바람, 이른바 ‘노풍(盧風)’이다. 국민경선이라는 정치이벤트에 편승해 지지율 60%에 육박했던 노후보의 강세는 어느 정치학자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2002년 연말, 대선정국을 휩쓸었던 ‘돼지저금통’ 열풍이었다. 국민 참여에 의한 정권 재창출이라는 노무현 캠프의 전략은 적중했고 ‘희망돼지’로 불린 꼬마저금통은 노무현 개혁정권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권 탄생과정에서 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낸 이들 장면을 보며 ‘데자뷰(기시감)’ 현상을 체험한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젠가 경험한 듯한 사건을 되풀이해 보는 듯한 느낌. 이런 기시감의 배경으로 1987년 6·10항쟁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6·10항쟁은 국민들의 단결된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6·10항쟁 … 노무현 정권 탄생 주도적 역할



내년 총선 386 잔치 벌어지나

1987년 6월 거리시위에 나선 학생들. 6·10항쟁은 운동권이 의식적으로 조직해낸 최초의 대중투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6·10항쟁 주역의 한 축은 386세대다. 구체적으로 87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84학번에서 87학번들이 ‘6·10 세대’라 불릴 수 있는데 나이로는 30대 중·후반이다. 이들 87년 거리항쟁의 주역은 동시에 노무현 정권 탄생의 주역이기도 하다. 노사모, 노풍, 희망돼지 등 노대통령 탄생과정에서 극적인 미담을 기획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했던 이도 바로 노대통령의 386 측근참모들이다. 또 인터넷을 통해 노후보를 응원하고 대선 때 적극적으로 표를 모아준 생활현장의 30, 40대가 바로 386들이다.

노대통령 만들기의 주역이지만 최근 노대통령의 386 측근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노대통령의 초기 국정운영이 혼조를 보이면서 참모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고, 특히 386세대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들이 그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을 거론할 때 노대통령의 386 측근의 이름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노대통령 386 측근 “국정혼란 주범 억울하다”

이런 평가에 대해 노대통령의 386 측근 한 인사는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 근무 인력이 490명 가량인데 400여명은 지금까지 청와대에 줄곧 근무해온 공무원이거나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직원들이다. 외부에서 들어간 별정직 공무원은 90여명인데 이 가운데 386세대로 분류할 수 있는 이는 40여명이다. 그나마 대부분이 일선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어 대통령과 직접 대면할 기회도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국정혼란의 주범으로 몰리는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런 항변에도 사실상 현정권 탄생의 주역인 386 측근들을 향한 기대와 우려는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만큼 노대통령의 정치적 도약과 위기의 과정에 386 참모들의 역할이 컸던 까닭이다.

노대통령의 386 참모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다. 두 사람은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 83학번으로 87년을 경험했던 인물들이다. 노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각광받아왔지만 두 사람의 학생운동 경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안부소장은 대학시절 고려대 학생운동의 한 ‘패밀리’를 이끌었던 리더였다. 안부소장은 86년 하반기 학생운동권을 강타해 사실상 87년 6·10항쟁의 조직적 기반을 마련한 이른바 ‘반종파투쟁’이라는 고려대 학생운동 내부의 통일 과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인물. 이실장은 대학시절 로타렉스라는 대학간 연합서클에서 활동했고, 87년 당시에는 잠시 대학을 떠나 노동현장에 가 있는 등 당시 대학의 학생운동 주류와는 거리를 두고 활동했다. 안부소장이 정통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면 이실장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격동기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 386 잔치 벌어지나

황이수, 안희정, 김만수, 이광재, 백원우, 정윤재, 최인호 (왼쪽부터)

전대협 출신 간부들 40~50명 출사표 던질 듯

안부소장이 주역으로 참여했던 반종파투쟁이란 86년 2학기부터 그해 연말까지 전국 대학가를 강타한 학생운동권 내부의 사상적·조직적 통일 작업. 당시 학생운동은 패밀리라는 서클 형태로 분리돼 한국사회의 모순과 투쟁방식에 심각한 이견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학생운동 조직을 통일하고 대중운동 조직인 학생회를 강화해 사실상 학생회를 대중투쟁의 구심으로 옹립하자는 것이 반종파투쟁의 핵심.

87년 1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낸 이인영 민주당 구로갑 지구당위원장은 “군부독재정권은 하나인데 이에 맞서는 민주화운동 세력은 여러 개로 분리돼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일부 선진적 학생들이 선도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하는 대중투쟁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급진적으로만 흐르는 이념운동 대신 품성, 신뢰, 사랑 등 인간의 삶과 가치에 주목하자는 게 반종파투쟁의 기본정신이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6·10항쟁의 이념적 배경에 반종파투쟁이 있었던 것.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기점으로 학생운동 내 반종파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여러 대학에서 반종파투쟁이 벌어졌지만 그중 치열했던 곳이 고려대와 한양대, 연세대 등이었다. 80년대 학생운동 이론의 배양터였던 서울대의 경우 정부의 집중적인 탄압과 내부분열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조직을 통일한 다른 대학에 주도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87년 이후 전대협이 이들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노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는 이들 반종파투쟁과 6·10항쟁을 경험한 세대가 적지 않다. 안부소장 외에 노대통령과 하루 종일 함께 다니는 여택수 수행팀장(고려대 85학번), 김만수 보도지원비서관(연세대 84학번), 문용욱 국정상황실 행정관(연세대 85학번), 백원우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고려대 85학번), 이정민 정무1비서실 행정관(고려대 86학번)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6·10세대 386들은 인터넷, 국민참여경선, 노사모, 희망돼지로 대표되는 노무현식 대통령선거를 기획하고 이끈 숨은 주역들이다.

시사평론가 이재경씨(한신대 객원교수)는 “6·10세대는 다른 운동권 세대와 달리 반종파투쟁으로 내부 단결한 경험이 있고 대중투쟁노선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87년 항쟁과 같은 대규모 국민투쟁을 선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87년 이후 사회 각 분야에 흩어져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6·10항쟁을 경험했던 386세대만큼 국민대중의 힘에 주목하고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을 갖춘 세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이 없었다면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지난해 대선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되찾은 386 인사들 사이에서 스스로 세력화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전대협세대로 대표되는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정치권 진입을 노리고 있는 것.

2000년 이전까지 386세대는 정치적으로는 단순한 ‘수혈의 대상’이었다. 기성 정치권의 이미지 쇄신 과정의 장식품 정도로 취급됐다. 하지만 2004년은 그 양상이 다를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04년 총선은 386세대가 처음으로 하나의 독립된 세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권에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대협 2기 의장을 지낸 민주당 오영식 의원(전국구)은 “구체적 일정을 밝힐 수는 없지만 87년 이후 전대협세대가 세력으로서 정치 진출을 위한 준비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부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씨 등 이미 정치권에 명함을 내민 전대협 의장 출신 외에 다음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그 수는 대략 40~5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인영 위원장은 “적어도 20~30명 정도는 원내에 진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앞서 정치권에 진입한 386 출신 정치인들의 잇따른 일탈행동으로 국민들의 기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다.

대중의 힘에 주목했고 의식적으로 대중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최초의 세대. 넓게는 386으로, 좁게는 6·10세대 혹은 전대협세대로 불리는 이들의 정치적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내년 총선의 또 다른 볼거리다.







주간동아 389호 (p24~27)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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