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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투기’ 공격은 제 얼굴에 침 뱉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땅 투기’ 공격은 제 얼굴에 침 뱉기?

‘땅 투기’ 공격은 제 얼굴에 침 뱉기?

민주당 장전형(오른쪽)· 이평수 부대변인이 6월1일 당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증거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경기도 판교, 화성 등 신흥개발지역에 대규모 땅을 사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긴 한나라당 의원 9명의 명단을 6월1일 공개하겠다.”

5월29일, 노건평-이기명씨에 대한 한나라당의 잇딴 공세를 ‘야당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라는 맞불을 놓아 대응할 것임을 밝히는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장 부대변인은 이미 9명의 부동산 투기 의혹 의원의 명단과 투기내역 및 매입연도 등에 대한 자료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예정된 ‘폭로’는 연기됐고, 결국 없었던 일로 끝났다. 과연 무슨 사연이 있을까.

5월31일 오후 2시30분, 당직자 3, 4명과 함께 한나라당 L, J의원 소유 부동산 등의 토지 및 임야대장을 들고 판교 현장 확인에 나선 장 부대변인에게 정대철 대표가 전화를 했다. “어디냐? 고생한다”는 정대표의 말에 장 부대변인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조사내용을 보고했다. 오후 8시30분, 정대표는 장 부대변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문제를 월요일(2일) 최고위원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할 테니 그때까지 발표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날을 전후해 민주당 의원들도 장 부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제를 요청했다. “(부동산 투기 문제를 공개하면) 정치권이 시끄러워진다”며 정치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면에는 야당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여당 의원에게도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없지 않았다. “그때는 다 그랬다. 그것(명단 공개)을 꼭 까야 하나”라며 폭로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 신주류측 L의원은 전국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한 재력가였다. 수시로 얼굴을 맞대는 한 고위 당직자는 논평을 놓고 부딪쳤다. 그는 제주도 한림읍에 400여평의 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P의원의 보좌관도 “장부(대변인) 한번 봐줘”라며 P의원의 입장을 전달했다. P의원 역시 화성 등 수도권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수도권 일대 소유 부동산에 대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K의원은 “잘못하면 정치권이 공멸한다”며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의원은 당 지도부에 부동산 소유와 관련한 고해성사를 한 뒤 “장 부대변인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명단 공개와 관련, 신·구주류가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기도 했다. 구주류 K의원은 “왜 노무현 대통령을 방어하려 하나”며 부동산 투기 의혹 공개를 신·구주류 파워게임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K의원은 “노건평-이기명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왜 언론의 초점을 분산시켜 노대통령을 방어하려 하나. 호남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당사자인 한나라당도 로비 대열에 동참했다. 우선 한나라당은 맞대응을 위해 민주당 의원 중 부동산 투기 의혹자 명단 작성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L의원의 보좌관은 5월30일 민주당 대변인실로 장 부대변인을 직접 찾아와 “우리 의원의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급기야 여야 수뇌부도 나섰다. 한나라당 중진 H의원은 이날 정대표와 만나 “공개하면 정치권이 공멸한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현장답사에 나선 장 부대변인에게 전화하기 하루 전이다.



6월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상천 최고위원은 “불법과 부도덕성 여부를 면밀히 파악, 전략적으로 접근하자”고 말했다. 정대표도 이 말을 받아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발표를 막았다. 결국 여야 수뇌부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멸 위기에 처한 정치권을 구한(?) 셈이다.

그렇지만 땅투기 의혹이 완전히 없었던 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장 부대변인에게는 현재 야당 의원들의 투기 의혹과 관련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6월4일 하루에만 한나라당 경선후보로 나선 인사와 L, J 의원 등의 투기 의혹과 관련한 제보가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이 부동산 전쟁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2000년 ‘바꿔’ 열풍에 이어 2004년 총선의 최대 화두는 ‘땅땅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이미 장 부대변인에게 “부동산 투기 의혹자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열받은’ 장 부대변인은 “자료가 정리되면 전달하겠다”고 말해놓은 상태다. 노건평, 이기명씨가 몰고 온 ‘부동산 폭풍’이 여의도 정치권에 때 아닌 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389호 (p12~13)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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