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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제2의 이라크전 ‘미디어 전쟁’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바그다드 현지의 생생한 현장화면과 중립적 보도 ‘호평’ … 파견된 기자 7명뿐 ‘다윗의 승리’ 비유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3월20일 이라크전 개전 첫날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랍 언론들.

카타르 위성방송 알 자지라(Al-Jazeera)의 수석 앵커인 자말 라이언씨. 그는 요즘 오후 3시 무렵 집을 나서 밤 12시까지 방송국에서 일한다. 24시간 뉴스 채널인 알 자지라에서 줄곧 저녁 6시 뉴스를 진행해왔지만 전시 상황인 만큼 더욱 쉴 틈이 없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라이언씨는 1967년 3차 중동전 때 고향을 떠나 요르단 국적을 취득했다. 요르단에서 방송생활을 시작한 이래 한국 KBS 아랍어방송,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TV, 영국 BBC 아랍TV, 런던 BBC를 두루 거친 코스모폴리탄인 그는 20여년 전 한국에서 근무할 때 만나 결혼한 아내 양석남씨와의 사이에 무라드와 림 남매를 두었다. 96년 라이언씨는 알 자지라 방송 개국에 맞춰 카타르로 이주했다. 그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카타르의 알 자지라까지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언론 자유와 성역 없는 보도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지난 6년 동안 알 자지라는 어떤 아랍 방송도 시도하지 못했던 아랍의 문제-부패한 권력, 비참한 아랍인의 삶-를 적나라하게 보도함으로써 아랍 민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어냈다. 그리고 이번 이라크전쟁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현장 보도로 서방언론을 압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피난민 출신인 라이언씨가 전쟁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3월20일 미국의 선제공격 직후 카타르에 때 아닌 비바람과 천둥이 몰아치자 그는 “하늘도 화났다”며 명분 없는 전쟁을 비난했다. 아내 양석남씨는 “미국 언론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며 “아랍인들 모두 알 자지라 뉴스를 믿는다”고 했다.

이번 이라크전에서 미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발하는 반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정부는 막강한 미디어를 앞세워 명분 쌓기에 주력했지만, ‘아랍의 CNN’이라 불리는 복병 알 자지라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개전 2주째에 접어들면서 미·영 연합군 대 이라크의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는 동안 알 자지라로 대표되는 아랍 언론과 CNN으로 대표되는 미국 언론이 총성 없는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 전황은 알 자지라의 판정승.



그동안 아랍의 부패 비판으로 민중 지지 높아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알 자지라 수석 앵커인 자말 라이언씨.

CNN은 이번 전쟁에서 상시종군취재 프로그램(임베딩)에 취재진 20명을 파견한 것을 포함해 이라크전 취재를 위해 중동지역에 200여명을 파견하고 첨단장비를 투입하는 등 물량공세를 펼쳤다. 이에 비해 전 직원이 500명도 채 안 되는 알 자지라는 이라크에 취재기자 7명과 20명의 지원인력을 파견했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었다. 그러나 아랍 최고의 시사만화가 토간의 말대로 ‘작은 나라의 큰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사태는 급변했다. 알 자지라는 개전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공습으로 파괴된 바그다드를 화면에 담았고 머리가 깨진 시신이나 겁에 질린 미군 포로의 모습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열 마디 설명보다 가족의 시체 앞에서 “대학살”이라며 울부짖는 이라크 여인의 모습이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1991년 중동전쟁 당시 전쟁 보도의 새 장을 열었던 CNN 특파원 피터 아넷.

미국의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이번 이라크전에서 진짜 전쟁과 함께 세계가 ‘인식의 전쟁(War of Perception)’을 치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미국 언론이 보여주는 전쟁만 인식해왔던 시청자들이 아랍 언론이 전하는 전혀 새로운 인식을 접하면서 전쟁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초반 팽팽하던 전세는 CNN이 바그다드에서 축출된 뒤 알 자지라 쪽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 CNN이 오히려 알 자지라가 찍어놓은 현장 화면을 받아서 송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방송 메커니즘상 화면을 받는다는 것은 일단 패배를 의미한다.

알 자지라 방송을 수업교재로 활용하고 있는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이인섭 교수는 알 자지라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서방 언론에 비해 사실 확인에 철저한 아랍 언론의 전통을 들었다.

“아랍인들에게 ‘속보’는 중요하지 않다. 한두 시간 또는 하루 이틀 늦게 보도하더라도 정확한 것이 우선이다. 아랍인들에게 과장이나 부풀리기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알 자지라의 보도 태도는 이러한 아랍인들의 정서에 딱 들어맞았다.”

‘속보’보다 ‘정확성’ 중시 … 전쟁 부당성 알리기 역점

지난해 국내 언론 최초로 카타르의 알 자지라를 취재했던 KBS ‘일요스페셜’ 팀의 구수환 PD는 “이번 전쟁에서 알 자지라는 후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며 “알 자지라 보도의 특징은 섣부른 진단이나 논평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양측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 문제가 있다면 핵심 당사자들을 불러 검열 없는 토론을 벌이도록 한다. 토론이 어찌나 격렬한지 생방송 도중 토론자가 뛰쳐나가는 일도 흔하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알 자지라의 모토인 ‘하나의 의견과 그와 다른 의견’은 이렇게 실천되고 있었다.

사실 1991년 중동전쟁 때 CNN의 영향력을 지켜본 아랍 정부들은 방송의 위력을 실감하고 앞다퉈 위성방송을 설립했다. 알 자지라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랍 위성방송 뉴스가 정부 관료들의 공식행사나 외국방문 관련 소식, 성명서 발표로 채워질 때 알 자지라는 원리주의에 입각한 세속주의의 비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비판,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비판 등 아랍세계가 안고 있는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편견 없이 보도함으로써 아랍 언론에 혁명을 일으켰다. 또 CNN이 팔레스타인에게 당하는 이스라엘을 보여줄 때 알 자지라는 이에 덧붙여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도 똑같이 방송했다. 알 자지라의 모하메드 자심 알알리 이사는 “시청자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알 자지라는 오사마 빈 라덴과 핵심 측근들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세 차례 독점 방영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 기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과 탈레반의 종교적 중심지인 칸다하르에서 뉴스를 생중계한 유일한 방송이었다. 아이로니컬한 점은 91년 걸프전 당시 CNN의 전쟁보도 방식(피터 아넷 특파원이 유일하게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생방송을 진행했다)을 모방한 알 자지라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2003년 이라크전에서도 CNN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방송은 아랍세계를 넘어 북미 지역에 20만여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알 자지라가 미국에 불리한 보도만 내보낸다고 불평하는 미 국무부 관리들조차 “알 자지라는 아랍세계의 중요한 정보 통로”라고 인정한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CNN은 알 자지라라는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내부의 경쟁자와 힘겨운 보도전쟁을 치르고 있다.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CNN만 이 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FOX 뉴스는 물론 MSNBC도 있다. 특히 FOX 뉴스는 CNN에 비하면 두 배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미국 내의 유력한 매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외신기자는 “유독 전쟁보도와 관련해 CNN만을 거론하는 것은 한국사람들의 편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슬람문화연구소 이원삼 소장은 “CNN에 중독된 한국사람들은 알 자지라의 전혀 다른 보도내용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전 아랍인들이 시청하는 알 자지라를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게 충격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이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하지만 아랍 언론은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는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비난한다. 한국이 균형 잡힌 시각을 얻으려면 알 자지라뿐만 아니라 아부다비방송 등 아랍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언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의 금상문 연구교수도 “국내 언론사들이 중동 현지에 수십명의 특파원을 파견했지만 여전히 영·미 언론과 미군의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어 현지 목소리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라고 했다.

‘알 자지라’ CNN 꺾고 지구촌  안방 점령

알 자지라가 ‘혁명의 섬’이라 부르는 뉴스센터(위)와 알 자지라 방송국의 주조정실.

현재 국내 언론은 알 자지라건 CNN이건 각각 아랍과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미디어를 통해 이라크전쟁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형편이다. 자연히 언론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에 따라 전쟁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는 “이라크전쟁 개전 이후 우리 방송 화면에는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화면들이 잇따라 방영되고 있다. CNN인지 알 자지라인지, 또는 자료화면인지에 따라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방송사들이 이를 무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쟁에서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아랍의 문제를 아랍인의 시각에서 보는 법을 배웠다. 서방세계의 구미에 맞게 편집된 뉴스가 아니라 아랍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한 것이다. 알 자지라의 프로듀서인 다나 수야흐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CNN ‘래리 킹 라이브 쇼’에 출연해 알 자지라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를 듣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전 세계가 CNN과 동시에 알 자지라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다.

‘주간동아’는 어렵게 알 자지라와의 통화에 성공했다. 알 자지라의 대변인 지하드 알리 바라우트씨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에 세계 언론의 중심으로 떠오른 알 자지라의 위상을 실감한 듯 들떠 있었다. “매일 24시간 일한다”며 죽는소리를 하면서도 생방송 스튜디오와 사무실을 분주히 오가는 목소리에서는 흥이 느껴졌다. 최근 알 자지라의 홈페이지(www.aljazeera.net)가 해킹을 당해 성조기 화면으로 덮여 있는 것도 알 자지라의 높아진 위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언론이 앞다퉈 알 자지라의 화면과 보도내용을 인용하는 현실에서 “알 자지라는 카타르를 수도로 가진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다.





주간동아 379호 (p58~59)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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