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2003.03.20

미국은 영양 보조제 ‘셀레늄 열풍’

노화 방지·암예방 효과 알약 형태로 복용 …WHO도 하루 50~200㎍ 섭취 권장

  • 워싱턴=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3-03-13 1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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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영양 보조제 ‘셀레늄 열풍’

    미국의 영양 보조제 전문점에서 고객들이 셀레늄을 고르고 있다. 무 배추 브로콜리 등 십자화과 식물에는 셀레늄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출장 길에 워싱턴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했던 직장인 정모씨(32)는 생소한 이름의 영양제를 알게 됐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시누이가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 미국인 남편과 함께 몇 해 전부터 꼭 챙겨 먹는다”며 ‘셀레늄(selenium)’ 200㎍ 100정 한 통을 건넨 것.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항산화작용과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셀레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셀레늄은 철, 칼슘, 아연 등과 같은 무기질의 한 종류로 사람과 동물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필수영양소 중의 하나. 주로 채소와 곡류, 육류, 어패류, 낙농제품에 많이 들어 있다. 미국에서는 알약 형태의 영양 보조제로도 판매되고 있는데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240여개 영양 보조제 중 30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때 국내에 열풍을 몰고 왔던 DHEA보다도 높은 순위다.

    미국에서 셀레늄이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건 1996년, 애리조나 대학의 래리 클라크 박사가 셀레늄의 전립선 암 예방 효과를 밝혀낸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 미국의학협회(AMA) 학술지에 발표된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연령 63세의 남성 1312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200㎍의 셀레늄을 장기 복용하게 한 결과 전립선암 발생률이 63%, 대장암 발생률이 58%, 폐암 발생률이 43%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영양소 인식 … 베스트 30위

    이후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센터(NCI)를 비롯한 수십여개 암 연구기관에서 셀레늄과 암 예방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미국의 연구진들은 셀레늄의 암 예방 효과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광범위한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프로젝트들이 아직 진행단계에 있어 90년대 크게 반향을 일으킨 연구들을 뒷받침할 만한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셀레늄을 과잉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셀레늄의 암 예방 효과를 선뜻 단정짓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셀레늄은 1817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1950년대까지 독성원소로 분류됐을 만큼 독성이 강해 오랫동안 영양소로 인정받지 못했다. 1957년 셀레늄이 함유된 사료를 먹인 쥐가 일반 사료를 먹인 쥐보다 간경화를 일으킬 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이후 세계보건기구(WHO)가 셀레늄을 필수영양소로 인정하고 50~200㎍을 1일 권장량으로 정했지만 아직까지 독성을 줄이는 것은 관련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한 번에 750㎍ 이상을 섭취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데 머리가 벗겨지고, 손톱과 이가 빠지고, 피로감이 생기며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연구진들이 셀레늄만을 농축한 영양 보조제 형태보다는 식품을 통한 셀레늄 섭취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NCI 연구진은 셀레늄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식품으로 브로콜리가 탁월하다고 주장한다. NCI의 엘리자베스 H. 제프리 교수는 “일주일에 세 번, 150g 정도의 브로콜리를 꾸준히 섭취하면 암 발생률을 40% 가량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유독 브로콜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브로콜리에 들어 있는 셀레늄의 형태가 몸 안에서 항암인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다른 식품에 비해 단순해 암을 예방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양 보조제 ‘셀레늄 열풍’

    조만간 셀레늄을 첨가한 사료를 먹은 젓소의 우유가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즐겨 먹는 무 배추 등도 브로콜리와 같은 십자화과 식물이어서 이들은 한국인의 식습관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NCI의 신디 D.데이비스 교수는 “한국인들의 셀레늄 섭취량이 정확한 수치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무 양파 배추 등은 셀레늄 함량이 높은 채소로 알려져 있고, 특히 김치는 다양한 성분이 함유된 만큼 연구대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무엇보다 “하루 다섯 가지 이상의 야채와 과일을 섭취하는 것이 최상의 식이요법”이라고 강조한다. 음식으로 먹으면 과잉섭취에 따른 부작용의 우려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셀레늄을 다양한 형태로 흡수할 수 있고 다른 영양소들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레늄을 음식으로 섭취한다 해도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식물이 영양소를 흡수하는 토양이 얼마만큼의 셀레늄을 함유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국내 영양학자들은 “한반도는 셀레늄 함량이 낮은 화강암이 전 국토의 70%를 이루고 있어 셀레늄 결핍지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2002년 상반기 한국식품과학회지에 실린 ‘국내 식품 원재료의 무기질 분포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에 함유된 셀레늄의 양이 0.05ppm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채취한 식물의 80%가 0.05ppm 이하의 셀레늄을 함유하고 있을 때 그 지역을 셀레늄 결핍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영양 보조제 형태의 셀레늄이 유통될 수 없는 여건이다. 영양학자들은 토양이나 사료에 셀레늄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셀레늄을 보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NCI에서 연구중인 김성진 박사는 “육류를 파, 마늘과 함께 먹는 등 한국인의 식습관은 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연구되지 않아 이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의 셀레늄 환경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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