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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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솔직히 몰라요”

월드컵 이후 외국인들 ‘한국 본모습’ 혼란과 관심 … 민간·국가 차원 홍보전략 강화해야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3-13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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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 솔직히 몰라요”

    한국을 알고 싶어 이역만리 찾아온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족하고 또 정보를 얻을 곳도 마땅치 않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끝난 직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조사한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인지도 면에서 78.4점으로 월드컵 전에 비해 1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상자기사 참조).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월드컵 개최국이 1위(35%)를 차지한 반면, 고착된 분단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3위(22%)로 떨어져 놀라운 월드컵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조사가 시사하는 바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이미지 관리의 필요성이다. 그동안 한국을 무관심으로 대했던 국가들이 월드컵 이후 한국 관련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오히려 혼란이 생겨 ‘진짜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의문과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 이처럼 한국에 대한 시각과 가치판단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상태에 사후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농업국가인 줄 알았다”

    월드컵이 끝난 지 9개월.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3월7일 오후 서울의 인사동, 광화문, 명동에서 외국인들을 만났다. 먼저 그들에게 “학교에서 한국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를 물었다. 영국인 의사, 연주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헝가리인 지휘자, 일본에서 근무한다는 프랑스 여성 모두 “배운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프랑스 여성 플로랑스는 “역사가 아닌 지리 시간에 한국의 위치를 배운 게 전부”라고 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는 미국 여성 케이트는 한국전쟁과 분단 외에 ‘세종대왕’을 기억해내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케이트 역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해 알고 싶어 일부러 교과서를 뒤져보기도 했지만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적어도 그들은 한국을 알고 싶어하며 한국에 오기 전에 인터넷과 책 등을 통해 자료를 얻고자 노력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캐나다인 여행객 스탠리는 들고 있는 여행안내서를 보여주며 “여행안내서에서 한국 부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이 농업국가인 줄 알았단다.



    자료의 절대적 부족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모르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영문으로 된 서울에 대한 안내책자는 1992년에 서울시에서 펴낸 ‘Seoul, Her History and Culture’ 단 한 권뿐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려 해도 언어장벽이 이들을 가로막는다. 한국어 검색 엔진에서 영문 검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미지역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만,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한국 관련 정보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바로 전날 한국에 도착했다는 일본인 여행객 미즈노도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다. 하지만 다른 정보들은 왜곡됐거나 단편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30대 중반의 대만 여성 마유팡은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국가이며 중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나라라고 배웠다”고 한다. 한국 방문이 두 번째라고 한 일본 여성 유미는 서울의 음식점과 쇼핑센터, 숙박지 등이 상세히 나온 책을 보여주며 “정보가 정확해서 불편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특별히 한국 역사나 사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대신 함께 여행 온 히로에가 고심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전쟁(임진왜란)”을 기억해냈다. 이후 명동을 지나가는 수많은 일본 고교생들에게 학교에서 한국을 배운 적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나니모 나이(아무것도 없다)”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무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국인 버크 박사는 “산이 많고, 강대국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산업이 발달했고, 사람들의 성격이 조금 급한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20여년 전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당시 추억을 그리며 모처럼 한국여행을 왔다. 하지만 버크 박사와 같은 친한파조차 일본의 ‘워크맨’이나 중국의 ‘도자기’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유럽 사람들이 아는 한국은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 이름뿐이다”.(헝가리인 라트) “솔직히 한국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긍정적인 이미지도 부정적인 이미지도 없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다”.(프랑스인 플로랑스) 캐나다인 스탠리와 미국인 존 앤더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한국전쟁’이라고 대답했다. 일본인 유미가 꼽은 한국의 이미지는 김치, 갈비, 불고기 순. “일본에 비해 물가가 싸서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코리아? 솔직히 몰라요”

    “학교에서 한국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까?” 서울 광화문, 인사동, 명동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에 4년간 거주했고 현 대통령의 이름도 알고 있는 영어강사 조세프는 “한국에 와보지 못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언론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연일 북미관계의 긴장과 북한의 핵개발이 보도되고 있어서 적잖은 미국인들이 한국을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3년 전 한국에 온 미국인 티나는 한국 부임이 결정됐을 때 “그처럼 불안한 나라에 꼭 가야 하느냐”며 열심히 말렸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월드컵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지만, 아직도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고유의 문화가 없는 나라, 북한 핵개발로 인해 전쟁 위험이 큰 나라에 머물러 있다. 민간이든 국가든, 한국 홍보에 발벗고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영연방 국가 사회과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분석’ 결과를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그처럼 모르는 것이 당연할 정도. 국가별로 보면 영국 교과서에 한국 관련 서술이 가장 많았지만 그만큼 오류도 많았다. 특히 고대사 부분은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리 교과서에는 “최근까지도 한국 여성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도 없었다”고 서술돼 있다.

    ‘한국바로알리기사업’의 일환으로 10년 가까이 외국 교과서 분석작업을 해온 한국교육개발원 국제교육정보연구센터 이찬희 소장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나라가 일본자료를 참고하기 때문”이라며 “일본 국제교육정보센터는 전 세계에 일본의 역사와 지리 등을 알리기 위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의 국제교육정보연구센터의 기능은 여전히 연구에만 머물러 정작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기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있는 민간 홍보사절 ‘서울셀렉션’의 김형근 대표는 “국가 차원의 홍보나 민간 차원 홍보 모두 미흡하다”고 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책이나 인터넷 자료 등 영문으로 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이 시급하지만, 민간 홍보 역시 잘 되고 있는 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취화선’이나 ‘친구’ 같은 영화를 볼 수가 없다. 영어자막을 서비스하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또 간혹 영어자막이 들어간 한국영화 DVD가 출시되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다. 한국영화 수출을 위해서도 이런 점은 빨리 시정돼야 한다.”

    옌볜대 서울사무처장으로 2년째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전경 교수(지리학)는 “한국과 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며 자신이 직접 조사한 중국 주요 도서관과 서점이 보유한 한국 관련 도서정보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여주었다.

    “2002년 1월까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의 최대 서점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관련 책은 ‘베이징도서대하’의 경우 58종에 불과했고 ‘상하이서성’은 138종이었다. 두 서점에서 겹치는 책들을 빼면 190종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중국인들의 관심은 한국의 바둑에 치우쳐 있다. 58종 중 18종이 바둑책이다. 베이징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자료는 더욱 한심하다. 1995년 베이징대는 한국 관련 책을 50권 정도 구입했는데, 2001년에는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반면 일본 관련 자료는 95년 250권에서 2000년에는 400권까지 늘어났다가 2001년 다시 250권 수준이 됐다. 한마디로 중국은 한국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국립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관련 정보가 30이라면, 중국 국가도서관의 한국 자료는 1에 불과하며, 서울대와 베이징대를 비교하면 10대 1의 불균형 상태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전교수는 ‘중국 지도층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한국 관련 책을 직접 번역하고 옌볜대에서 출판까지 하고 있다.

    “코리아? 솔직히 몰라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여행안내센터.

    “그들이 관심을 가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입에 떠 넣어줄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의 IMF 위기 극복이라든가 중소기업, 금융정책 등은 중국 관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다. 이런 분야의 책들을 중국어로 번역해 그들에게 공급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중국 엘리트 관료들과 연결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이찬희 소장은 “외국 교과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말고 반드시 시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1982년부터 3차에 걸쳐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부각될 때마다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 시들해지는 일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바로알리기사업은 단시일 내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분석 결과를 가지고 외국 전문가, 출판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시정하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명대 평생교육원에서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한국사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주진오 교수(한국사학과)는 국가홍보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외국인에게 비굴하거나 반대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모두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자긍심과 주인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잘해주려 애쓴다든가 ‘너희들이 우리를 우습게 봤지’ 하는 식으로 벼르는 것은 옳지 않다. 아직도 3·1절에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이 거리에 나오기를 두려워한다. 지나친 민족주의에서 나온 콤플렉스가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최근 북핵 위기는 해외 여러 나라에 한국의 이미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연일 북핵 관련 기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의 언론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이라는 한국의 옛 국가명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반도의 북쪽에 있는 국가는 굶주린 사람들과 지도자들의 독재로 인해 고요하고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키는 저질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2월2일자에 실린 칼럼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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