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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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팔아 엄청난 부자 됐다

대교 등 빅4 일가 1000억원대 이상 주식 보유 … 올해부터는 ‘유아시장’ 대대적 공략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3-03-13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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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지 팔아 엄청난 부자 됐다

    어린이들이 학습지 방문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다양한 학습지와 교구들(아래).

    아이를 둔 부모라면 가계소득이 감소해 지출 항목을 조정해야 할 때 자녀 교육비만큼은 남겨두게 마련이다. 게다가 과목당 월 3만원 안팎인 학습지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학원이나 과외를 하면서도 웬만해선 포기하지 않는 부분이다. 이 때문인지 주요 학습지 4개사의 오너들이 신흥부호로 떠올랐다.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업체 ‘미디어 에퀴터블’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눈높이’로 이름난 대교그룹의 강영중 회장 일가가 보유한 재산은 5061억원으로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4946억원), SK의 최태원 회장(4702억원) 등을 제치고 재산순위 7위로 등극했다. ‘구몬’ ‘빨간펜’으로 알려진 교원그룹 장평순 회장 일가는 2725억원으로 15위를 기록했고, 재능교육의 박성훈 회장이 1278억원(45위), 웅진닷컴의 윤석금 회장이 1203억원(48위)으로 뒤를 이었다. 업계는 교육, 특히 어린이 교육과 돈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만도 하다. 그러나 학습지 시장의 빅4 일가가 소유 주식 환산 금액으로만 따져 1000억원 이상을 가진 대부호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국내 교육산업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임이 분명하다. 현재 학습지 업계 1위는 이 분야에 제일 먼저 뛰어든 대교. 대교는 지난해 학습지 회원수 240만명으로 76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교원이 172만명(5600억원), 웅진닷컴이 109만명(4872억원), 재능이 80만명(2900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현재 600만명(과목 수) 이상이 주요 학습지 4개사에 회원으로 등록돼 있어 매출 규모를 합하면 2조원을 넘어서는 셈이다. 그리고 업체마다 1만명 안팎의 학습지 지도교사를 고용하고 있어 상당수의 4년제 대졸자를 흡수하고 있다.

    학습지 시장이 이렇게 성장하는 데는 3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영중 회장이 대교의 전신인 ‘한국공문수학연구회’를 설립한 게 1976년이고 재능(81년), 교원(90년), 웅진(94년)이 차례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사실상 학습지 시장은 단기간 내에 급성장한 것이다.

    초고속 성장 거듭 2조원대 매출

    학습지 팔아 엄청난 부자 됐다

    최근 학습지 업계는 온라인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남다른 교육열과 3만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이 학습지 시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월 회비가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된다는 점도 기업의 재무구조를 탄탄히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는 평가.



    그런데 신흥부호로 지목된 강영중, 장평순, 윤석금, 박성훈 회장 모두 교육사업으로 기반을 닦았으나 사실 ‘교육’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겐 사업수완과 시대 흐름을 읽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창업 전 교육 분야에 몸을 담았다고 할 만한 사람이라곤 교원의 공동 창립자인 이정자 사장 정도. 장평순 회장과 함께 85년, 교원의 전신인 ‘중앙교육연구원’을 만든 이사장은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대교의 강영중 회장은 홀어머니와 3남매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돈 되는’ 일을 찾아 시작한 게 과외였다고 한다. 마침 일본에 머물던 집안 어른이 당시 일본에서 ‘구몬수학연구회(公文數學硏究會)’라는 학습지가 유행한다며 권유해 이를 들여와 과외를 시작했던 것. 그러나 89년 일본 구몬과 결별하고 91년 새 브랜드 ‘눈높이’를 선보이면서 급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

    학습지 팔아 엄청난 부자 됐다

    신흥부호로 떠오른 재능 박성훈 회장, 웅진 윤석금 회장, 대교 강영중 회장, 교원 장평순 회장(왼쪽부터).

    재능의 박성훈 회장 역시 외국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 미국 학생들이 수준별 프로그램으로 학습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은 그는 귀국한 뒤 고려대 교육대학원생들과 함께 교재 연구에 몰입했다. 그리고 4년 만인 81년 ‘스스로’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재능은 99년까지 업계 2위 자리를 지켰으나 같은 해 방문교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회원수가 급감해 업계 4위로 밀려났다. 재능교육 관계자에 따르면 99년 10월, 회원수 84만명을 기록했으나 2000년 초 68만명으로 줄어들었다. 2000년 당시 교원, 웅진 등 후발업자들이 회원 모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80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사갈등이 재능에 치명타를 입힌 격이다. 재능교육 이재진 팀장은 “99년 이후 두 차례의 파업이 있었으나 작년 하반기부터 노사관계가 안정되면서 회사 사정도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90년대 들어 세일즈맨 출신들이 가세하면서 학습지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교원의 장평순 회장과 웅진의 윤석금 회장은 손수 사업을 일으키기 전 출판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신화적인 판매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또 학습지를 선보이기 전 전집류로 기반을 닦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교원은 91년 일본 구몬과 제휴해 같은 이름의 학습지를 선보였다. 일본 구몬은 89년까지 대교와 인연을 맺었던 회사다. 윤석금 회장은 94년 ‘창의력’을 강조한 학습지 웅진 씽크빅을 선보였는데 이미 상당수 회사가 선점한 상태라 여건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90년대 말, 7차 교육과정 이후 ‘창의력’이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덩달아 웅진의 학습지도 급성장했다. 두 사람은 여성인력을 방문판매사원으로 적극 활용해 각각 아동 전집과 정수기 렌털 사업으로 학습지 규모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초등학생 시장 이미 성숙 단계”

    이처럼 학습지 시장을 키워놓은 오너들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는 추세다. 4개사 오너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재능의 박성훈 회장은 99년, 포항제철 상무를 지낸 장중웅 사장과 삼성그룹 이사 출신의 이명암 부사장 체제를 가동시켰다. 이후 박회장 본인은 인터넷 사이트와 외국서적을 뒤지며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만한 교재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대교의 강회장은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1년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을 회장 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은 연세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고 강회장이 삼고초려보다 더한 일곱 번 요청 끝에 송자 회장의 승낙을 얻어냈다”는 게 대교 관계자의 전언이다. 송자 회장은 취임 이후 맥킨지컨설팅에 의뢰해 대교의 중장기 비전을 새로 수립했고, 교육사업에만 전념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교는 또 내년 초쯤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웅진의 윤석금 회장은 지난해 초 서울대 법대 운동권 출신의 김준희 사장을 발탁했다.

    올해 학습지 시장의 화두는 ‘유아’다. 그동안 학습지는 영·유아부터 중·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했으나 회원이 초등학생에 집중돼 다른 층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게 사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업계는 유아 대상 신상품을 대거 출시할 예정이다.

    대교는 1월부터 생후 13∼25개월 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학습지 ‘소빅스 베베’를 출시했다. 대교 이병상 과장은 “소빅스 베베는 월 회비를 내면 교사가 교구를 직접 들고 가는 방식으로, 기존의 고가의 교구를 구입하고 지도교사 방문 비용을 따로 부담해왔던 유아교재와 차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은 웅진 씽크빅의 창의력 학습법의 대상을 유아로까지 넓혀 ‘한글 깨치기’ ‘키즈 스토리’ ‘씽씽한자’ 등을 3월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생후 6개월부터 만 2세까지를 대상으로 ‘웅진 아기놀이마을’ ‘웅진 수학놀이마을’ 등 놀이를 통한 학습효과 증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교원은 지난해 태교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는 ‘프리스쿨’ 시리즈를 내놓아 유아 브랜드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증권 애널리스트 박희정씨는 “올 들어 학습지들이 유아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것은 초등학생 시장이 이미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습지 업계는 초등학생 이외의 대상과 교육 방식면에서 상당부분이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에 따라 온라인 교육 강화, 학원사업 본격화, 체험학습 다양화, 브랜드 해외 진출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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