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0

2003.01.30

재계인사 여전히 오너 맘대로

‘경영 공백 최소화’ 명분 12~1월 완료 … 가족·측근 승승장구 합당한 설명 없어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1-23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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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인사 여전히 오너 맘대로

    올해 재계 인사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보(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상무로 승진하고 LG 구본무 회장의 당숙인 구자홍 LG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그룹이 1월17일 363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주요 그룹의 올해 인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LG와 SK 등은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마쳤고 현대차그룹도 1월3일자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끝마쳤다. 당초 재계에서는 각 그룹들이 대선 직후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었다.

    유독 삼성그룹 임원인사가 늦어진 것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당초 삼성그룹 주변에서는 1월10일경 임원인사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었다. 이 때문에 일부 계열사에서 인사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됐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됐던 곳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갱신하며 3000억원이 넘는 상여금을 지급했던 삼성전자. 그러나 인사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삼성전자는 임원 승진 인사에서도 진가를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이번 승진인사에서 141명이 승진자에 포함돼 지난해 129명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그룹 전체 승진자 중 비율로 따지면 소폭 줄어든 결과.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금융 계열사들의 인사 확정이 늦어져 최종발표가 지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 계열사에서는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의 황태선 삼성화재 부사장이 삼성투신운용 사장으로, 김상기 삼성증권 전무가 삼성벤처투자 사장으로, 이용순 삼성카드 부사장이 삼성정밀화학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지난해 호황을 누렸던 삼성카드에서는 7명이 임원으로 승진해 예년과 같은 수준이었으며 삼성캐피탈 승진자는 지난해 7명에서 올해 5명으로 줄어들었다.

    인수위와 밀월 분위기 ‘삼성’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삼성이 이번 인사를 통해 새 정부 인수위측에 뭔가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인수위에서 내세우고 있는 ‘편법 상속·증여 근절’과 같은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사실상 삼성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인수위가 공식 부인하고 이에 대해 삼성이 이례적으로 인수위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밀월’ 분위기가 한창인 터라 삼성의 인사 내용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극히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인수위에 사의를 표하고 각종 정책에 협조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이라 인사 내용에 신경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이러한 추측에 대해 “사장단과 임원 인사는 경영능력을 기준으로 할 뿐”이라며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또 “만약 대정부 로비가 필요하다면 로비가 필요한 사람을 지원해주면 되지 굳이 인사에 포함시킬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사지연설에 대해서도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법정 출석 관계로 그룹 행사에 불참한 사실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왜곡해서 ‘내부 불만설’을 제기한 것일 뿐 회사 내 갈등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삼성이 시설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35%나 늘어난 8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리기로 하고 R&D 투자 규모도 지난해보다 16%나 늘리기로 하는 등 공격경영 방침을 내놓으면서 당선자측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재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최근 삼성의 분위기는 현대차그룹이 1월3일 인사를 계기로 다소 긴장관계에 들어간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현대차는 대선 직후 단행된 올해 인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3세경영 체제를 굳혔다. 그러나 인사 시기가 노무현 당선자측이 ‘편법 상속·증여 근절 방침’을 밝힌 것과 묘하게 맞물려 갖가지 관측을 낳았다. 비슷한 시기 현대차 주변에서는 이번 인사 발표와 동시에 외국에 나가 있던 홍보맨들과 기획통들을 대거 국내로 불러들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특히 국내로 다시 호출된 현대차 관계자들 중에는 과거 정세영 회장 계열로 분류돼 타의로 외국행을 선택해야 했던 인사들까지 포함돼 현대차가 뭔가 다급한 상황에 부닥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당연히 현대차와 정부가 불편한 관계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한편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들이 올해 예년에 비해 1∼2개월씩 앞당겨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단행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예년의 경우 2월경 실시하던 인사를 두 달 정도 앞당긴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지난해부터 3월 주주총회 시즌에 맞춰 사장단 인사를 한다던 방침을 바꿔 관행대로 1월 인사를 단행했다. SK 역시 지난해에는 ‘사장단 실적 평가가 끝나는 2월이 인사 적기’라는 점을 내세웠으나 올해는 12월 인사를 강행했다.

    재계의 주장은 1월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사업계획 집행에 맞춰 인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사 시기를 12∼1월로 잡았다는 것.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기업들이 ‘경영 공백 최소화’를 명분으로 12월 인사를 고집하는 것은 과거 잘못된 관행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들 그룹들은 외환위기 이후 주주총회(이하 주총)의 승인 절차를 무시하고 연말에 편법인사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인사 시기를 주총 직전으로 맞춰 주주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인사 투명성과 주주 의견 반영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올해 인사에서는 이런 개선 의지는 사라지고 다시 과거의 관행으로 돌아간 듯하다. 삼성 관계자는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등기임원에 해당하는 사장단의 경우 주총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사장대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현대차는 물론 삼성 LG 등에서 회장 가족이나 측근들이 예외없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가족이나 측근들의 승진에 어떤 ‘실적’과 ‘능력’이 작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역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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